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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현대원·문형표·주영섭…자문회의 출신 13명 고위 공직 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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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부 인사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등용문으로 뜨고 있다. 이곳 민간 자문위원 출신들이 공공기관장 등 고위 공직에 다수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잘나가는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들

박근혜 정부 들어 위촉된 자문회의 민간 자문위원은 1~2기 통틀어 56명. 이 가운데 12명이 고위공직자(차관급 이상)·공공기관장으로 선임됐다. 현재 활동 중인 자문위원 25명을 제외하면 ‘전임자’ 31명 중 39%가 공직으로 진출한 셈이다. 사무조직인 자문회의지원단장 출신인 유병규 한국산업연구원장까지 포함하면 13명(42%)이 공직에 앉았다.

이 외에도 다수의 자문위원이 정부 요직에서 민간 전문가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대부분이 정통 관료 또는 정계 인물임을 감안하면 민간 출신 관료 중 상당수가 이 인재 풀에서 발탁됐다. 자문회의가 학계·연구계 등 전문가 그룹이 고위 공직으로 진출하는 발판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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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회의 민간위원 중 가장 최근에 등용된 사람은 현대원(52)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다. 지난 6월 8일 청와대 수석과 3개 부처 차관 인사에서 현 정부의 네 번째 미래전략수석으로 임명됐다. 그는 서강대 교수 재직 당시 제1기 자문회의 창조경제분과 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그의 전전임자인 윤창번(62) 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도 자문회의 같은 분과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해 현 정부의 ICT·방송 분야 정책 및 공약의 밑그림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윤 전 수석은 2013년 1기 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된 지 석 달 만에 미래전략수석으로 차출됐다.

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문형표(60)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시 자문위원 출신이다. 문 이사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신분으로 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임으로 발탁됐다. 1년9개월의 재임기간 중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 도입, 담뱃값 인상 등의 정책을 만들었다. 이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터진 뒤 초동 대응 부실 등을 이유로 전격 경질됐다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낙점되면서 공직에 복귀했다. 이사장 임명 당시 인선 과정에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직 중앙행정부처 관료 중에서는 주영섭(60) 중소기업청장, 유경준(55) 통계청장, 김경환(59) 국토교통부 1차관, 이영(51) 교육부 차관이 자문회의의 멤버다. 주 청장과 김 차관은 1기, 유 청장과 이 차관은 2기 위원이다. 모두 대학 교수 또는 연구원 재직 시절 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공직에 임명됐다. 김 차관은 국토부에 오기 전까지 2년여간 국토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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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회의 출신의 전문가 그룹이 각종 정부 출연연 기관장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도 현 정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현정택(67)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유길상(63) 한국고용정보원장, 김세종(56) 중소기업연구원장, 임병인(56) 사회보장정보원장 등이 모두 자문회의 위원 출신 출연연 기관장이다. 자문위원뿐 아니라 유병규(56) 전 자문회의 지원단장이 지난 5월 신임 산업연구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김 차관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공직에서의 실적이 검증되면 향후 이들이 중앙부처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이들 외에도 자문회의 출신 인사들은 정부 산하 상임·비상임 위원회 등 공직 외 여러 요직에 포진돼 있다. 1기 민간위원을 지낸 서동원(64)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현재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이다. 규제개혁위는 정부의 규제 정책을 심의·조정하고 규제의 심사·정비 등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기구로 국무총리와 민간 위원장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이 밖에 금융위의 금융혁신위원회, 감사원 감사혁신위원회의 민간 위원장도 자문회의 멤버 안에서 나왔다.

