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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명자의 과학 오디세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혁명, 위기인가 기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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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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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 회장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오, 포드!’, ‘템페스트’

유전자가위로 유전자 교정 가능함을 국내 연구진이 처음 입증했지만
규제가 약한 미국이 앞서가고 특허도 버클리·브로드 연구소 각축전

영국의 올더스 헉슬리(A. Huxley)는 1932년에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발표했다. 아직도 읽히는 현대고전이라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 상실한 2540년 과학문명에 대한 풍자가 신랄하다 못해 섬뜩하다. 그 신세계 속의 인간은 유전자와 정신의 조작의 산물로 그려진다. 런던의 부화센터 수정(受精) 부서에서 시험관 아기들이 5개 계급의 맞춤형으로 대량생산되며,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개(?)의 일란성 쌍둥이가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미리 정해진 운명으로 태어난다. 최상의 지성(知性)을 갖춘 지도층에서부터 지성이 제거된 최하위 계층까지 5개 등급이 실험실에서 결정된다. 이렇게 생산된 아기들은 조건반사실로 옮겨지고, 불안과 거부감 주입으로 사물에 대한 즐거움을 모르게끔 길들여진다. 끝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세뇌를 통해 미리 프로그램된 운명에 순응토록 가공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헨리 포드가 신격(神格)이다. 그들은 성호를 긋는 대신 포드의 자동차 T 모델을 상징하는 T자를 그린다. ‘오, 주여’ 하는 대신 ‘오, 포드’라 중얼거린다. 소설 제목 ‘멋진 신세계’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따온 것으로 문명비판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 세상에서는 모두 행복하다. 우울감이 들라치면 소마(Soma)라는 마약을 먹으면 된다. 가난도 질병도 실업도 전쟁도 없다. 그런데 그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의 대명사가 됐다.

58년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의 주제를 리바이벌해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의 표제로 문명비판론을 제시했다. 미국에 정착한 그는 63년 11월 22일 캘리포니아에서 69세로 세상을 떠난다. 그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다. 때문에 헉슬리의 명성에 비춰 그의 서거 소식이 묻혀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여기서 굳이 ‘멋진 신세계’를 언급하는 이유는 과학사(科學史)의 이정표에서 생명과학기술 혁신의 고비마다 기술문명의 공포의 아이콘처럼 이 소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멘델 유전법칙의 재발견 의미

20세기 과학사에서 전반부가 물리과학의 전성기였다면 후반기는 생명과학의 혁명기였다. 전자는 양자역학 혁명과 맨해튼 프로젝트 등의 충격으로 대변되고, 후자는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에서 비롯된 생명공학기술의 전개가 대표한다. 생물학이 생명공학기술로 진화된 결정적 계기는 유전의 수수께끼를 푼 데서 비롯된다.

그 발단은 1900년 멘델(G. Mendel, 1822~1884)의 유전법칙(1866년 발표)의 재발견으로 거슬러 오른다. 멘델의 시대에는 염색체 개념조차 없었고, 유전 형질의 ‘평균적인 유전’을 믿고 있었다. 따라서 어버이가 두 가지 유전 형질 중 하나씩을 주고 형질이 나타나지 않으면 숨어버린다는 멘델의 이론은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수도원은 수도사 멘델이 암컷과 수컷을 교배하며 유전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의 이론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수도원에서의 멘델의 죽음과 함께 묻혀 버렸던 것이다.

1869년에는 스위스 출신의 미쉐르(F. Miescher, 1844-1895)가 독일 튜빙겐 대학 실험실에서 세포핵으로부터 핵질(nuclein, 현재의 핵산)을 분리한다. 1910년대에는 미국 모건(T. H. Morgan, 1866-1945, 1933년 노벨생리의학상)이 초파리에 방사선을 쪼여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 유전을 통해 염색체라는 유전단위를 발견한다. 44년 생화학자와 의학자로 구성된 에이버리(O. T. Avery, 1877-1955) 연구진은 뉴욕에서 어떤 병원균은 단백질이 아닌 화합물이 유전적 특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에이버리가 발견한 것이 바로 DNA였으나, 그 실체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들 진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20세기 전반까지 생물과학은 주로 유전 현상 자체를 다루고 있었다.

DNA 구조 규명에 얽힌 에피소드를 딛고 분자생물학, 분자유전학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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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상황은 달라진다. 1940-50년 핵산이 유전현상의 핵심 요소로 생체의 단백질 합성에서 주요 기능을 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53년에 결정적인 돌파구가 열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하던 왓슨(J. D. Watson, 1928- )과 크릭(F. H. C. Crick, 1916-2004)이 DNA의 이중나선(double helix) 구조를 밝힌다. 런던 킹스 칼리지의 윌킨스(M. Wilkins, 1916-2004)까지 3인이 1962년 노벨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그 위업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의 가장 어두운 장면을 보여준다. 프랭클린(R. Franklin, 1920-1958)의 위대한 발견이 은폐됐기 때문이다. 그는 킹스 칼리지에서 윌킨스와의 만남으로 이중나선 발견의 악연에 엮인다. 프랭클린은 DNA 구조가 이중나선임을 추정케 하는 X선 회절사진의 결정적 증거를 얻어냈음에도 확증되지 않은 것은 가설이라는 믿음으로 공개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다. 윌킨스는 이 사진을 아무런 허락 없이 분석하고 왓슨과 크릭에게 유출한다.

