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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전당대회 3주 앞인데…‘섀도 복싱’만 하는 새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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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금 당권 경쟁은 마치 섀도 복싱(shadow boxing)을 하는 것 같다.”

서청원·나경원 고민 길어지자
다른 후보들, 견제 주먹만 날려
일각선 “이런 전대 처음 본다”

17일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8·9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과정을 이렇게 평했다. 당 대표 후보군 중 ‘빅2’로 꼽히는 서청원·나경원 의원의 고민이 길어지면서,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이 아직 링 위에 오르지도 않은 그림자에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주말 내내 두 의원에 대한 견제와 경선 완주 의지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비박 진영에선 “친박 패권을 구성하는 가장 큰 구성원 중 한 분이 바로 서 의원”(김용태), “서 의원을 중심으로 후보를 단일화하려는 진박 놀음이 되풀이된다면 정권 재창출을 포기하는 것”(정병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친박계 의원들도 물밑에서 나 의원에 대한 견제를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서 의원과 가까운 한 중진 인사는 “나 의원이 ‘서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오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정치 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친박 의원은 “마치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한 이정희(통합진보당) 후보의 거침없는 독설을 연상시킨다”고 날을 세웠다.

비박계 주자들이나 친박계가 두 의원을 집중 견제하는 이유가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1~13일 새누리당 지지자 519명을 대상으로 한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나 의원(22.8%)과 서 의원(21.9%)은 1,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두 의원은 아직도 출마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다. 서 의원 측은 “지금 상황에서 출마하는 게 명분이 있는 건지, 또 나가면 이길 수는 있는 건지 등 여러 가지로 고심이 깊다”고 말했다. 나 의원도 “서 의원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대응했다.

얽히고설킨 전당대회 후보 문제를 교통정리해 줄 당의 구심점은 현재론 보이지 않는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오는 30일 전후로 외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과 유럽으로 출국한다. 김무성 전 대표는 ‘비박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이상으로 끼어들기 어려운 처지다.

15년 가까이 당에 몸담고 있다는 사무처 관계자는 “전당대회가 3주밖에 안 남았는데 당 대표 후보들이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인사(서청원·나경원)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며 “이런 전대는 처음 본다”고 지적했다.

계파 갈등으로 시간을 끌면서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다. 마침 17일 나온 총선 참패 백서(‘국민 백서’)에 담긴 어제의 모습과 오늘의 새누리당 전당대회 경쟁은 얼마나 다른가.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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