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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고대 철학자 몽상이 무인 우주선 띄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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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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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임피, 홀리 헨리 지음
김학영 옮김, 플루토
724쪽, 2만8000원

기묘한 조합이다. 전공이 사뭇 다른 미국 애리조나대 천문학 교수(임피)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영어학 교수(헨리)가 손을 잡았으니 말이다. 헨리는 20세기 초 천문학의 발달이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현대 영국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한 인문학자다. 두 지은이는 우주가 자연과학적인 인지 대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상상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인류는 천문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구를 넘어 ‘다른 세상’을 꿈꾸어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 기록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우주는 넓이에 한계가 없으며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양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보다 더 크다고 주장해 불경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고향에서 추방됐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은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이 살고 있을지 모르는 곳을 포함해 다수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다원설을 내놨다. 서양 기독교는 다원론을 이단시했다. 교부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은 여러 세계를 창조할 권능이 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으로 다원설을 잠재웠다.

갈릴레오 이후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고 하지만 3세기 동안 겨우 태양계의 별이나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후반 이후 광속의 발전을 이뤘다. 지은이들은 그 바탕을 인간 상상력과 도전정신에서 찾는다. 고대 세계의 몽상가들은 현대 세계의 SF작가들과 상상력의 끈이 이어져 있으며 이는 우주에 탐사체를 보내는 진취적인 시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무인우주선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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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목성 궤도에 진입한 탐사선 ‘주노’. 2011년부터 28억㎞를 비행해 목성 근처에 도달했다. [사진 NASA]

1976년 7월20일 화성에 착륙한 바이킹호, 2004년 1월과 2004년 1월 화성에 안착한 화성탐사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1977년 여름 발사돼 지금까지 지구에서 가장 먼 우주공간을 항해하고 있는 보이저 1호와 2호 등 깊숙한 우주의 은밀한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준 ‘우주밀사’의 생생한 활약상이 전개된다.

그러면서 인류는 우주에도 지평선이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저 너머가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할 수 있다. 지난 40년간 인류가 발사한 행성탐험 인공위성들과 우주탐사 밀사들은 인류 상상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있다. 우주에 가고 싶다.

[S BOX] 감성 자극하는 천문자료들…우주과학은 예술이자 인문학

신비한 고리를 가진 토성이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돌려면 약 30년이 걸린다. 태양이 토성의 북반구와 남반구를 공평하게 비추는 순간은 15년에 한 번뿐이다. ‘주야평분시’로 불리는 바로 이 순간, 토성을 휘감고 있는 두께 수십㎞, 길이 25만㎞의 고리는 별의 표면에 신비로운 그림자를 만든다. 짙푸르렀던 토성의 하늘은 복숭아색으로, 이윽고 오렌지 빛으로 바뀌었다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2009년 8월 16억㎞ 떨어진 지구에서 미국과 유럽의 공동 토성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호를 조정하던 우주과학자들은 탐사선을 통해 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우주 정보는 난수표 같은 물리학·수학 기호나 디지털 숫자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 감성으로 직송되기도 한다. 우주 과학은 예술이자 인문학이다.

카시니-하위헌스는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1625~1712)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1629~1695)의 이름을 땄다. 1997년 10월 발사돼 2004년 7월 토성궤도에 진입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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