58년에 37세로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죽음으로 과학사에서 묻힐 뻔했던 이 스토리는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왓슨이 쓴 ‘이중나선’에서 프랭클린을 ‘욕심 많고 고집 센 다크 레이디(Dark Lady)’로 폄하하면서 프랭클린에 대한 재조명과 과학연구의 진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전기작가 브렌다 매독스(B. Maddox)는 ‘로잘린드 플랭클린과 DNA’(한글판 2004년)에서 연구 업적을 도둑맞은 비운의 천재 여성과학자가 생명의 비밀 발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역사를 뒤로 하고, DNA 구조의 규명으로 생물과학에서 분자생물학이라는 신천지가 열린다. 그리고 유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유전이 일어나는가의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분자유전학이 탄생한다. 그로써 유전물질이 그 자체를 복사하고, 단백질의 특정 아미노산 서열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유전자의 3차원 분자구조를 밝히는 기념비적 성취가 이루어진 것이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배경에는 물리과학의 영향이 컸다. 양자역학의 주역이었던 보어(N. Bohr)와 슈뢰딩거(E. Schrodinger) 등 물리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이 일단 모습을 갖추게 되자, 생명의 비밀을 캐려는 열망으로 생명현상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 가운데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 1945년)는 생물과학자들에게 강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유전자의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단백질의 구조로 변환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생명현상의 열쇠라 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푸는 과정에서 정보의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분자구조적인 접근과 생화학적 접근의 연계가 이루어진다.

이렇듯 생물과학 분야의 세분화와 융합의 조화로 생물학적 현상은 가장 기본적인 공통인자인 분자 단위까지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것들 상호 간에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분자생물학의 주요 개념들이 생명과학의 여러 분야를 한데 묶게 된다. 말하자면 물리학과 화학의 방법론에 의해 유기체의 현상 연구가 획기적 진전을 거두면서 생명현상의 핵심 미스터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DNA를 자르고 잇고 전달하고...

20세기 중반 생물과학 연구의 최대 업적은 생명현상이 물질적 차원이 아니라 정보에 의해 조정된다는 것, 생물의 유전정보 사이에 호환성이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후 생명과학 연구는 두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DNA를 원하는 대로 절단하고 또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DNA를 다른 생물체에 넣어주는 데 필요한 DNA 운반체를 찾는 일이었다.

첫째 과제는 50년대 말부터 십여 년 사이에 해결된다. DNA를 결합시키는 중합효소, DNA를 해체시키는 분해효소, 그리고 70년 D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해 정확한 위치에서 절단해 특정 조각들을 만들어내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donuclease)의 발견 덕분이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바로 이 제한효소의 발견에서 길을 찾는다. 둘째 과제는 바이러스의 DNA에 외부 DNA를 삽입하고 숙주세포에 감염시킴으로써 특정 유전자를 숙주생물에 도입하는 미생물학의 공로에 의해 해결된다.

유전자 재조합 성공에 매스컴이 붙여준 이름 ‘유전공학’

이들 연구를 바탕으로 1973년 DNA 유전자의 재조합에 성공하고, 클로닝(cloning) 기법이 탄생한다. 73년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S. Cohen & H. Boyer)이 특정 DNA 절편이 삽입된 플라즈미드를 대장균 내로 삽입한 실험(recombinant DNA technology)에 성공한 것은 실험실 연구가 공학과 산업으로 넘어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처럼 유전자 조작 기술이 성공을 거두자 미디어에서는 재빨리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이란 신조어를 붙여준다. 과학자들은 이 용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유전자를 재조합하고, 세포를 융합시키고, 핵이나 세포기관을 치환하고, 조직을 배양하는 등의 기술에 의해 생명체를 개조하거나 심지어 창조할 수 있는 생명공학기술 시대가 열린 것이다.

77년부터는 생화학자들이 DNA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실험으로 들어간다.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DNA는 뉴클레오티드(nucleotide)의 집합체로서, 뉴클레오티드는 한 가지 당, 하나의 인, 하나의 염기로 이루어진다. 염기는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이다. 이중나선으로 배열된 염기서열에는 세포가 스스로를 복제하고 생화학 반응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노벨상의 황금어장, 그리고 복제양 돌리의 탄생

염기서열 결정 방법을 찾아내게 되자 유전 정보의 창고가 활짝 열리고, 과학자들은 그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유전자 연구에서의 제한효소 발견, 재조합, 염기서열 결정 방법 등은 20세기 후반 노벨상의 황금어장이 된다. 생명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은 대장균 등의 미생물로부터 벼, 콩 등의 농작물,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유전체의 DNA 서열을 밝히며 의약 분야의 획기적 진전을 기록한다. 생명공학기술로 생산된 인슐린이 당뇨병 치료에 쓰이고, 암과 면역질환 등 난치병의 진단약과 치료제가 속속 개발된다.

82년에는 유전자 이식으로 거대한 몸집의 생쥐가 등장한다. 90년에는 증세가 심각한 면역결핍증 환자의 유전자 치료에 성공을 거둔다. 96년에는 영국에서 날아든 복제양 돌리(Dolly) 소식이 온 세계를 놀라게 한다(Nature 1997년). 그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까닭은 수정란의 분열세포를 쓴 것이 아니라 6살짜리 암컷 양의 체세포(젖샘세포)의 핵을 이식해서 젖먹이동물의 복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른의 몸 조각 세포를 써서 그 어른과 꼭 닮은 온전한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타임지 표제 “Will There Be Another You?”

