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환영의 직격 인터뷰

“인문학으로 자존감 키워야 ‘위험 사회’ 막을 수 있어”

중앙일보

입력 2016.07.22 00:28

업데이트 2016.07.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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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차장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인문학 강국이었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설치된 국립 고등교육기관 태학(太學)에서 경학·문학을 가르쳤다. 서구의 볼로냐대(1088), 파리대(1150), 옥스퍼드대(1167)보다 훨씬 이전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최단 기간에 산업화·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탄탄한 인문학 토대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실용·응용 학문이 더 시급했기에 인문학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융합·통섭이 중시되는 포스트 산업화 시대에는 인문학이 다시 학문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갈래로 인문학 르네상스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중 한 갈래를 주도하는 인물이 있다. 사단법인 서울인문포럼의 배양숙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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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숙 이사장은 ‘수요포럼인문의숲’이라는 1년 과정 인문학 프로그램을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인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면 인문학 공부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믿음에서다. [사진 강정현 기자]

서울인문포럼(wednesdayforum.org) 배양숙 이사장이 실천해온 인문학 운동의 모델은 이렇다. 첫째,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보면 운동의 타깃을 우선 최고경영자(CEO)로 삼았다. 6년 전부터 기업가들이 참가하는 ‘수요포럼인문의숲’, 2세 경영인과 벤처기업인들을 위한 토론모임 ‘예프’ 등 주로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석학들을 연사로 초빙해 제1회 서울인문포럼을 개최했다. 올해에도 9월 28일 신라호텔에서 제2회 서울인문포럼을 개최한다(참가 신청은 9월 15일까지다).

사단법인 서울인문포럼 이사장 배양숙

“‘인문학의 다보스포럼’ 만들겠다
개인 돈으로 6년째 인문학 운동
9월 28일 27명 국내외 석학포럼
올해의 주제는 ‘인본주의와 과학’

둘째, 회사 같은 어떤 조직이 아니라 배양숙 이사장 개인 차원에서 인문학 운동을 시작했다. 필요한 자금은 사비로 충당했다. 그의 본업은 재정컨설턴트다. 지난해 서울인문포럼 행사에는 4억원이 들었고, 올해에는 5억원을 예산으로 잡고 있다. 모두 배 이사장 개인 돈에서 나왔다. 그의 인문학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는 모른다. 하향식(top-down)으로 시작했지만 상향식(bottom-up) 대중운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를 위해 후원이나 모금활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의 비전은 서울에 ‘인문학의 다보스포럼’을 만드는 것이다. 배양숙 이사장을 14일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대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거름이다. 화학 비료가 아니라 거름이다. 화학 비료는 몸에 해로울 수 있다. 굉장히 똑똑한 아이도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괴물’이 될 수 있다. 인문학 소양이 있으면 자존감이 있다. 많은 사회적 문제가 자존감이 없는 데서 발생한다. 인문학은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걸려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인문학 운동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인문학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호기심과 공유를 위한 실천에서 출발했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석 교수님이 2011년 12월 ‘H2O는 물인가’라는 강연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는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포럼을 찾아갔다. 과학은 재미는 없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현장에 가서 장하석 교수님 강의를 들어보니 굉장히 재미있었다. 과학은 또 알고 보니 따뜻한 학문이었다. 한국에 가서 강의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과학의 따뜻함과 재미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2012년 말에 오셔서 EBS에서 ‘과학, 철학을 만나다’라는 12강짜리 특강이 만들어졌다. 다른 계기는 2012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간 것이다. 현장에서 보니 다보스는 스위스 남쪽에 있는 조그만 동네였다. 세계 경제인들이 모이니까 세계경제포럼이라고 하지 않고 다보스포럼이라고 더 많이 알려졌다. 서울이 ‘인문학의 다보스’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몇 년이 흐르고 2015년 1월 13일 서울인문포럼이 탄생했다. 올해 2회가 된다. 저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같이 좋아지는 어떤 일을 꿈꾸니까 그게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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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숙 이사장은 연사를 만나서 직접 섭외한다. 왼쪽부터 마이클 샌델, 베르나르 베르베르, 노엄 촘스키. [사진 배양숙]

