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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이 쓴 ‘소록도 할매 천사’ 헌정곡, 유튜브 울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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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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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마가렛(왼쪽)·마리안느(맨 오른쪽) 수녀. 가운데는 한센인. [헌정곡 영상 캡처]

“세상에서 버려진 외로운 섬 소록도/어느 겨울날 금발의 수녀가 왔네/살이 썩고 뼈가 녹아 손발 없는 환자/맨손으로 보살피며 평생을 함께 했네.”

전주 만수초 5학년 반딧불군 작곡
지난달 음원 완성되며 동영상 제작
한센병 환자 돌본 두 수녀 삶 기려
43년간 봉사 모습, 섬 풍경 담아

전북 전주 만수초에 다니는 반딧불(10·5학년)군이 만든 ‘소록도 할매 천사’라는 곡의 가사 일부다. 소록도에서 평생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마리안느 스퇴거(82)와 마가렛 피사레크(81) 수녀에게 선사한 노래다.

반군은 지난 18일 자신이 작곡한 이 노래와 곡 만드는 과정이 담긴 ‘초등생이 쓴 소록도 천사 헌정곡’을 유튜브(You Tube)에 올렸다. 8분29초짜리 동영상에는 두 수녀가 2005년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전까지 43년간 봉사하던 모습들과 한센인의 애환이 서린 소록도 풍경 등이 담겼다.

반군과 소록도 할매들의 인연은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수녀의 삶을 다룬 ‘소록도 큰 할매와 작은 할매’라는 동화책을 본 게 계기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엔 우체국 편지쓰기 대회에 나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주제로 한 편지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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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마리안느 수녀가 반딧불군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 반덕진 교수]

반군이 헌정곡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올해 2월. ‘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식에 마리안느 수녀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악보는 지난 5월 27일 윤곽이 나왔다. 반군이 곡을 만들고 아버지인 우석대 반덕진(교양학부) 교수가 노랫말을 썼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작곡부’를 수료한 반군의 재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반군을 뒷받침해준 아버지의 역할도 컸다. 헌정곡은 부자(父子)가 만든 합작품인 셈이다. 반 교수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저자로 국내 히포크라테스 연구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반 교수가 만든 가사 내용은 소록도 성당 김연준 주임 신부가 감수(監修)했다.

반군은 지난달 4일 소록도에서 마리안느 수녀를 만나 자신이 직접 만든 헌정곡 악보를 건넸다. 당시 마리안느 수녀는 악보를 본 뒤 “아주 아름답다”고 화답했다. 그는 당시 완성된 음원을 듣지는 못했지만 반군을 안아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헌정곡의 음원은 지난달 16일 바리톤 오요환 전 전북대 교수가 녹음 작업을 마치면서 비로소 완성이 됐다. 악보를 검토한 장상영 작곡가는 “전문 작곡가들도 쉽지 않은 헌정곡 작곡을 초등학생이 성숙한 감성으로 잘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반 교수는 아들의 뜻에 따라 이달 초 헌정곡이 담긴 증정용 CD를 제작해 오스트리아에 있는 두 수녀에게 보냈다. 또 이들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는 김연준 신부와 고흥군에도 각각 CD 300세트와 30세트를 기증했다. 반군은 “사람들이 헌정곡 동영상을 보고 수녀님들의 봉사 정신을 많이 배워서 우리 사회가 더욱 밝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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