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야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대만의 500위안짜리 지폐에는 리틀 야구팀(난왕초등학교)의 그림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에 이어 세 번째로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1990년 대만프로야구리그(CPBL)가 4개 팀으로 출범한 이후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97년에는 11개 팀이 양대 리그로 나뉘어 시즌을 치렀다.
그러나 96년부터 이어진 6차례의 굵직한 승부 조작 스캔들로 리그는 풍비박산이 났다. 2009년부터 대만 프로야구는 리그 출범 때와 같은 4개 팀으로 줄어들었다. 대만 프로야구의 몰락 과정은 국내 프로야구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박현준·김성현)에 이어 지난 21일 이태양(23)·문우람(24)이 가담한 승부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국 프로야구 역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최초의 승부 조작 스캔들은 ‘검은 호랑이’ 사건이다. 95년 10월 14일 싼상 타이거즈의 투수가 고의로 볼을 난발해 팀을 패배로 몰고 간 사건이 벌어졌다. 이듬해 6월 한 팬의 폭로로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감독과 14명의 선수가 구속되거나 기소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 검찰은 집중 수사에 들어갔고 이듬해 ‘검은 독수리’ 사건이 터졌다. 폭력조직 삼합회가 주도하는 불법 도박에 연루된 스바오 이글스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사건이다. 그해 전반기 우승팀 스바오 이글스는 체포된 선수가 19명으로 늘어나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다른 구단에서 선수를 빌려 후반기를 치렀다. 팀은 이듬해 해체됐다.
실망한 팬들은 야구장을 떠났다. 97년 총 관중 수(68만5000여 명)는 1년 전(136만 명)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99년에도 프로야구 승부 조작과 관련한 사건이 터졌다. 폭력조직이 승부 조작 제의를 거절한 웨이취안 드래건스 쉬성밍 감독을 칼로 찌른 것이다. 대만 정부는 야구계의 정화를 약속했고 재발 방지를 외치며 수습에 힘썼다. 2003년에는 6개 팀이 다시 단일리그로 통합하면서 프로야구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어둠 속의 ‘보이지 않는 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승부 조작 사건이 터졌다. 그 여파로 2007년에는 중신 웨일스가 해체됐고, 2008년에는 디미디어 티렉스가 법원의 강제해체 명령을 받았다. 2008년 디미디어 사건은 폭력조직이 선수나 감독과 결탁한 수준을 넘어섰다. 아예 사채를 동원해 구단 인수에 관여했고 조직원을 구단 직원으로 둔갑시켜 조직적인 승부 조작을 감행해 충격을 줬다. 정상적으로 팀을 운영하던 기존 구단들마저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리그의 인기 하락은 물론 대만 야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대만 야구가 승부 조작에 취약한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프로야구 시장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대만 프로야구 구단들은 선수 연봉에 많은 투자를 하기 어렵다. 리그 최고 연봉자인 전 메이저리거 궈훙즈(35·퉁이 라이온스)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 연봉(16억원)의 4분의 1 수준인 4억3000만원을 받는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거액의 보상을 약속하며 접근하는 폭력조직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승부 조작에 연루된 선수들이 리그에서 제명된 이후 브로커로 변신해 이전 동료를 포섭하는 악순환도 이어졌다. 대형 폭력조직의 수법 또한 악랄하다. 선수는 물론 선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만 정부까지 나서 일벌백계를 외쳐도 선수들은 쉽게 악(惡)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