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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단독 인터뷰] 21세기 인공지능의 대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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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구에 집중 투자 이뤄진다면 한국도 선진 AI 따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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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의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베리가 막대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를 지켜보던 관중은 깜짝 놀랐다. 포스베리가 등 쪽으로 누운 채 막대를 넘는 ‘배면뛰기’를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포스베리 이전에는 아무도 이렇게 뛰지 않았다. 당시엔 모두 옆으로 막대를 넘는 ‘가위 뛰기’를 했다. 포스베리는 올림픽 신기록(2m24cm)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 신기록을 6cm나 높였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슈퍼비전’팀이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 ‘ILSVRC(ImageNet Large Scale Visual Recognition Challenge)’에 처음 출전했다. ILSVRC는 2010년 시작한 대회다.각 팀의 인공지능이 여러 이미지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맞추고 그 오답률의 낮음을 겨룬다.

슈퍼비전팀은 영국 옥스퍼드대, 일본 도쿄대, 독일 예나대, 제록스 등의 유명 연구기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며 우승했다. 다른 팀이 오답률 26%대에서 소수점 공방을 벌일 때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슈퍼비전팀은 15%대를 기록했다. 50여 년 역사를 가진 AI의 혁신을 불러온 딥러닝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딥러닝은 AI를 학습시키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한 종류다. 인간의 뇌는 학습 과정에서 여러 신경세포를 형성하고 서로 연결해 ‘신경망’을 만든다. 딥러닝은 사람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한 인공신경망을 이용,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ㆍ추론하고 스스로 학습한다. 기존 AI는 인간이 일일이 규칙을 정해줘야 했다면, 딥러닝은 입력된 정보 간의 관계를 분석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직관’의 길이 열린 셈이다.

딥러닝은 슈퍼비전팀을 이끈 토론토대 제프리 힌튼(69ㆍ사진) 컴퓨터과학과 교수가 2006년 처음 창안한 개념이다. 그의 딥러닝 덕분에 AI 연구는 뚜렷한 연구혁신을 내지 못한 1990년대의 ‘겨울’을 지나 21세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구글의 음성인식ㆍ번역, 페이스북의 사진인식 등 최근 AI의 대부분이 딥러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힌튼 교수는 현재 구글의 석학 연구원(Distinguished Researcher)도 겸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반까지는 대학 연구실에서, 오후엔 20여 분 거리에 있는 토론토 구글지사에서 2시부터 6시까지 인공지능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1년 중 2~3달은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도 일한다.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중앙일보와 중앙SUNDAY가 e-메일을 통해 그와 만났다.

당신은 AI의 ‘구루’‘대부’라고 불린다. 어떻게 이 분야의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었나.
“지난 세기 동안 대부분의 AI 연구자들은 많은 문제와 규칙을 프로그래밍해서 AI에 집어 넣으면 추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방법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식을 입력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처럼 AI도 지식을 프로그래밍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행히 21세기 들어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빅데이터들이 생겨나고 이를 분석할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진 덕분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와 90년대에 AI 학계는 긴 겨울을 나고 있었다. 1950년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AI가 인간을 대신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는 풀려도 복잡한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89년 프랑스의 얀 르쿤 박사가 손으로 쓴 우편번호를 인식하는 심층 신경망을 개발했지만, 숫자 10개를 인식하는 데 사흘이 걸릴 정도였다. 이후 AI 연구에 대한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힌튼은 주위 사람들에게 “AI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걸 연구하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6개월만 줘봐요.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할 테니까”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40년 이상 인공지능을 연구해왔지만, 오랜 기간 어려웠겠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1978년에 (AI로 박사학위를 끝내고) 1년 동안 쉰 적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뇌는 분명히 작동하니까. 나는 심층 신경망이 (규칙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논리 기반의 AI를 대체할 것이란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힌튼은 60년대 말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부에서 실험심리학을 전공했다. 뇌가 신경세포 사이의 전기신호를 통해 작동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뇌가 어떤 원리로 학습하고 지성을 얻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에든버러대에서 인지과학의 창시자인 크리스토퍼 롱게-히긴스의 지도 아래 인공지능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78년 학위를 끝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인공지능 연구 지원이 끊겨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힌튼은 82년부터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의 인공지능 연구가 군사자금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에 갈등했다. 자신의 연구가 군사적 목적에 사용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자들을 굶길 수도 없었다. 마침 캐나다의 토론토대에서 교수직 제안이 왔다. 힌튼은 87년부터 지금까지 토론토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캐나다에 정착한 후인 90년대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 시기에 무엇을 하며 지냈나.
“그저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뇌의 학습 원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 90년대 인공지능의 겨울은 춥고 길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연구지원도 차츰 끊겼다. 연구자들은 하나 둘씩 인공지능 학계를 떠났다. 힌튼 교수처럼 인공신경망을 연구하는 학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힌튼은 2004년 캐나다고등연구원으로부터 10년간 500만 달러를 지원해준다는 약속을 받아 AI 연구를 빠르게 진전시킬 수 있었다. 2006년 발표한 딥러닝 논문은 그 결과물이었다.)

