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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ABCD동맹에 맞선 중국의 ‘식량 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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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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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
경제부문 기자

ABCD는 세계 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하는 4대 곡물 메이저 ADM, 붕게(Bunge), 카길(Cargill), 드레퓌스(Dreyfus)를 지칭한다. 전 세계 곡물 수출량의 80%가 ABCD의 손안에 있다.

이 동맹을 깨기 위해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국유자산관리위원회는 15일 중국 최대의 곡물 기업인 중량그룹(COFCO)과 중방그룹(Chinatex)의 합병 신청을 허가했다. 전 세계 140개 국에 진출한 중량그룹의 곡물 저장 용량은 3100만t에 이를 정도다. 중방그룹은 40여 개 국에서 방직물과 곡물을 거래하는 회사다.

두 회사의 합병은 겉으로는 중국에서 본격화하는 국유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미경을 들이대면 의미가 달라진다. 합병은 단순한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곡물시장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중국의 출사표다. 식량안보 강화에 나선 중국 정부의 의중이 반영됐다. 중국 공산당의 최우선 국정과제 중 하나가 식량의 안정적 확보다.

중국은 세계 최대 곡물 수입국 중 하나다. 경제 발전에 따른 생활 수준 향상과 토양 오염을 비롯한 생산 여건 악화가 맞물리며 곡물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BCD 동맹의 막강 파워는 중국의 발목을 죄는 족쇄일 수 있다. 중국은 두 곡물기업의 합병으로 이 족쇄를 끊으려고 한다. 13억 인구라는 구매력을 앞세워 ABCD 동맹에 균열을 내고 곡물시장에서도 대국굴기(大國?起)하겠다는 의지다.

곡물만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종자 전쟁에도 뛰어들었다. 지난 2월 중국화공(켐차이나)이 스위스 종자·농약업체인 신젠타를 인수해 미국과 세계 종자시장을 양분하게 됐다. 최근에는 독일 기업인 바이엘과 바스프가 미국의 종자회사 몬산토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씨앗전쟁은 더욱 과열되는 양상이다.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중국은 해외 진출(저우추취·走出去)에도 적극적이다. 호주와 미국 등에서 식량 관련 기업을 사들이는 등 식량 영토 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의 공격적 행보는 식량 안보와 관련해서 손을 놓은 듯한 한국에 대한 걱정을 키운다. 중국의 식량자급률은 80%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OECD 회원국 평균치(92%)와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중국처럼 판을 바꿀 수는 없다해도 우리는 너무 안일한 게 아닌지. 식량 위기에 대비한 힘을 기르고 있는가. 위기는 소리 소문 없이 닥치는 법이다.

하현옥 경제부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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