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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왕따·퇴학·모던뽀이…예술계 별 이해랑의 인간적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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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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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의 거인 이해랑
유민영 지음, 태학사
768쪽, 4만5000원

올해는 연극연출가이자 38세에 초대 예술원 회장에 올랐던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한 평전이다. 700페이지가 넘고 양장판이라 그 두꺼운 양에 우선 부담된다. 또한 평전이라면 얼마나 고루한 얘기로 ‘용비어천가만 불러댈까’ 싶기도 하다.

막상 집어들면 술술 읽힌다. 생생한 묘사가 많기 때문이다. 유년기만 보면 이런 사고뭉치가 없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선생은 명문가 외동아들이었다. 할아버지(이재영)는 조선말 왕가의 의전관이었고, 아버지(이근용)는 1960년대 초반 부산시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선생은 네 살때 어머니를 잃었다. 이듬해엔 자신을 돌보는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마음 둘 곳 없는 소년 이해랑은 교동국민학교 다닐때는 김두한과 어울렸고, 중학교때는 만주로 무전여행을 떠나는 등 돌출행동을 일삼아 툭하면 퇴학당했다. 일본으로 유학 가서는 왕따를 당했다. 중학시절 학교를 무려 다섯번이나 옮겨야 했다. 하지만 이런 방황과 번민이 결국 그를 예술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책엔 이런 서술도 나온다. “이해랑은 그대로 노는 건달(?)형 학생이었다. 뭔가 늘 불안정한 상태였고 학교 수업엔 전혀 관심조차 없었으며 옷 잘 입는 ‘모던 뽀이’였다.” 이거 정말 평전 맞나.

고인은 1966년 ‘이동극장운동’을 전개한다. 변변한 공연장이 없던 시절, 대형버스를 개조하여 야외에서도 공연하며 숙식을 해결한 움직이는 소극장 운동이다. 출범 첫해 77만명이 넘게 관람할 만큼 폭발적 인기였다. 고인이 왜 험한 길을 자초하는지, 왜 현대 연극의 거목인지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와 읽는 재미를 두루 충족시킨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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