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읽기

건전한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6.07.20 00:43

업데이트 2016.07.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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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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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포켓몬 고(Go)’ 기사를 처음 읽고 무릎을 쳤다. 황금과 돌을 구별 못하는 까막눈이 보기에도 기막힌 아이디어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과 호주에서 대박이 났다. 포켓몬 찾기에 열중한 군중들이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아찔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워낙 많은 사람이 떼거지로 움직이니 놀란 차량들이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른 곳에는 운 나쁜 사람들도 있었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여럿 나왔다.

‘포켓몬 고’든 터키 쿠데타든
결국 콘텐트로 승패 갈린 것
건강한 사고의 좋은 콘텐트가
저질·거짓 콘텐트 범람 막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열풍이 불었다. 구글의 실수(?)로 게임이 가능해졌다는 속초행 고속버스 표가 동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포켓몬 사냥 관광 패키지도 생겨났다. 이 땅에 게임 서비스가 됐더라면 미국 저리 가라, 전국이 들썩였을 게 분명하다.

포켓몬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이 난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포켓몬은 게임기에 나타나는 가상의 세계에서 몬스터들을 사로잡아 길들이고 훈련시키는 게임이다. 다른 포켓몬 마스터들과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포켓몬 고는 그것을 단순히 스마트폰에 옮겨놓은 모바일 게임이 아니다. 그야말로 ‘사건’이요 ‘현상’이다. IT 기술과 현실을 하나로 접목시킨 역사적 첫 이정표다.

이미 많은 IT기술들(때론 훨씬 수준 높은)이 선을 보였지만 대부분 이용자는 그저 신기한 관찰자에 불과했다. 3D나 4D 영화도 그렇고, 가상현실(VR) 기술조차 여전히 반쪽 참여자로 머물고 있다. 하지만 포켓몬 고는 달랐다. 내 출근길 버스정류장 신호등 앞에, 우리 학교 앞 편의점 진열대에, 단골 미용실 의자 밑에서 포켓몬들이 출몰했다. 추억의 완벽한 소환이요, 상상의 세계를 현실 세계로 끌어내리는 기적이다. 전율이 안 될 수 있겠나.

사실 포켓몬 고에 쓰인 증강현실 기술은 별게 아니다. 이미 5년 전에 유사한 증강현실 게임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게 실패의 이유가 아니다. 소비자들과 나눌 추억이 없었던 까닭이다. 기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콘텐트가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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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진짜 현실 세계에선 더욱 그렇다. 며칠 전 터키에서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난 군사 쿠데타에서도 ‘뭣이 중헌지’ 여실히 드러냈다. 쿠데타 군이 요즘 대세인 SNS를 활용하지 못한 게 패착이라는 분석도 있다. 방송국을 장악하는 구시대적 전술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인 것은 맞지만 방송국 장악보다 쿠데타 자체가 더 그렇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이고 이슬람 원리주의적인 통치 방식으로 비난을 사왔다. 게다가 1950년대 이후 네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모두 성공했을 정도로 쿠데타에 익숙한 게 터키 국민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에르도안에 반대하는 자유진보세력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젊은이의 말이 터키의 민심을 웅변한다.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상의 쿠데타보다 낫다.” 이런 수준의 여론을 모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쿠데타 카드를 꺼내 들었으니 군 내부에서조차 지지를 받기 어려웠던 거다. 그런 낡은 콘텐트가 SNS를 탔다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터키야 저들 사정이니 그렇다 쳐도, 우리네 역시 다 떨어진 콘텐트를 고고 또 고아 먹는 이들이 있어 보기 딱하다. ‘친박’이라는 영문 모를 콘텐트를 내세워 재미 좀 본 사람들이다. 그걸로 국가경영을 해보겠다고 나서다 쪽박 차고, 총선 과정에서 친박 콘텐트로 호가호위 패악 부린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반성하는 모습이 아니다. 개·돼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 수준을 하찮게 봤다는 점에서 쿠데타에 실패한 터키 군인들 모습이 겹친다.

하긴 이들이야 자신들의 영웅,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물러나 친목계가 되면 그만이다. (베드로도 아니고, 자기 살겠다고 대통령을 부인하는 일은 없지 않겠나.) 그들보다 더 겁나는 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거짓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무리들이다. 천안함 폭침 때, 광우병 사태 때, 강정마을 시위 때 발호했던 이들 무리는 이제 ‘사드(THAAD)’라는 호재를 만났다. 이들은 안보 문제를 단박에 전자파·소음 문제로 바꿔버린다. 사드 배치가 한반도 안보 지형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는 발전적인 토론은 자리를 잃고, 괌까지 날아가 전자파 수치를 재는 호들갑을 떨게 만든다. 그 사이 국론은 더욱 갈라지고 사회적 갈등은 더욱 끓어오른다.

SNS는 이런 거짓 콘텐트들의 인큐베이터다. 거짓에 공포와 상상력이 덧칠해져 괴담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때가 되면 진실이 밝혀지고 정화가 되지만 그러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포켓몬 같은 콘텐트를 갖기 위해 써도 모자랄 에너지를 거짓 콘텐트를 몰아내는 데 허비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콘텐트다. 좋은 콘텐트는 그 자체로서만 좋은 게 아니다. 저질, 거짓 콘텐트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는 데서 더욱 건강하고 활력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콘텐트는 건전한 정신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그들이 실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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