96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생물학 교과서에서 ‘젖먹이동물의 체세포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고전적 지식을 뒤집는 사건이었다. 타임지는 돌리 기사를 표지로 다루면서 ‘이 세상에 정말 또 하나의 당신이 있게 될까?’(Will There Ever Be Another You?)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쯤 되자 생명공학이 어디까지 가려는가, 인류사회 파멸의 징조가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서 유전자 기술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치가 줄을 잇는다.

로마 교황청은 ‘인간복제 연구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과학의 발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을 훼손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유럽의회는 결의문을 채택해 ‘인간복제는 인간의 기본권과 동등성 존중의 원칙에 크게 위배되므로 과학의 자유와는 별개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미국은 대통령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미 상원은 인간복제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한다. 우리나라도 1997년 유전자 연구기관의 안전위원회 설치, 유전자 재조합 실험 절차, 재조합 유전자의 보관과 운반 등을 규정하는 유전자재조합실험지침을 제정한다.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과 규범

20세기 후반 SF를 방불케 하는 생명과학의 발전은 생명의 신비를 풀려는 과학자들의 순수한 열망, 그리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끈기와 열정이 맺은 경이로운 결실이었다. 그러나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생명현상을 인간의 기술로 조작하는 전대미문의 성취가 이루어지면서, 과학연구가 산업화·실용화되는 과정에서 상업적으로 남용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규범을 설정해야 할 필요성이 급부상한다.

실상 법과 규제는 사회를 규율하는 규범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보다 앞서 나가는 일은 없다.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 다음에 대응에 나서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모니터링과 예측이 중요하다. 규제 기준 설계에서는 과학연구 진흥을 위한 자율성과 혁신의 기회는 보장하면서 그 악용으로 인간사회의 윤리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균형을 갖춰야 한다.

그 일은 결코 한 두 분야의 전문성과 역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분야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복잡성을 띤다. 과학자사회는 다른 모든 분야를 향해 기술 진보의 본질과 실상을 알리고, 함께 잠재적 위험성을 예견하고 대비해야 하는 역량까지 발휘해야 할 책무를 지게 됐다. 과학자라고 해서 기술혁신에만 몰두할 수가 없고, 기술혁신이 인류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요술 방망이인가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크리스퍼(CRISPR) 혁명’이 신바이오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크리스퍼 혁명이란 용어는 저명 학술지 ‘사이언스’가 쓰기 시작한 것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이처럼 널리 활용된 신기술이 없음을 반영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명체의 DNA를 잘라 교정하거나 교체하는 실험기법이다. DNA를 읽어서 교정하려는 부분만 수술하고, 세포의 자연적인 복구 기작에 의해 회복시키는 것이 원리다.

DNA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우리 몸속에서 끊기고 있고 또 저절로 이어지고 있다. 대사과정에서 활성산소가 생겨 DNA를 때리기 때문에 계속 끊긴다. 다행히 저절로 연결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이가 쌓여 다양성도 커진다.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격으로, 이런 변이는 암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체 내의 이런 반응을 역이용해, 유전질환의 원인이 되는 특정 부분을 유전자 가위로 망가뜨려 치유 효과를 얻는 것이다. CRISPR라는 용어는 미생물학에서 도입됐으나, 유전자 가위(Programmable Nuclease)라는 용어는 영어와 한글 둘 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 김진수 교수(서울대 겸임교수)가 붙인 이름이다.

이 기술에 대해 ‘사이언스’지는 2015년 12월 ‘2015년 획기적인 혁신기술(Breakthrough of the year 2015)’로 선정했고, ‘네이처’지는 유전자 교정시대의 개막이라고 평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2016년도 ‘세상을 바꿀 10대 기술’에 생명과학 분야의 두 가지를 선정했는데, 둘 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다. 면역 엔지니어링(Immune Engineering 항암치료)과 식물 유전자 교정 기술(Precise Gene Editing in Plants)이 그것이고, 세계적인 식물 유전자 교정의 대표 연구진 네 곳 가운데 하나로 김 교수팀을 꼽았다.

유전자 가위의 진화, 1, 2, 3세대에서 3.5세대, 4세대를 향해...

유전자 가위는 2012년 이후 어느새 3.5세대 또는 4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1세대는 96년에 최초로 제조된 ZFN(Zinc Finger Nucleases), 2세대는 2009-11년에 발견된 TALENs(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s), 그리고 3세대는 2012-13년에 개발된 크리스퍼다. 그리고 3.5세대로 크리스퍼-Cpf1가 등장하고 있다. 크리스퍼는 RNA에 세균에서 유래한 Cas9 단백질을 붙여 만든 유전자 가위다. 앞의 두 세대에 비해 효율이 훨씬 좋고, 건당 30달러 정도로 싼 데다 빠르고 사용도 간편하다. 1, 2, 3세대 유전자 가위를 모두 독자적으로 개발한 연구진은 한국의 김 교수팀이다. 그런 연유로 의뢰를 받아 이들 3가지에 대한 비교 논문도 발표했다(Nature Reviews Genetics 2014년).