해외 강연자들을 섭외하러 다닐 때 느낀 점은.
“해외 석학들은 개인 조수가 없고 모든 일을 손수 다 하는 경우가 꽤 많다. 굉장히 소박하고 검소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눈빛은 굉장히 형형(炯炯)하셨다. 사람은 내면에서 나오는 어떤 인품이나 학문의 깊이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외모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시는 분들이다. 우리 사회는 사실 급성장을 해오면서 겉포장을 중시하는 외모지상주의에 빠졌다. 또 석학들은 돈 안 되는 인문학에 애써 번 돈을 제가 투자하는 걸 보며 ‘너무 훌륭하다’고 칭찬해주셨다.”
이번 서울인문포럼의 구성은.
“철학·역사·교육 세션으로 나뉜다. 올해에는 보다 깊이 있는 공감을 위해 패널 토의 시간을 길게 잡았다. 이번 어젠다는 ‘인본주의와 과학’이다. 인공지능(AI)이나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것들 때문에 산업 전반에서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과학 발전이 행복의 지수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위험 사회’ ‘도덕 붕괴’ 같은 말들을 낳은 여러 끔찍한 사건·사고·현상들에 대처하려면 인본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포럼이 이룩한 성과는.
“EBS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누적 조회 수 2억을 자랑하는 세바시(change15min.com)에 국내외 연사 27분의 강연 콘텐트를 올렸다. KAIST에서는 포럼의 콘텐트를 과학영재 교육프로그램에 제공해줄 수 있느냐는 총장님 명의의 공문이 왔다. 비영리 사회공헌을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승낙했다. 제가 시작한 인문학 운동은 처음에는 기업가 등 사회 리더들이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지난해 포럼을 계기로 경희대·숭실대·연세대·인하대 등 학교 특강도 많이 가게 됐다. 포럼이 표방하는 정신이나 가치의 저변이 학생들에게까지 확대돼 기쁘다.”
‘좋은 결정을 돕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는 결정이 좋은 결정이다. CEO들은 굉장히 어렵게 회사를 경영하고 키운다. 회사가 커진다는 것은 고용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CEO들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한순간 잘못된 옳지 않은 결정을 하면 회사 매출도 줄어들지만 망할 수도 있다. 망하면 고용이 줄어든다. 30년 동안 일궈온 1조원 기업이 나쁜 결정을 하고 난 다음 불과 3년 만에 마이너스 5000억원이 되고 직원이 600명이 나가는 그런 사례가 주변에 있다. 3인 가족 기준으로, 600명이 해고되면 1800명이 먹을 거리가 없어지게 된다. 제가 정부 관계자는 아니지만 민간에서 이런 모임을 같이해 주면서 함께 가면 좋지 않으냐는 게 제 생각이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인 ‘수요포럼인문의숲’과 ‘예프’를 거쳐간 분들이 수백 명이다. 그분들이 보내는 ‘고용이 또 3명 늘었어요’ ‘10명 또 뽑았어요’ 하는 문자 메시지가 제게는 가장 기쁜 소식이다.”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힘은.
“저는 어떤 게 좋으면 혼자가 아니라 주변 분들도 같이 좋아하기를 바란다. ‘좋은 기운’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다 함께 좋아하면 ‘좋은 기운’이 커지고 확산되는 느낌이 든다. 그거는 확실하다. 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뭔가를 평가하는 스타일이다. 부정적인 기운도 있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기운보다는 긍정적인 기운이 세상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났을 때 좋은 기운, 나쁜 기운이 느껴지는지.
“다 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간혹 강하게 다가오는 기운들이 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제가 느꼈던 기운이 맞았다는 게 확인된다.”
일종의 신기(神氣) 아닌가. 주위에서 신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지.
“신기라는 말은 못 들었고 직관이 좀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제가 실행력이 좀 있다. 특히 사람들이 말하는 ‘큰일’을 할 때 사물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간결하게 ‘이 일을 꼭 해야 하는가’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나하고 주변에 유익한가’를 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면 일단 실행을 한다. 심플하게 실행한다. 기획이라는 게 그렇다. 수십 가지 기획거리가 있어도 한 가지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저는 좋은 기획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서 다섯 개 중에 세 개 정도는 실행한다. 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면 그것은 그 일은 제가 꼭 실행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다.”
대학 강연에서는 무슨 말을 강조하는가.
“저는 이론 강의는 할 수 없고 주로 제 체험을 이야기한다. 누구도 태어나서 자랄 때, 특히 청소년기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환경에 처해졌을 때 그게 굉장히 암울할 수도 있다. 저는 그런 환경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순간순간 선택했던 것들이 지금 현재의 저를 만든 것이다. 결국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저는 어떤 일을 실행할 때 그 실행이 제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실행인가 아닌가를 따진다. 저는 자존심이 세다. 중·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이익이 되더라도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선택은 하지 않은 것 같다.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다.”
학생들의 반응은.
“경희대 학생 200여 명에게 강의하고 나올 때 부총장님이 제게 말씀하시길 학생 중 한 명도 안 나갔고 아무도 휴대전화를 안 봤다고 했다. 요즘 학생들은 외부에서 누가 오더라도 본인이 재미없거나 들을 게 없으면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제 강의를 아주 진지하게 듣는다. 질문도 많이 한다. 저는 ‘흙수저’ 출신이다. 중3 때 집이 파산을 했다. 묵묵하게 뚜벅뚜벅 세상을 걸어온 것에 대해 학생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배양숙은…

1965년 경남 진주시 진양군에서 8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미래지도자 인문학과정’과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을 수료했다. 현 사단법인 서울인문포럼 이사장이자 삼성생명보험 FC명예사업부장이다. 지은 책으로 『걷는 자 닿고 행하는 자 이룬다』가 있다.

글=김환영 논설위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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