구글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우리 연구팀이 2012년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에서 우승해 딥러닝의 실현 가능성이 입증됐다. 곧바로 AI가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 세운 머신러닝 업체가 DNN리서치다. 이듬해 구글이 DNN리서치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나를 끌어갔다. 이후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 사이에 AI학자 영입 경쟁이 벌어졌다.”
두 곳에서 일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연구에 집중하려면 기업보단 학교가 낫지 않나.
“구글에서 일하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다. 구글에서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제품으로 나오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된다. 수억 명이 사용할 제품의 아이디어를 지켜보는 건 보람 있는 일이다. 토론토대에서 계속 일하는 건 내가 그간 학교에서 아주 뛰어난 대학원생들을 제자로 두었기 때문이다.”

(힌튼은 구글에서 석학연구원(Distinguished Researcher)으로 일하고 있다. 주된 역할은 그간 기술의 발전으로 실현 가능성이 커진 여러 AI 이론을 제품 개발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가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4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컴퓨터 성능의 한계로 실현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lularity)’이 온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언제 어디까지 발전할 거라고 보나.
“AI 분야에서 5년 후를 넘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커즈와일이 그렇게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다. 내 예상에 AI는 분야마다 각기 다른 시간에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다. 의료영상 분석은 5~10년 안에도 되겠지만, 극작가나 소설가를 뛰어넘는 데는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커즈와일 역시 구글에서 인공지능 연구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일하고 있다.)

AI에 대한 기대도 많지만, 두려움도 크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AI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매우 강력한 도구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고, 소수의 엘리트만 풍족하게 할 수도 있다. AI로 인한 생산성 증가의 혜택을 소수가 독점하는 건 공정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올 3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 바둑계의 정상 이세돌 9단 간의 바둑 대결이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알파고의 승리는 구글에 어떤 의미인가.
“바둑은 논리 기반의 인공지능 학계에서 항상 논의의 대상이 돼 왔다. 현재 상황에서 이기기 위해 바둑돌을 어디에 두느냐를 결정하려면 뛰어난 직관력과 직관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수많은 계산이 필요하지만, 직관력이 없다면 계산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른다. 알파고는 인공신경망을 사용해 이런 직관력을 배웠고, 이것이 알파고가 기존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보다 훨씬 뛰어난 비결이다. 알파고의 성공은 인간의 직관이 인공신경망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는 또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도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일부 연구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 교육 분야에 충분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한국이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근원적) 호기심이 기반이 된 기초연구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면.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학자들을 압박하는 것보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딥러닝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힌튼은 기초과학을 현실에 응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최근과 같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어떤 이론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대학에 연구지원을 할 때, 그 목적을 ‘응용’에 맞추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일자리 창출과 이익 확대를 위해 연구투자를 결정하지만, 사실 뜻밖의 큰 이익을 내는 건 호기심 그 자체가 목적인 연구라는 것이다. 힌튼은 대학은 기초과학에, 기업은 응용분야에 몰두하는 게 맞다고 얘기한다.

힌튼은 1947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나눈 대화가 계기였다. 친구는 힌튼에게 “뇌는 홀로그램처럼 작동한다”고 말했다. 홀로그램이 무수히 많은 레이저광을 반사해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뇌 역시 기억을 한 곳에 두지 않고 거대한 신경망으로 퍼뜨린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는 어린 힌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평생 뇌의 비밀을 연구하는 학자가 됐다.

힌튼은 학자 집안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컴퓨터 과학의 기원이 된 ‘기호논리학’을 만든 영국의 논리학자 겸 수학자 조지 불(1815-1864)의 외고손자다. 할아버지는 영국의 외과의사 겸 작가 제임스 힌튼, 아버지는 곤충학자 하워드 힌튼이다.

최준호 기자, 남건우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 키스 페너]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1947년 12월6일 영국 브리스톨 출생
-1970년 영국 캠브리지대학 졸업(실험심리학 전공)
-1978년 영국 에든버러대학 대학원 인공지능박사
-1982년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
-1987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
-2006년 딥러닝 논문 발표
-2012년 세계 최대 이미지인식경연대회 ILSVRC 우승
-2012년 머신러닝 업체 ‘DNN리서치’ 설립
-2013년 DNN리서치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구글 석학연구원으로 활동(토론토대 교수직 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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