크리스퍼(CRISPR; Clusters of Regularly Interspaced Palindromic Repeats)는 미생물에 존재하는 반복된 서열을 가리킨다. '주기적으로 간격을 띠고 분포하는 짧은 회문구조 반복서열‘의 약자인 크리스퍼는 80년대 일본 과학자(오사카대학 요시주미 이시노 교수)가 대장균 등 미생물의 DNA 서열을 결정하다가 우연히 발견한다. 21개 염기서열 중에 어떤 것은 종의 구분 없이 여러 가지 세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 실체에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이후 덴마크 요구르트 회사 다니스코 연구진이 세균에서 최초로 적응면역 현상을 발견하면서 그 존재가 실증된다(2007년 Science).

그 경위는 이렇다. 요구르트 제조에서 유산균을 배양할 때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면 유산균이 다 죽는다, 이 때 일부 살아남는 유산균이 있어 조사해보니 파지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적응면역에 크리스퍼가 작용하더라는 것이다. 유산균은 똑똑하게도 파지가 침투했을 때 그 DNA를 잘게 잘라 자기 유전자에 붙여 넣어 기억해두었다가 후에 파지가 다시 침입하면 그 ‘나쁜 기억’ 정보를 이용해 면역기능을 나타낸 것이다.

2012년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

2012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연구에서 역사적인 해였다. 버클리대 다우드나(J. Doudna) 교수와 카펜티어(E. Charpentier) 교수의 공동연구로 세균에서 Cas9 단백질이 규명된다(2012년 Science). 그들은 세균에 기억된 파지 DNA가 RNA로 전사되고, 이것이 세균에 있는 Cas9 단백질과 결합해 외부에서 침투한 파지의 DNA를 인식해 잘라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나아가서 Cas9에 결합하는 RNA를 바꾸면 파지의 유전자가 아닌 다른 유전자 서열도 자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들 연구에 기초해 유전자 가위 기술은 축산, 농작물, 어류, 곤충 등에 연구용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가 가위를 이용해서 최초로 인간세포에서 유전자 교정을 다룬 것은 한국의 김 교수팀이었다(2013년 1월 Nature Biotechnology). 사람의 DNA는 동식물이나 미생물과는 다르게 히스톤(histone)이라는 단백질에 돌돌 말려 있다. 때문에 이것을 인식해서 크리스퍼-Cas9가 자를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연구 대상은 HIV 에이즈 바이러스에 수용체 역할을 하는 CCR5 유전자였다. 백인 100명 중 1명은 자연적인 변이에 의해 CCR5 유전자가 망가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엔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다. 수용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CCR5 유전자가 망가진 에이즈 환자는 한 명도 없다니 신기하다.

김 교수팀의 이 연구 발표와 함께 미국 연구진 다섯 곳에서 거의 동시에 논문을 내면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3년도 안 돼 상용화 단계로 들어가 여러 개 회사가 세워졌고, 나스닥에도 상장됐다.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도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 6월 21일 최초로 암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을 허가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진이 골수종, 흑색종, 육종 등 암 환자의 몸에서 꺼낸 T세포를 유전자 교정해 복원하고 도입하는 유전자 가위 치료에 대해 심의한 결과, 심의위원회는 기권 한 표 빼고 모두 찬성했다고 한다. 올해 말쯤 암환자 18명 대상의 임상시험이 실시된다. 이에 뒤질세라 중국도 T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도입하여 폐암을 치료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유전질환,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재촉한 러시아 황태자의 혈우병

유전질환의 종류는 1만 가지가 넘고, 신생아의 1%가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난다. 생식세포에 변이가 생겨 다음 세대로 대물림하는 것이 유전병의 원인이다. 대부분 완치가 불가능하다. 혈우병(haemophilia)의 별명은 왕실 질환(Royal Disease)이다. 최초의 유전자 보인자(carrier)로 알려진 것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다. 앨버트 공과의 좋은 금슬이 유명한데 자녀를 아홉이나 뒀다. 이들이 광범위한 혼맥에 의해 유럽 왕실에 혈우병을 전파한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 이전의 영국 왕조 가계도에는 혈우병이 없었다. 빅토리아 여왕을 거치며 그 딸 셋이 유전자 보인자, 아들 하나가 혈우병 환자로 태어난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왕실로 출가한 여왕의 딸들이 낳은 왕자들이 어린 나이에 죽는 일이 생긴다. 모계 유전되는 이 유전병은 여왕의 손자와 증손자 중 10명을 혈우병 희생자로 만들었다.

가장 비극적인 에피소드는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Alix)가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II세와 결혼해 알렉산드라 왕비가 된 것이 발단이다. 왕비는 딸 넷을 낳은 뒤 외아들 알렉시스(T. Alexis)를 낳고 기뻐한다. 그러나 혈우병을 물려준 것이다. 왕비는 노심초사하며 황태자를 과잉보호했고, 이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악한 심령술사 라스푸틴(Rasputin)에게 완전 현혹돼 치명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라스푸틴은 황제의 결정까지 좌지우지하게 되고, 러시아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황제 가족은 볼셰비키의 손에 1918년(7월 17일 Ekaterinberg)에 처형된다. 그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이런저런 추측이 끊이질 않는다.

