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 속으로] ‘자이니치 청년’ 강상중의 삶 바꾼 한장의 그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기사 이미지

구원의 미술관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출판사
240쪽, 1만5000원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다 미증유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덮쳤던 2011년 여름, 강상중(66) 도쿄대 명예교수는 『당신은 누구야? 나는 여기 있어』라는 책을 펴냈다. 일본 사회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망연자실에 빠져있던 때였다. ‘자이니치(在日) 코리안’이라는 태생적 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혼신을 다해온 강 교수는 30여 년 전 삶의 전환기에 만났던 ‘인생의 그림 한 장’을 떠올렸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자화상이었다. 투명한 눈동자로 앞쪽을 바라보는 강인한 그 얼굴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각한 사람의 모습으로 방황하는 청년 강상중에게 ‘결정적인 순간’을 선사했다.

제목을 『구원의 미술관』으로 의역한 이 책은 이처럼 강 교수에게 감동을 준 그림 이야기다. 2009년 4월부터 2년에 걸쳐 일본공영방송 NHK ‘일요미술관’ 사회를 맡아 나름 ‘미의 진실’과 ‘인생의 심연’을 찾아 시도한 미술 에세이다. 시대와 마음의 병을 어떻게 치유할까, 길을 찾아온 그에게 그림은 살아갈 힘을 주는 일종의 빛이었다.

“제 자신을 한없이 녹아내리게 만들었던 형언할 수 없는 감동, 그것이야말로 미로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22쪽)

강 교수는 암에 걸린 아버지가 불쑥 그에게 던진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내는 그기 뭐든 간에 받아들있데이. 그케도 절대 뺏기마 안 되는 거는 딱 붙잡고 지켰데이.” 삶의 의지를 전승하는 그림 앞에서 저마다 ‘받아들이는 힘’을 느껴보라는 그의 목소리가 담담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