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연속 세 편 개봉…올 여름 고레에다 감독에 빠져볼까

중앙일보

입력 2016.07.20 01:13

업데이트 2016.12.0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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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세상은 불완전하기에 풍요롭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에서 가족은 이를 드러내는 단골 소재다. [중앙포토]

스티븐 스필버그가 최근 신작 소식을 알려왔다. 3년 전 자신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66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안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할리우드에서 직접 리메이크 하겠다는 것. “우리네 인생사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새겨낸 감독의 뚝심에 감명 받았다.”

시적 영상미 담긴 데뷔작 ‘환상의 빛’
칸영화제 초청작 ‘태풍이 지나가고’
거장 반열에 올린 ‘걸어도 걸어도’
가족·인생 대한 성찰 한눈에 볼 기회

이 세계적 감독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은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54), 국내 예술영화 애호가 사이에선 이미 명실상부 스타 감독이다. 그의 신작이라면 한국 수입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일본 영화사가 수입사를 면접 봐서 고른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국내 12만 관객을 모으며 다양성 영화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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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데뷔작 ‘환상의 빛’.

올 여름 국내 극장가를 찾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무려 세 편. 올해 5월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된 열한 번째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와 데뷔작 ‘환상의 빛’(1995), 대표작 ‘걸어도 걸어도’(2008)가 잇달아 개봉한다. 특히 ‘환상의 빛’은 몇 차례 특별전을 빼고 국내 정식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로 데뷔 21년째인 거장의 성장과 변화, 삶과 죽음에 대한 여전한 성찰을 한눈에 만날 흔치 않은 기회다.

먼저 이달 7일 가장 먼저 찾아온 영화는 ‘환상의 빛’이다. TV 다큐 연출자로 일하던 고레에다 감독이 1995년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장편 극영화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갑작스러운 자살로 남편(아사노 타다노부)을 잃은 젊은 미망인(에스미 마키코)의 해소되지 않는 상실감을 담았다.

일본 순문학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서간체 소설을 토대로 했지만, 이 영화엔 또 다른 모티브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일본 보건복지부 고위 관리의 자살을 파헤친 다큐를 찍던 시절, 홀로 남겨진 미망인에게서 엿본 깊은 상실감 말이다. 비극이 할퀴고 간 뒤 남은 자의 삶.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이 주제는 아마도 이 무렵 발아한 게 아닐까.

‘환상의 빛’이 ‘역대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으로 회자되는 데는 시(詩)적인 영상미도 한몫했다. 대사 대신 구름 낀 잿빛 하늘과 바다, 서서히 변하는 계절을 롱테이크·롱쇼트로 담아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묘사했다. 인공조명을 배제하고 철저히 자연광만을 고집한 것도 특징이다. 상처에 새 살이 돋듯 망자의 빈자리에 또 다른 삶이 차오르는 순간을 그려내는 것도 햇살 가득한 봄 바다의 풍광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같이’ 아름답다는 건 ‘환상의 빛’을 주목받게 한 특징인 동시에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삶을 자연스레 담지 못했다”는 자성은 훗날 고레에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화에 포착하기 위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실화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써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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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작이자 11번째 장편 ‘태풍이 지나가고’의 한 장면.

이어 27일 개봉하는 ‘태풍이 지나가고’는 감독 자신이 “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 말하는 영화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작고한 뒤 자신에게 닥쳐온 생각들을 정리해 구상했다. 그가 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살았던 도쿄 연립 아파트의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고, 실제 촬영도 이곳에서 했다.

유명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아내에게 이혼당한 중년 사설탐정이자 철부지 아빠인 료타(아베 히로시)가 태풍이 몰아닥친 어느 날 전처와 어린 아들과 함께 홀어머니(키키 키린)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작은 소동극이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의 대표작에 비하면 삶의 고뇌가 그리 첨예하게 드러나진 않는 대신 세상에 대해 한결 너그러워진 감독의 연민 어린 시선이 유쾌한 작품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무수한 주변 인물들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상처를 감싸안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가슴에 따뜻한 기운을 차오르게 한다. 고레에다 감독의 사단이라고 할만한 배우 아베 히로시와 키키 키린의 티격태격하는 모자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이들이 모자로 호흡을 맞춘 또 다른 영화 ‘걸어도 걸어도’도 8월 4일 재개봉한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감독이 거장의 칭호를 확고히 챙긴 대표작이자 놓치면 아쉬운 수작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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