혈우병의 유전자 가위 치료 가능성은...

혈우병에는 A형이 많다. 이 경우 유전자 구조의 일부가 잘라져서 뒤집어져 있기 때문에 혈액응고인자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한다. 유전자의 잘못된 부분을 가위 수술로 잘라내 다시 뒤집는다면 치유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김 교수팀과 연세대 김동욱 교수팀이 처음으로 동물실험에서 입증했다. 혈우병에 걸린 9마리 생쥐로 실험한 결과 3마리가 완치됐고, 나머지도 죽긴 했지만 훨씬 오래 살았다. 이 결과는 혈우병 생쥐 모델에서 유전자를 교정한 세포를 써서 치유 효과를 본 최초 사례로 의미가 있다(2015년 Cell Stem Cell; Cell의 자매지).

미국 벤처기업인 상가모(Sangamo) 바이오 사이언스는 올해 B형 혈우병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혈우병 유발 유전자를 그대로 둔 채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유전질환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부모의 고통은 상상키 어렵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 불행한 이들을 위해 유전자 교정 기술은 개발되고 쓰일 수 있어야 한다.

육종, GMO, 유전자 가위 기술,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육종, GMO, 유전자 가위 기술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닮았나. 셋 다 품종 개량 기법이다. 육종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돌연변이를 대량생산해 원하는 특징을 보이는 개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는 외부 유전자의 도입으로 품종을 개량하는 것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외부 유전자 도입 없이 특정한 내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외부 유전자를 도입해 GMO를 만들어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 외부에서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에는 자연적인 변이, 즉 육종에 가깝다. 육종에서는 무작위적인 교배를 통해 좋은 형질을 만들어내는 반면, 유전자 가위는 특정 부분만 잘라서 변이를 일으킨다. 따라서 육종으로 만든 것이 GMO가 아니라면,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만든 품종도 GMO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외부 유전자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퍼근육 돼지’ 탄생의 예고편?

유럽의 벨기에 블루(Belgian Blue) 소는 육종에서 우연히 발견해 개량한 품종이다. 근육질은 많은데 근육섬유가 얇아 육질이 좋다고 한다. 최근 그 이유가 마이오스타틴(Myostatin) 유전자의 변이 때문으로 밝혀졌는데, 근육이 비대하게 발달하는 것을 막는 인자다. 그런데 돼지에서는 이런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김 교수팀은 공동연구(연변대 윤희준 교수)로 이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 체세포를 복제해 돼지를 만든 결과 대퇴부가 발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2015년 Nature 뉴스).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마이오스타틴 기능을 제거함으로써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이 적은 수퍼근육 돼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 돼지시장 규모는 1년에 15억 마리인데, 그중 중국이 8억 마리를 소비한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삼겹살을 싫어해 도축한 뒤 1/3을 버리거나 사료용으로 쓴다고 한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개량한 돼지 품종을 허용한다면 돼지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벨기에 블루 소는 몇 백 년 째 맛이 있다고 먹고 있다. 외부 유전자를 도입하지 않는 유전자 가위 기법에 의한 유전자 교정은 자연적인 변이와 구별되지 않으며, GMO라 규정하기 어렵다. 중국 정부가 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는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 또한 영국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강한 돼지를 만들었고, 호주에선 닭의 유전자를 수정해 알레르기 없는 달걀 개발에도 나섰다. 식량안보 관련 유전자 가위의 잠재적 시장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식물 유전자 교정, 미 당국은 ‘GMO가 아니다’ 판정

김 교수 팀은 식물 유전자도 교정했다. DNA를 쓰지 않고 Cas9 단백질과 RNA만 전달해서 최초로 식물 유전자를 교정해 병충해에 강한 상추를 개발했다(최성화 서울대 교수팀 공동연구, Nature Biotechnology, Nature지 뉴스 2015). 네이처 바이오텍 저널은 기초 생명공학 분야에서 인용지수가 제일 높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펜실베니아 주립대 연구진(Y. Yang)이 유전자 가위 기술로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양송이버섯을 만들었다. 버섯의 DNA 코드 문자 2개를 변형하여 산화로 인한 갈변 현상에 저항성을 높인 결과다. 이것이 GMO냐 아니냐를 미국 농무부에 문의한 결과, GMO로 규제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 개발자들이 인허가를 받아 사업화하면 되는 것이니, 유전자 가위 기술의 농작물의 상용화는 시간문제다.

바나나 멸종위기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바나나는 씨가 없어 교배를 못 하고 단일 품종이다. 유전자가 똑같다. 그래서 곰팡이 질환에 치명적이고, 이미 한 번 멸종된 적이 있다. 그 뒤 우리가 먹고 있는 카벤디시(Cavendish) 신품종이 개발됐는데, 다시 곰팡이 감염이 나타나 필리핀 재배지가 초토화됐다. 중국에 이어 아프리카에도 곰팡이가 출현했다. 남미로 번진다면 10-20년 뒤 멸종되리라 한다. 그런데 유전자 가위 기술로 바나나의 곰팡이 감염에 필수적인 수용체 유전자를 망가뜨린다면 신품종을 개발할 수 있고 세계 시장을 잡을 수 있다.

