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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스토리 앞세운 종합격투기 ‘차익 2000배 대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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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5면

로렌조 퍼티타(왼쪽)·프랭크 퍼티타(오른쪽) 형제는 최근 UFC를 40억 달러에 매각했다.왼쪽 두번째는 종합격투기 선수 주니어 도스 산토스. [게티이미지=이매진스]

미국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기업 윌리엄 모리스 인데버(WME-IMG)사는 3개사의 투자를 받아 종합격투기 단체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를 인수한다고 지난 12일(한국시간) 발표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역대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인 40억 달러(약 4조5000억원)에 UFC가 팔렸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팬들에게도 UFC는 대중 스포츠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스포츠라는 건 틀림 없다. 현 소유주인 로렌조 퍼티타, 프랭크 퍼티타 형제가 지난 2001년 UFC를 인수한 금액이 불과 200만 달러(약 22억7000만원)였다. 퍼티타 형제는 15년만에 2000배의 차익을 올린 ‘대박’을 친 셈이다.


알리·이노키 대결서 유래, 최영의 창시설도1976년 6월 26일 일본 도쿄에서 최근 별세한 헤비급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1942~2016·미국)와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73·일본)가 15라운드 대결을 벌였다. 전세계적인 관심을 끈 결투였지만 경기는 팬들을 실망시킬 정도로 싱거웠다. 양측이 경기에 앞서 룰 합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알리는 복싱에 유리한 서서 싸우는 방식을 고수했고, 안토니오는 알리의 주먹을 피해 링위에 누워서 기다렸다. 졸전 끝에 둘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다. 이 경기는 이종(異種)격투기, 종합격투기의 유래로 꼽힌다.


40~50년대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술 고수들과 대결한 최영의(1923~94)가 종합격투기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더 멀리는 고대 그리스 올림픽 종목 판크라티온도 실전 격투에 가까웠다. ‘누가 가장 강할까’, ‘어떤 기술이 가장 효과적일까’를 묻고 답하는 행위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복싱의 인기가 사그라지던 90년대 미국과 일본에서 종합격투기가 탄생했다. 주짓수(일본 유도를 모태로 삼은 관절꺾기 기술)의 대가 호이스 그레이시(50·브라질)가 93년 미국 덴버에서 UFC 대회를 처음 열었다. 급소 공격까지 가능한 이 싸움은 체급 구분도 없었다. 그레이시가 거구들을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오르자 UFC 매니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UFC는 너무 잔인해 미국 정치인들이 나서 대회를 금지시켰다. UFC는 여러 주를 떠돌며 음성적으로 대회를 열었다.


카지노 재벌 퍼티타 형제가 자금난을 겪던 UFC를 인수했다. 이들은 데이나 화이트 대표를 앞세워 종합격투기의 ‘스포츠화’를 추진했다. 킥복싱과 레슬링을 결합한 형태로 규칙을 개정했고, 체급을 세분화했다. 화끈하지만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은 스포츠라는 점을 강조해 케이블 방송에 복귀했다. 유료채널(PPV) 구입에 익숙한 미국 시청자들을 파고든 것이다.


소유주가 바뀐 뒤에도 수년간 적자가 쌓였다. 이때 UFC가 선택한 전략은 격투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파이터가 성장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팬들과 함께했다. 모든 격투에 스토리가 쌓였다. 방송사들이 UFC 콘텐트를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이기 시작했다.


마침 일본 종합격투기 프라이드가 야쿠자 연루설로 흔들리고 있었다. UFC는 2007년 프라이드를 인수, 세계 종합격투기의 1위 단체로 올라섰다. 프라이드 파이터들이 UFC로 넘어갔고, 아시아 팬들도 함께 이동했다.


UFC는 세계 최고의 파이터들을 모았다. 레슬링이나 주짓수를 기반으로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킥복서 출신 미르코 크로캅(42·크로아티아), 프로레슬러 브록 레스너(39·미국) 등이 다양한 매치업을 만들었다. UFC는 2009년 UFC100 대회를 성대하게 개최, 160만 건의 PPV(건당 평균 60달러)를 팔았다. 전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피에르(35·캐나다)는 1200만 달러의 연소득을 기록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유도 동메달리스트 론다 로우지(29·미국)는 2015년 여성 스포츠 선수 수입 랭킹 8위(650만 달러)에 올랐다.

지난 7일 라스베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UFC 경기 모습.페드로 무뇨즈가 러셀 던을 공격하고 있다. [AP=뉴시스]

SNS로 확장하고 신사업과 연계지난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UFC200 대회가 열렸다. 대회 직후 WME-IMG가 UFC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UFC100 대회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UFC에 아직 잠재력이 남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UFC는 전 세계 158개국, 12억 가구에 중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IPTV 등을 통해 매일 10시간 정도 과거 경기가 방송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UFC는 이미 글로벌 인기 스포츠다. 페이스북 팬수가 1900만 명으로 미국 주요 스포츠 가운데 프로농구(NBA) 다음으로 많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는 19억 뷰에 달한다.


전설적인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74·영국)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했지만 UFC에서 SNS는 의무에 가깝다. 화이트 대표부터 SNS를 통해 활발하게 팬들과 소통한다. 선수들도 자신의 SNS 계정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파이터들끼리 SNS에서 벌인 설전이 옥타곤(UFC의 8각 철장)의 결투로 이어지기도 한다.


UFC 글로벌 브랜드를 총괄하는 개리 쿡 부회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몇년 전까지는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마케팅 활동이 디지털 기반으로 이뤄진다. SNS는 곧 팬들의 참여이며 우리와의 관계다. UFC는 사람들이 SNS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보고, 타인과 교류하는지를 얘기한다”고 말했다.


UFC의 가장 큰 특징은 팬들이 원하는 대결을 최대한 빨리 성사시킨다는 점이다. 지난해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39·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8·필리핀)의 세기의 복싱 대결은 수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두 선수 은퇴 시점에 이뤄졌다. 대결은 소극적인 경기 끝에 메이웨더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UFC는 종합격투기의 독점기구이기 때문에 지루한 협상이 필요없다. 수요가 생기면, 혹은 수요에 앞서 공급이 이뤄진다. 의외성이 많은 종합격투기에서는 앞선 대결에서 패했던 선수가 승리하는 경우도 많아 흥미진진한 라이벌 매치가 만들어진다. 이는 각종 수입으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UFC 인기 파이터가 부와 명예를 독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쿡 부회장은 “모든 배우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처럼, 모든 축구선수가 리오넬 메시처럼 돈을 벌 수 없다. 600여명의 UFC 선수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줬다면 팬들은 흥미진진한 경기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수입 격차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불가피한 구조”라고 반박했다.


쿡 부회장의 말대로 UFC는 스포츠로서의 툴을 갖추자마자 엔터테인먼트로 진화했다. ‘싸움 구경’에 거부감을 느꼈던 대중의 나이·성별을 가리지 않고 공략했다. 승리와 성취를 동경하는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며 TV와 SNS를 통해 전 세계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이제는 다른 엘리트 종목 출신이 아닌 어려서부터 종합격투기를 익힌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파이터로 올라서고 있다. UFC는 게임·피트니스·가상현실(VR) 사업으로도 이미 확장을 시작했다. 고객 중심의 사고와 역동적인 확장이 15년 만에 2000배의 수익을 만든 것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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