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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성주, 그 보편성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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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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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성주라는 이름에 별 성(星) 자가 들어 있는 이유는 그곳에 가면 밤하늘에 별이 많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새삼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 동네는 아마도 내게는 가장 고향 비슷한 장소일 것이다. 죽도록 그리운 고향이 아니라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시골이 그곳이기 때문이고, 또한 도시는 절대로 고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갓집이 있던 뒷산에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가 설치된다는 초현실적인 소식, 낯익은 광장에서 벌어지는 집회의 낭자한 풍경은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고향 아닌 고향, 의무감으로 명절에나 들르는 동네 소식에도 이토록 걱정스러운데 그곳에 사는 분들의 마음을 내가 헤아리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고향을 지키고 지인들을 지지하는 소박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주라는 특수성과 나의 소중한 개인적 기억과 외갓집 뒷산에 대해 말하는 순간 타인의 마음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사연은 칠곡에도, 양산에도 그리고 어느 고장에나 있을 것이며 나의 기억이 소중한 만큼 그 이웃의 기억들도 소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당면한 여러 보편적 문제들이 한 곳에 응축된 장소이기도 하며,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의 문제를 넘어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은 성주라는 문제의 보편성에 대해 여기서 토론하고자 한다.

첫째로 성주의 사드 배치를 님비, 혹은 지역이기주의의 문제로 사고하는 것은 정부나 대책위, 그리고 언론이 공히 빠져 있는 함정으로 보인다. “성주에서 태어났어도 외부에 살면 외부 세력”이며 이들의 개입을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성주군민들을 고립시키고 이들의 입장을 지역이기주의로 격하시키며, 이들의 고통에 대한 이웃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를 차단하려는 생각과 다름없다. 연일 ‘외부 세력’의 개입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언론이 님비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있다면, ‘당사자’만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대책위의 입장은 스스로를 그 프레임에 고립시키는 악순환의 반복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드 배치 문제는 단순히 혐오시설을 내 이웃에 두기 싫다는 이기심과는 다르며,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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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폭력시위는 엄단해야겠지만 엄연히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막혀 있고, 동료 시민들은 성주 주민들에게 공감은커녕 조롱과 냉소를 날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건강한가. 성주의 문제는 안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의 문제이고,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며 열린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성주는 우리 정치 리더십의 부재와 정부 신뢰 추락의 문제, 그리고 거버넌스의 위기가 응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사드 문제 자체는 전자파 유해성의 문제에서 시작해 북한의 무기체계와 장기적인 동북아의 국제정세까지 촘촘하게 난마처럼 얽혀 있는 문제로 손바닥 뒤집듯 찬반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정부는 솔직하고 세심한 소통과 설득을 끈기 있게 계획하고 실행했어야 한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하면 미군이 우리의 시설과 구역을 사용하는 것은 양 정부 간 합의를 통해야 하는데 우리가 정확하게 준 것은 무엇이고 받은 것은 무엇인가. 사드와 관련된 장기적인 비전은 무엇이고 성주가 선정된 배경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이곳에 서 있는가. 입지를 이미 선정해 놓고 발표 전날까지 거짓으로 일관한, 성주와 상주조차 끝내 혼동하는 정부에 이런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지 모르지만 이에 대한 대답 없이 성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장기적인 비전과 투명한 결정 과정이 부재한 곳에서 소문과 괴담이 유포되고 근거 박약한 찬반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정부는 성실하게 국민들과의 토론에 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주의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도시와 지방의 보편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고, 영호남과 농어촌을 가리지 않고 젊음과 부와 희망과 유권자들이 수십 년 동안 바람처럼 빠져나간 장면에서 느닷없이 사드 배치를 통고받은 성주 주민들이 당면한 농담 같은 역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수도권조차 지키지 못하는 방어체계를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성주는, 아니 우리의 보편적인 고향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영문도 모른 채 고향 잃은 자들이 요구하는 살 한 파운드를 베어주고 허허롭게 돌아서야 할지 모른다. 그런 상처들을 우리 공동체가 한 번이라도 어루만지려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