크리스퍼-Cpf1 등장으로 다가온 제4세대 유전자 가위

유전자 가위 기술이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2015년에 3.5세대니 4세대니 하는 신종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산생명과학연구원(이상욱·성영훈 교수팀)은 크리스퍼-Cpf1을 이용해 암과 면역부전의 생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Nature Biotechnology 온라인 판). 한편 같은 시기에 독립적으로 김 단장 팀과 툴젠 공동연구에서도 Cpf1 유전자 가위로 생쥐의 특정 유전자를 잘라 내 변이를 일으키는데 성공, 우연히 같은 온라인 판에 함께 논문이 실렸다.

크리스퍼-Cpf1 유전자 가위는 Cas9 단백질 대신 Cpf1 단백질을 이용한다. 2015년에 MIT(브로드 연구소)의 펑 장(Feng Zhang) 그룹이 크리스퍼-Cas II 시스템의 RNA 유도 제한효소를 발견한 것이 Cpf1이다. 두 가지 박테리아 (Prevotella와 Francisella)에서 발견돼 그런 이름을 갖게 됐다. Cas9에 비해 분자 크기가 작고 단순해 유전질환 등에 적용하는 데 효용성이 훨씬 크다. 지난해 9월 학계에 최초로 보고된 이후, 일 년도 안 돼 한국 연구진들이 동물에 적용해 세포 내에서의 기능을 확인하고, 크리스퍼-Cas9에 비해 정확도가 높고 성능이 좋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윤리적으로 얼마나 위험한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치 않다. 기법도 하나가 아니고 적용 범위가 매우 방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생식세포에 적용하는 경우 수정란이나 배아에 적용하게 돼 대대로 유전되므로 윤리적으로 허용되기 어렵다. 또한 유전자 가위가 질병 치료가 아니라 아이큐를 좋게 한다거나 키를 키우거나 하는 데 쓰인다면, 과연 그런 걸 허용해야 할까. 아니다. 아직은 유전자가 정확히 알려지지도 않았고 단 하나의 유전자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우리 세대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형질 강화에 쓴다면 윤리적으로 수용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다음 다음 세대로 내려가면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초기 시험관 아기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많았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도 초기엔 논란이 많다가 일반화됐다. 분명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유전자 기술에 대한 윤리 기준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윤리적 기준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당대의 사회적인 소통과 합의를 통해 그 시대 가치관에 맞게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로서는 유전자의 특정한 일부분만 교정해서 치료하는 트랙을 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시점에서는 ‘genome editing technology’의 우리 말 번역에서 ‘편집 기술’보다는 ‘교정 기술’이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앞으로 확장과 활용 가능성은 매우 광범위하다. 그러면 아마도 ‘편집’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상용화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21세기 생명공학 연구는 생명윤리와 기초연구 진흥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 같다. 한편에선 유전자 컨트롤로 인해 인류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경고가 새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답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길로 가서 답을 찾아내게 돼 있다. 그것이 과학기술의 속성이다. 물론 연구비와 인력 양성 등 지원이 따라줘야 한다. 생명공학 신기술을 둘러싸고 국가적인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 충격이 엄청날 것이므로 생명윤리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은 사회문화적 배경과 국익 차원에서 선택을 달리 하게 될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유전자 가위 규제

과학기술 관련 규제도 나라마다 규제 당국마다 판단이 달라 차이가 난다. 만일 유전자 가위 기술을 GMO로 규제하게 된다면 관련 분야의 기술혁신과 실용화는 침체될 것이다. 기초연구도 규제로 인해 동력을 잃을 것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 규제는 현재로서는 몇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인간 생식세포와 체세포 치료는 구분돼야 한다’, ‘생식세포 유전자 교정에 대해서는 임상과 연구를 구분해야 한다’, ‘혈우병 등 유전질환의 유전자 교정과 IQ 향상 등 유전자 형질 강화는 구분돼야 한다’ 등.

그러나 윤리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2016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가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런던의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는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불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크리스퍼 가위로 잘라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인공 수정란의 빈혈 유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실험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 규제에서 미국은 진취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2016년 6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크리스퍼-Cas9 기술을 이용한 차세대 세포치료제(CAR-T)의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승인한 최초의 사례다.

농작물의 경우 미국은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더라도 그 생산품에 유전자 가위가 남아 있지 않으면 유전자 변형이 아니라고 본다. 비즈니스가 활성화될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반면 유럽은 까다롭다. 크리스퍼를 DNA 형태로 전달한 뒤 그것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유전자 변형 작물로 규제한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DNA를 쓰지 않는 유전자 가위 기술 방식에 대해서는 유전자 변형이 아니라고 볼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 관련 우리 규제는?

