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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부활이 LG전자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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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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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국 전기전자 산업의 쌍두마차다. 둘은 숙명적으로 라이벌 관계다. 라이벌은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서로 자극제가 되면서 상생 발전하는 원동력이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런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한국 전기전자 산업의 양 날개로 성장해왔다.

모바일 시대 부적응자 닌텐도, 신기술로 기사회생
스마트폰서 고전하는 LG전자…혁신·대반전 기대

그런데 최근 한쪽 날개가 현저히 왜소해 보인다. 새가 한쪽 날개로 멀리 날아갈 수 없는 것처럼 산업도 마찬가지다. 개별 기업의 부진은 결국 한 국가의 산업경쟁력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LG전자의 부진은 스마트폰이 등장하던 2009년부터 시작됐다.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 심상치 않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때였다. 삼성전자는 감을 잡고 재빨리 추격전을 폈다. 하지만 LG전자의 반응은 느렸다. 그로부터 눈 깜짝할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세계 1위 시장점유율에 취해 있던 핀란드의 노키아는 아예 몰락했고, LG전자는 뒤늦게 만회에 나섰지만 선두권과 거리가 멀다.

최근 출시된 G5 모델에 힘을 쏟았지만 적자가 쌓이고 있다. 지난달까지 스마트폰 사업부는 5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다. 경쟁력이 없으면 방법은 두 가지다. 아무리 낙관해도 적자가 계속된다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반면 흑자 전환이 가능하면 일시적으로 출혈이 되더라도 계속 해야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할 사물인터넷(IoT) 사업과 맞물려 있어 절대 접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LG전자의 선택은 명확하다. 4차 산업혁명이 열어갈 미래시장을 겨냥해 획기적인 매력을 가진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 닌텐도는 그 어려운 혁신을 해냈다. 닌텐도는 2008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일본 전기전자 기업이 줄줄이 부실화하던 와중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다. 견인차는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닌텐도DS·위(Wii) 같은 콘솔 게임기였다. 이에 힘입어 닌텐도는 1조8386억 엔(약 20조원)의 매출과 5552억 엔(약 6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도 닌텐도 같은 걸 만들 수 없겠나”라고 할 만큼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열흘 이상 피는 꽃이 드물다고 했다. 닌텐도는 모바일 환경에 순응하지 못해 최근 5년간 영업적자를 거듭하면서 깊은 부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시장에서는 잊혀졌고 닌텐도 역시 모바일 시대의 부적응자로 낙인찍혔다. 그랬던 닌텐도가 이번에는 ‘포켓몬 고(Go)’를 앞세워 모바일의 강자로 돌아왔다. 포켓몬 고는 구글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나이앤틱(Niantic)의 증강현실(AR) 기술과 닌텐도의 인기 캐릭터 포켓몬을 융합한 모바일 게임이다. 스마트폰에서 이 게임 앱을 실행한 뒤 실제 장소를 비추면 화면에 포켓몬 캐릭터가 나와 현실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다.

업계 1위라도 산업환경 변화에 몰락한 노키아의 전철을 밟지 않고 닌텐도처럼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생명력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닌텐도는 1889년 화투를 만들던 작은 회사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콘솔 게임으로 인기를 끌고 포켓몬이란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 지적재산권(IP) 파워를 휘두르고 있다. 이번에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탄 원동력 역시 산업환경이 바뀔 때마다 변신한 적응력이란 얘기다.

닌텐도의 거듭된 진화는 힘을 잃은 LG전자엔 분발의 계기다. 어차피 포기하지 못할 거라면 스마트폰의 부진을 만회하는 길은 한발 더 앞서가는 획기적인 돌파밖에 없다. 그에 따른 노력과 역량은 LG전자의 몫이다. 삼성전자라고 해서 마음 편할 리 없다. 애플과의 선두경쟁이 치열하고 화웨이·샤오미·레노버 같은 중국 업체로부터 집단 추격을 당하고 있다.

LG든 삼성이든 중국과의 하드웨어 격차는 갈수록 좁혀질 수밖에 없고, 독자적으로 앱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에 비해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빈약하다. 최근 10년 한국 전기전자 산업을 이끌어준 스마트폰의 기반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다. 모바일 시대의 부적응자였던 닌텐도가 다시 돌아온 걸 보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 전기전자 산업의 한쪽 날개로서 LG전자의 대반전을 기대해본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