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엔 없고 조선에만 있는 민화, 문자도·책가도

중앙일보

입력 2016.07.20 01:15

업데이트 2016.07.2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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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르 바라는 1888년 조선 민속품을 구하러 팔도를 주유하다 경상도 밀양에서 작은 문자도(文字圖) 병풍을 하나 샀다. 그날 밤, 객사의 허름한 방을 휘황하게 만든 병풍에 감탄해 그는 최초의 조선 민화(民畵) 평문을 썼다. “소품이지만 제반 요소들이 조선인의 국가 예술의 근본에 관한 소중한 정보여서 가치 있다. 나는 조선인 같은 야만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어리석은 생각을 한껏 비웃으며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기획전
18~20세기 58점…첫 공개작도 많아
“책·문자 왕국 조선 상징하는 그림”
9월부터 뉴욕 등 미국 순회 전시

그로부터 50여 년 뒤, 일본의 민예연구자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조선 민화는 현대 미학이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미의 세계를 지녔다”고 감탄했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조선의 문자도, 책거리(冊巨里)는 처음 궁중에서 시작됐지만 민간으로 퍼져나가 민화 문자도·책거리로 거듭나며 유교의 근본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弟忠信禮義廉恥)를 담게 되었다. 그림과 글씨, 구상과 추상이 민간의 이야기를 품고 하나가 되니 세계 미술사에 없는 국민미술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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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도, 6폭 병풍(부분), 종이에 채색, 각 133X53.5㎝, 18세기 후반,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재개관기념전 II로 기획한 ‘문자도·책거리’전은 이런 역사의 실체를 확인하는 자리로 관람객의 감탄을 끌어내고 있다. 책꽂이에 책과 안경, 문방사보와 화병 등 다양한 기물을 그린 그림을 책가도(冊架圖), 서가 없이 책과 각종 물건을 그린 그림을 책거리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현대화랑 등 국내 주요 박물관과 화랑 20여 곳의 소장품 중 18~20세기 문자도와 책거리 걸작 58점이 나왔는데 미공개작이 다수여서 전문가들 반응이 뜨겁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극적”이라고 첨단 전시기법을 칭찬했다. 안상수 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PaTI) 교장은 “PaTI에 문자도 민화반을 개설해야겠다”고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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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도, 8폭 병풍(부분), 종이에 채색, 각 99X45㎝, 19세기, 현대화랑 소장.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조선에서는 정조 대왕이 ‘책가도 정치’를 펼쳤는데 미술을 통치술에 활용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민화의 국제 경쟁력을 강조했다. 이 전시는 오는 9월부터 1년 동안 뉴욕 스토니부룩대학교 찰스왕센터, 클리블랜드미술관 등 미국에서 순회되며 내년 4월에는 캔자스대학에서 책거리에 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정병모 경주대 교수가 발표할 예정이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서예부장은 “문자도와 책거리는 책의 나라이자 문자공화국인 조선 지식인의 상징이었다”고 소개했다.

20일 오후 2시 유홍준 교수의 ‘민화의 아름다움’, 23일 오후 2시 이동국 서예부장의 ‘조선의 문자도 열풍-제3미술운동’ 특강이 이어진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02-580-130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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