유전자 수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세포를 취해 시험관에서 교정한 다음 다시 넣어주는 체외치료, 그리고 유전자 가위 기술로 체내로 바로 전달하는 체내치료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생명윤리법 개정으로 체외치료는 규제를 풀었다. 체내치료는 여전히 막혀 있다. 다만 생명윤리법 47조에 의해 ‘유전질환, 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그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 그리고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다른 치료와 비교할 때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라는 두 가지 조건을 둘 다 충족할 때에 한해 체내치료를 허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가운데 이 두 가지 조건이 중복 충족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예를 들어 탈모나 통증은 치명적이지도 않고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러니 국내에서는 임상시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2015년 법 개정 이전에는 복지부 장관이 허락하는 경우 치명적이거나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질환에 대해서도 체내치료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조항도 없어져서 오히려 규제가 강화돼 버렸다. 기본적으로 연구에 큰 제약이 되고 있는 항목은 국제적인 수준에 맞추도록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체 내 유전자 변이 관련 연구 범위도 과도하게 규제되고 있는 부분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다른 치료와 마찬가지로 FDA가 유전자 체내치료를 전 임상, 임상 1, 2, 3상을 통해 규제한다. 우리는 이런 규제에 추가해서 생명윤리법으로 묶고 있어 이중규제 성격을 띤다. 미국은 약사법상 유전자 치료 질환 연구에 대한 제한이 없다. 단 임상시험 참여자 안전 가이드라인과 유전자 치료제 신약허가 심의는 강화했다. 유럽은 유전자 치료제 등 첨단 치료제의 연구개발 범위에 제한이 없고, 유럽의약품청의 첨단치료제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임상시험과 신약 허가를 하도록 돼 있다.

민감한 주제, 배아 연구

작년 12월에 개정된 생명윤리법은 배아와 태아의 연구를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해외 동향을 보면, 2015년 중국은 두 차례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도입한 논문을 발표했고, 영국과 스웨덴에서도 배아 유전자 연구를 승인했다. 작년 미국 국립과학원, 중국 국립과학원, 영국 왕립학회의 공동주관 국제서밋(International Summit on Human Gene Editing)에서는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는 지속돼야 하나, 임상에 적용해 아기를 출산하게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법에 의해 배아 연구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수요가 있는 한 배아 연구 금지는 갖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중국 등 허용된 나라로 가서 시험관 아기 수술과 함께 유전자 수술까지 받거나, 국내 IVF 클리닉에서 몰래 배아 유전자 수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아의 유전자 수술 금지도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 DNA 서열 결정 기법의 발전으로 임산부의 혈액에 있는 태아 DNA를 추출해 돌연변이 유무를 판별할 수 있다. 태아가 심각한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부모는 불법적으로라도 태아 유전자 수술을 감행하려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으로 민감하다 할지라도 기초연구 자체는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는 것이 오히려 기술혁신에 의해 안전을 기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기초연구 이후 사업화 과정에서는 윤리적 측면의 규제가 들어가는 게 마땅하다. 문제는 요즘처럼 기초-응용-개발 사이의 시차가 좁아져서 구별조차 곤란한 상황에서는 규제로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규제 인력의 전문성 강화와 연구자들과의 상호 이해 기반 구축으로 모니터링과 보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규제, 나쁜 규제

올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정책 제안에서 ‘유전가 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개체의 안전성 검증을 위한 새로운 규제 체계 마련 필요’, 그리고 ‘기존 GMO 규제로 적용 가능하다는 입장’과 ‘새로운 규제 틀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으로 ‘현장에서 곤란이 있는 상황’이라 보고하고,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정부가 우려를 표하고 부작용에 사전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윤리적 측면을 고려하되 기초연구의 자율성과 기술 혁신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판단이 필요하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규제가 강해질수록 유리한 것은 다국적 거대기업이다. GMO의 사례가 말해준다. 몬산토(Monsanto)는 세계 GMO 특허의 90%를 독점하고 있다. 규제의 장벽을 넘는데 보통 13년 걸려 1,30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 중소 규모로는 엄두도 못 낸다. GMO 식품은 이미 20년간 누구나 거의 매일 먹고 있다. 한국은 GMO 작물을 한 평도 재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GMO의 최대 수입국가군에 든다. 다국적 거대기업은 굳이 땅이 좁은 나라에서 재배할 필요가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생산해서 수입하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GMO의 역설이다.

국제적 수준보다 강력한 규제를 하다 보면 연구개발 경쟁력에서 뒤지고 모처럼 얻은 신성장동력의 기회의 창을 놓치게 된다. 결국은 비싼 로열티를 내고 해외에서 개발한 것을 들여오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규제는 기술적인 검증 여부도 중요하지만 복합적인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라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쁘다는 증거가 없다’와 ‘안전하다는 증거가 있느냐’로 양쪽으로 갈려 논란이 가열되기 일쑤다. 입법 전문가, 사회과학, 윤리, 과학기술, 시민사회 등의 이해당사그룹이 생명윤리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도출하고 진취적인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유전자 가위 특허대전 : 노벨상 0순위를 둘러싼 특허전쟁의 승자는?

정책 측면에서는 윤리적 측면을 고려한 규제도 중요하지만, 기초연구 역량 제고도 중요하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모처럼 획득한 과학연구의 선도적 역량을 권리 측면에서 보호해야 할 책무도 있다. 지금 크리스퍼 기술을 둘러싸고 21세기 국제적인 특허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김진수 교수, 미국 버클리대 다우드나 교수,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 등이 특허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는 2012년에 출원한 특허들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등록과정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고 후속 특허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최근 이 기술이 노벨상 0순위가 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유전자 가위 교정의 아이디어를 낸 버클리대의 다우드나 교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 교정 자체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미 1, 2세대 유전자 가위로 구현된 것이므로 다우드나 교수를 최초 제안자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버클리대 연구진은 최초로 2012년 5월 25일 크리스퍼-Cas9 유전자 가위 특허를 출원했다. 브로드연구소는 같은 해 12월 12일 세포 데이터까지 갖추어 특허를 출원했으나, 변호사를 동원해 신속심사(fast track)를 거쳐 2014년 4월 특허권 등록을 먼저 따냈다. 제일 늦게 출원했는데 제일 빨리 받은 것이다. 이에 버클리대는 브로드연구소가 등록한 특허권이 무효라며 중재를 신청했다.

