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갈기 없는 수사자, 오리발 신은 오리…약점 있는 사람 닮아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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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방문객들이 힙합 매니어 ‘제이지’와 사진 찍고 있다. [사진 임현동 기자]

스마트폰으로 디지털화된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 그래도 내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내 방에 놓아둘 수 있는 ‘물건’이 가지는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좋아하는 화면 속 캐릭터가 내 ‘소유’가 됐을 때의 만족감은 무시할 수 없다.

오프라인서도 인기 끄는 카카오프렌즈

지난 2일 서울 강남역 근처에 문을 연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는 그런 만족감의 응집체다. 라이언·무지·어피치·제이지·프로도·네오·튜브·콘 등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친숙한 캐릭터들이 1500가지 제품으로 부활했다.

문을 연 지 20일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손님이 매장을 찾는데 남녀노소 다양하다. 하루 평균 매출은 평균 9000만원. 방문객 한 사람당 약 9000원어치의 상품을 사 가는 셈이다.

카카오프렌즈 오프라인 매장은 전국에 18개가 있다. 현대백화점 신촌점(1호점)을 시작으로 지난 15일 신라면세점에 18호점을 열었다. 대표 매장인 강남역 플래그십스토어는 총 3개 층에 면적이 694㎡(210평)로 기존 매장 규모 1위였던 코엑스점(213㎡)보다 세 배 이상 넓다.

층마다 품목별로 문구·모바일용품(1층), 홈인테리어·패션액세서리·뷰티(2층), 카페(3층)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 이런 분류는 큰 의미가 없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테마파크에 온 듯 자유롭게 캐릭터 사이를 돌아다니며 즐기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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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라이언’ 인형. [사진 임현동 기자]

지난 15일 오후 2시30분. 매장 앞엔 입장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딸과 함께 입장을 기다리던 김모(60·여)씨는 “작정하고 왔다. 프로도를 좋아해 이것저것 제품을 살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라는 딸 김효나(27)씨는 “카카오프렌즈는 캐릭터 안에 구체적인 성격이 보여 좋아한다”며 “외국 친구들이 카톡 이모티콘을 신기해하길래 선물로 주려고 왔다”고 했다.

친구 사이인 김가희(32)씨와 이혜연(32)씨는 “우리는 ‘콘’(악어를 닮은 캐릭터)의 매니어인데 콘은 단독 제품이 적어 큰 매장을 찾아 다니고 있다”며 “콘 제품을 더 많이 만들어 달라고 카카오프렌즈에 요청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박승연 카카오프렌즈 부사장은 “디즈니 같은 기업이 되고 싶다”며 “사업적으론 ‘유니클로’ 같은 브랜드가 경쟁사”라고 말했다. 그는 “1920년대 설립된 디즈니는 오랫동안 캐릭터 산업을 발전시켜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며 “유니클로 역시 대중에게 친근한 브랜드로서 합리적 가격에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한다는 점이 우리의 목표와 통한다”고 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6월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을 본격적인 캐릭터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사업부를 떼어내 ‘카카오프렌즈’란 별도 법인(대표 조항수)을 세웠다. 박 부사장은 “캐릭터 자체의 인기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캐릭터들의 매력도를 높이려면 돈을 벌어 재투자해야 하고 결국 독자적인 사업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카오프렌즈 매장의 궁극적 목표는 매출 증대가 아니라 ‘고객 경험’의 극대화다. 캐릭터 사업의 특성상 고객이 즐겁지 않고 호기심을 잃게 되면 상품 매출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은 “캐릭터에 계속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 전체 직원 56명이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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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앉으면 남친이, 남성이 앉으면 여친이 질투한다는 ‘프로도&네오’ 벤치. [사진 임현동 기자]

직원의 약 40%는 디자이너다. 이들은 어떤 상품이 어떤 상황에 필요한지, 어떤 캐릭터와 어울리는지 아이디어를 떠올려 수백, 수천 장의 스케치를 그려본다. 스케치를 놓고 팀이나 사내 품평회 등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 뒤 최종 상품이 결정된다. 매진 행진 중인 ‘후드티 입은 라이언’ 인형(60㎝)도 이옷 저옷 입혀보다가 하늘색 후드티가 라이언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아 낙점됐다.

카카오프렌즈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과 닮았다는 점이다. 8종 캐릭터가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각자 한 가지씩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맏형 격인 수사자 라이언에겐 갈기가 없다는 신체적 결함, 프로도에겐 잡종견이라는 태생이 자격지심이다. 네오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는 가발이고, 섹시한 악동 복숭아 어피치는 사실 자웅동주다. 무지(단무지)는 토끼 옷이 없으면 소심해지고 튜브(오리)는 작은 발이 콤플렉스라 오리발을 신는다. 냉철해 보이는 두더지 요원 제이지마저 땅속나라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박 부사장은 “이렇게 약점이 있고 화를 내고 감정을 표현하는 캐릭터는 일부러 기획된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각자 공감이 가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당분간 카카오프렌즈 군단에 새로운 캐릭터가 합류할 계획은 없다. 다만 박 부사장은 “현대사회는 감정이 굉장히 복잡한 시대”라며 “만약 사람들이 느끼는 특정 감정을 표현할 만한 캐릭터가 없다면 그 감정에 잘 어울리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엔 캐릭터 상품 종류를 많이 다양화할 계획이다. 식품은 물론 패션, 특히 신발과의 제휴를 진행 중이다. 조만간 플래그십 매장 2호도 생긴다.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 103억원의 3배 이상으로 잡았다. 하루 평균 1000만 명이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카카오프렌즈를 스마트폰 스크린이 아닌 실제 생활 공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S BOX] ‘후드티 입은 라이언’ 캐릭터 인형 매진 행렬…“따뜻한 감성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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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 중 가장 잘나가는 캐릭터는 뭘까. 라이언(Ryan)이다. 팬들 사이에서 ‘라느님(라이언+하느님)’으로 불릴 정도로 독보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2일 선보인 ‘후드티 입은 라이언’ 인형은 벌써 7번째 주문에 들어갔는데도 입고 당일 품절될 정도로 호응이 좋다. 스마트폰 케이스, 의류, 쿠션 할 것 없이 라이언 제품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 물량이 금방 매진돼 소비자 불만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라이언은 언뜻 보면 머리 큰 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갈기 없는 수사자다. 올 1월, 카카오프렌즈가 3년 만에 선보인 이 무표정한 캐릭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라이언은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위안을 주는 캐릭터다. 덩치는 크지만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지녔다. 커다란 덩치에 까맣게 앞을 응시하는 두 눈이 특징이다. 상심한 친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춤추며 기뻐한다. 맏형처럼 듬직하지만 때로는 철없는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카카오프렌즈 측은 “라이언의 인기에는 무심한 듯 따뜻한 감성을 지닌 캐릭터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으려는 심리가 반영됐다”며 “여기에 자신만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하는 매니어 문화, 희소성 있는 제품에 대한 소비 욕구 등이 합쳐져 매진 행렬을 일으키고 있다”고 풀이했다.

글=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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