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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 개입 말라” 성주군민 2300명 명찰 달고 평화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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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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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민 2300여 명이 21일 서울역 광장에 모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항의했다. 김항곤 군수(앞줄 가운데) 등 군민들은 외부 세력과 구분하기 위해 리본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은 명찰을 목에 걸었다. [사진 김성룡 기자]

21일 오후 1시40분쯤 서울역에 45인승 버스 50여 대가 도착했다. ‘일방적인 사드배치 온몸으로 저지한다’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버스에서 성주 군민들이 차례로 내려 광장으로 향했다. 군민들 사이에선 “이 땅에 사드는 필요 없다” “사드 배치 결사반대”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해병대전우회 등 질서요원 250명
파란 리본 안 단 사람 합류 막아
폭력 번질까 참외 쌓기 계획 철회
인근서 사드 찬성 단체 맞불집회
경찰 3600명 배치, 물리적 충돌 없어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 소속 2300여 성주 군민들의 가슴에는 한결같이 파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모두의 손에 태극기가 들려 있기도 했다. 한 성주 군민은 “당초 검은 리본을 달려 했는데 우울한 분위기가 퍼질까 봐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 리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군민들은 동네와 이름이 적힌 명찰을 목에 걸었다. 결의대회에 성주 군민만 참가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외부세력 개입’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5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군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경북경찰청이 “현장에 있던 경찰들의 진술을 통해 외부세력이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자 성주군민들이 반발했다.

서울역 광장에 모여 결의대회 대열을 갖춘 성주투쟁위는 성주해병대전우회 회원 등 250여 명의 자율 질서요원을 배치했다. 이들은 파란 리본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결의대회 대열로 합류하려 하면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며 막아섰다. 결의대회 시작과 함께 단상에 선 김안수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결정을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안전성 평가와 환경영향평가도 거치지 않은 졸속 추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군민들의 생존권과 지역의 미래를 위해 법적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성주 군민들은 투쟁위 대표단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사드 배치는 재앙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배너와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우리의 삶의 터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한 채 이곳에 모였다. 정부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성주 군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외부인사 중 유일하게 초청된 이부영(전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평화복지포럼 상임대표는 연설에서 “사드에 배치된 48대의 포탄으로 수없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겠나. 중국과 러시아의 핵 기지를 들여다보는 데 중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성주투쟁위는 당초 결의대회 현장에 성주 참외를 쌓아놓으려 했다. 하지만 집회가 과격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취소했다. 대신 결의대회 막바지에 김 군수와 배재만 의장의 삭발식을 진행했다. 삭발식을 마친 김 군수 등 투쟁위 대표단은 국회를 방문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성주 군민들의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날 월드피스자유연합 등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단체들이 성주투쟁위의 결의대회에 맞서 서울역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지만 양측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현장에 배치된 3600여 명의 경찰은 결의대회 대열을 둘러싸는 형태로 폴리스라인을 만들며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2300여 명의 성주 군민들이 ‘상경 집회’를 벌인 이날 곳곳에 ‘성주 사드 배치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린 성주군 읍내는 한산했다. 한 미용실 출입문에는 ‘사드 집회 참석으로 오늘 하루 쉽니다. 죄송합니다’고 쓰인 쪽지가 붙어 있었다. 성주 군민 김모(41)씨는 “이렇게 주민들이 생업을 버려두고 상경 시위를 떠났다. 분위기가 뒤숭숭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쟁위는 앞으로 성주군청 인근에 농기계를 세워두는 ‘농기계 퍼포먼스’와 주민 릴레이 삭발식 등으로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서준석 기자, 성주=김윤호·강승우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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