그런데 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세포의 유전자 교정이 가능함을 최초로 입증하고 특허 출원(2012년 10월 23일)을 한 곳은 김진수 교수 팀과 한국의 벤처기업 툴젠이다.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 보다 7주 앞서 출원했으나 시간이 걸려 1년 반쯤 뒤 공개되는 바람에 주목을 못 받았다. 앞으로 계속해서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선두 그룹에 낄 것인데, 국내 연구개발 환경과 툴젠 등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대로 간다면 승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변호사들의 전쟁, 결국 자금력 싸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어쩌나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특허분쟁은 발명 자체의 내용보다 변호사들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어떤 논리로 대응하는가가 핵심이고 결국 돈 싸움이 된다. 이전부터 분자생물학의 특허는 변호사들의 전쟁이라는 말이 있었다. 여러 기술이 얽힌 특허라 변호사들의 논리 싸움으로 판가름 난다는 뜻이다. 자금 확보가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MIT 특허 실시권을 확보한 에디타스(Editas)와 버클리대의 특허 실시권을 확보한 인텔리아(Intellia)는 이미 나스닥에 상장돼 수천 억 원의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특허 무효소송에 걸렸지만, 거래는 활발하다고 한다. 인텔리아의 특허는 등록조차 되지 않은 회사인데 나스닥에 올라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예 장에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한국의 툴젠은 코스닥에 올리려다 두 번 낙방하고 그 이전 단계인 코넥스에 겨우 올라 있다. 그러니 자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시가 총액이 경쟁사 대비 1/10 정도로 저평가되고 있으니 특허전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이 자금 확보와 규제 측면에서 좀 더 자유로웠더라면 훨씬 더 빨리 앞서가고 제대로 평가받았을 것이란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에 있다는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되지 않도록 제도적 인프라를 보강하는 일이 시급하다.

중복연구의 옥석 가리기, 융합연구 풍토 조성은....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 우리의 기초 경쟁력은 있다. MIT Technology Review에 의해 식물 유전자 교정의 선도 연구진으로 선정된 것도 식물원형질 세포를 이용해 식물을 만드는 독자적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생명공학연구원 유장렬 박사 팀)하는 등 저변 연구 성과 활용과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김진수 교수). 그 결실로 최초로 발표한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용되면서 한국 연구진이 선도그룹에 낀 것이다.

어찌 보면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제 시작일 뿐 현존 기술의 신제품 개발과 추가적 기술혁신과 신사업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다. 2012년 특허 출원한 버클리, MIT, 툴젠 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강자와의 치열한 경쟁마당이 펼쳐질 것이다. 치료 부문에서는 미국의 저력과 기반에 도저히 비할 바가 못 된다. 심지어 규제가 심하지 않은 중국에 비해서도 불리하다.

신성장동력을 찾는다면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던 중, 바이오 분야 크리스퍼 혁명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됐다. 우리 김진수 교수 팀 등이 유전자 가위 기술 혁명의 최전선에 선 것은 절호의 기회이자 엄청난 자산이다. 그러나 모처럼 최첨단의 현장에 진입한 우리 연구진이 계속 미국의 최강 팀들과 경쟁해 프론티어를 개척할 수 있을까. 한국의 원천기술 확보가 가능할 것이냐가 투자업계와 바이오텍 전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민관합동 태스크포스 구성, 위기를 기회로 만들 해법을 찾자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세포내 전달 방법의 효율을 더 높이고, 예상치 못한 유전자 부위를 자르거나 변형시킬지도 모르는 오프 타겟(off target)의 돌연변이를 측정하고 제어하고, 환경에 미칠 영향을 연구하는 등 기술 내적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연구는 물론 개발과 상용화로의 혁신체계 작동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규제 합리화, 특허 출원 경쟁력, 연구 지원 체제, 산학연의 협력과 역할 분담 등 제도적, 사회적 분위기의 쇄신이 필요하다.

유전자 가위 기술 연구는 현재 IBS의 국책 연구단 체제 중심으로 수행되고 있다. IBS는 연구 성과에 대해 세계적인 평판을 얻고 있다. 그러나 그 강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의 융합으로 시너지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의과학, 생명공학, 미생물학, 유전학, 화학, 농학, 축산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학제적으로 참여할 때 혁신이 일어난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여기저기서 경쟁하고 보완된 연구의 성과다. 1901년 이후 작년까지 노벨 생리의학상(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수상자는 210명이었고, 그 가운데 단독 수상은 38건이었다. 중복 연구의 옥석을 가리고 관련 분야가 융합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보다 합리적인 연구비 배분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신성장동력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여기까지 왔다. 노벨상 수상감이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놓고 앞으로 선진국을 비롯해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텐데, 특허 실시권의 민간기업 양도, 코스닥 상장, 중복 규제 등의 관문은 개인이 넘어서기엔 너무나 버겁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싸고 모처럼 얻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민관 합동의 TF를 구성해 심층 분석하고 조속히 해법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