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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경력 버리니 일자리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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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30년 동안 일한 임지선(53·여)씨는 2014년 초 퇴직했다. 갑자기 찾아온 인생의 공백은 꽤 아팠다. 새 직장을 찾았지만 돌아오는 건 낙방 통지뿐이었다. 대기업 경력을 훌륭한 자산이라 믿었지만 중소기업에선 오히려 ‘대기업 출신’을 부담스러워했다. 실패는 1년 넘게 계속됐다. 그러다 취업 조바심을 버리고 인생 후반기 ‘일거리’로 눈을 돌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어린이집이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오래 일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베이비부머 연 20만 명 퇴직
저성장 속 일자리는 안 늘어
평생 할 수 있는 일 찾아야
“정부·기업, 직업교육 확대를”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금세 프로다운 면모를 되찾았다. 아이들의 생활을 찍어 어린이집 카페에 올리고, 교사와 조리사를 도왔다. 성실하고 깔끔한 일 처리 덕에 그는 얼마 안 가 어린이집에서 없어선 안 될 엄마이자 할머니가 됐다. 3개월의 인턴을 거친 그는 지난해 말 정규직이 됐다. 임씨는 “구직 기간 겪었던 우울증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자리는 성장의 산물이다. 50여 년간 이어진 초고속 성장에 그간 ‘일자리’는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저성장의 긴 터널 앞에 선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자리 총량은 정체되다 못해 줄고 있다. 기존 근로자도 구조조정 한파에 떤다. 이런 와중에 2021년까지 연평균 20만 명 이상의 베이비부머가 은퇴한다. 청년실업까지 겹쳐 장년층의 재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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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로자가 회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3세로 20~30년 정도 일한다. 그런데 실제 일을 완전히 놓고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연령은 71.1세(OECD)다. 퇴직 직전 일한 기간만큼을 더 일한다는 얘기다. 서울 50+센터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퇴직자의 1순위 고민은 ‘계속된 사회생활과 생산적 삶(62.5%)’이다. 경제적 준비 부족(29.8%)보다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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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장년층이 재취업하는 곳은 기껏해야 임시일용직(45.5%), 생계형 자영업(26.7%), 단순노무직(36.9%)과 같은 질 낮은 일자리다. ‘평생 일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남경아 서북 50+캠퍼스 관장은 “50대 이후엔 자원봉사나 취미가 직업이 되기도 한다”며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를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당장의 취업보다 인생 후반기의 큰 그림부터 그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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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을 찾아 부탁하는 구직보다 직업센터를 찾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김은석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 정부의 각종 제도를 활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을 ‘새로운 동력’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 정부·기업이 나서야 한다. 윤동열 울산대(경영학) 교수는 “직무 전환 제도를 활용하고, 은퇴 예정자를 위한 직업교육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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