1기 자문회의 위원인 신인석(51) 중앙대 교수와 조동철(55) KDI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다.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금통위원은 차관급 예우를 받는 요직이다. 당연직인 한은 총재·부총재를 제외한 5명 중 2명이 자문회의 출신이다. 신 교수는 금통위원으로 추천되기 전 2년간 민간 연구기관인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역임했는데, 그의 후임인 안동현(52) 자본시장연구원장 역시 2기 자문위원이다. 조 교수는 1기에 이어 2기에도 자문회의 위원에 위촉돼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자문회의 출신 공직자 13명을 진출 기관별로 보면 공공기관장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중앙행정부처가 4명으로 뒤를 이었고 청와대 수석 2명, 국회의원 1명을 배출했다. 중앙행정부처와 청와대로 진출한 인사는 모두 차관 이상 직급이다. 서강대와 KDI 출신이 다수 포진된 것도 자문회의의 특징이다. 현대원 수석, 김경환 차관은 서강대를 졸업해 모교에서 교수직을 맡은 바 있다. 박영석·조윤제·왕상한·허윤 위원도 서강대 교수 출신이다. 현정택 원장은 자문위원 위촉 전 KDI 원장을 역임했고 문형표 이사장, 유경준 청장, 이영 차관 등은 KDI 출신으로 자문위원을 거쳐 공직에 임명된 사례다.

현 정부 전까지만 해도 자문회의 위원이 고위 공직자로 등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문회의 위원의 면면을 보면 기업인들과 노무현 정부 시절 최고위층 관료들이 대거 포함됐다. 관직으로의 ‘입구’보다는 ‘출구’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위상과 기능이 확대된 데다 위원 역시 학계·연구계 전문가 위주로 구성되면서 자문회의 출신 공직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권력 내부의 견제와 균형 원리를 훼손시킬 수 있는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제기한다. 자문회의는 1기 위촉 당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미래연) 출신들이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 3분의 1인 9명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미 논란이 된 바 있다. 현정택 원장, 유창번 전 수석, 유경준 청장, 유길상 원장 등이 미래연 출신이다.

1기 자문위원 중엔 미래연 출신은 아니지만 대선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인물도 4명이 포함됐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이 같은 코드 인사가 소위 ‘답정너’(답은 정해놨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 식의 행태를 조장해 대통령에게 다양한 경제적 식견을 제공한다는 자문회의 취지를 일부 훼손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해하는 인사를 요직에 기용해 일관성 있고 힘 있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옹호론도 있다. 김광두 미래연 원장은 “업무 관련성이 없는 자리면 얘기가 다르지만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공직에 전문가가 진출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며 “출신만 따져 인사를 비판하면 국정운영이 오히려 경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문가를 국정에 활용하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특히 정부 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정책 실무를 경험하고 관련 역량이 어느 정도 노출된 전문가를 등용할 수 있다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구체적인 심의·의결권이 있는 위원회의 경우 민간위원 활동을 공직으로 가는 ‘정거장’으로 여겨 전문가가 거수기 역할만 하게 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 BOX] 유사 자문기구 통폐합해 출범, 30명 이내 각계 전문가 활동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헌법상 최상위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대통령에게 경제 관련 전략 및 주요 정책 방향의 수립, 제도 개선, 대내외 주요 현안 과제 대응 등에 대한 자문을 수행한다. 정책 수립이나 심의·의결 등 실제 권한은 거의 없다. 헌법에 근거가 마련돼 있지만 관료의 참여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구성되지 못하다가 1999년 ‘국민경제자문회의법’이 제정돼 설립됐다. 지금은 대통령이 위촉하는 30명 이내의 각계 전문가가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대통령이 당연직 의장이고 부총리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 미래전략수석 등 5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민간위원은 비상임직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공직에 임명될 경우 보통 위원직을 사퇴한다.

자문회의의 위상과 기능은 현 정부 들어 과거에 비해 커졌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미래기획위원회 등 여러 유사한 자문기구를 모두 통폐합해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출범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는 “사실상 국민 경제에 관한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의 기능을 하게 되며 경제 부흥을 위한 핵심 국정과제와 연계해 경제 분야의 국정과제를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위원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현 정부 1기, 지난해 2기 자문위원이 위촉됐다. 현재 분과는 ‘기초경제Ⅰ’ ‘기초경제Ⅱ’ ‘혁신경제’ ‘균형경제’ 등 4개로 구성돼 있다. 1기 위촉 당시 ‘창조경제’ ‘민생경제’ ‘공정경제’ ‘거시금융’으로 구성했다가 4대 개혁 등 국정과제 반영 차원에서 분과를 재조정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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