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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주문한 핵폭탄급 변화·혁신] 시도만으론 부족 속도·강도 확 높여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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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마이크를 달고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CEO들 앞에선 최 회장은 SK그룹에 닥친 위기서부터 변화의 대상과 방법 등을 열정적으로 풀어나갔다.

‘자산 규모 160조8480억원, 지난해 당기순이익 13조608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 달성’. 재계 서열 3위 SK그룹이 지난해 거둔 성적표다. 경영 실적만 보면 연초부터 축포를 터뜨렸어야 할 SK그룹이 최근에는 그야말로 격변기를 겪고 있다. 진앙지는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돈 버는 방법과 일하는 방법 변화, 자산의 효율화 등 3대 선결 과제 제시

최태원 회장은 올해 상반기를 마감하는 지난 6월 30일 편안한 복장으로 SK 주력 계열사 CEO들 앞에 섰다. ‘2016년 SK그룹 확대경영회의’라는 명칭을 빌어서 진행된 이날 회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드러웠으나 최 회장이 던진 화두는 핵폭탄 급에 가까웠다.

최태원 회장이 던진 화두는 근본적인 혁신이다. 강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돈 버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회장은 근본적인 혁신을 넘어 혁신의 속도와 혁신의 강도까지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모든 기업이 혁신을 하고 있지만 속도가 느리거나 강도가 약하면 글로벌 시장의 강자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강의 도중 “지금은 Slow가 아니라 Sudden Death의 시대”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태원 회장의 근본적인 고민은 그동안 SK그룹을 이끌어왔던 주력 사업마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SK에서 ‘3두 마차’로 불리며 그룹을 이끄는 계열사는 SK이노베이션(에너지·화학), SK텔레콤(ICT), SK하이닉스(반도체)다. 문제는 이들의 전년 동기 대비 올해 1분기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 주력 사업인 에너지·화학, ICT, 반도체 미래 안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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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고,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는 뒷걸음질쳤다. 매출 수치로만 20% 이상 감소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SK그룹 주력 계열사의 정체 상황이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듯 최 회장은 “우리 임직원이 SK를 선택한 이유는 SK에서 일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며, SK가 존재함으로써 사회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고 말문을 연 뒤 현실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최 회장은 “현실의 SK그룹은 자기자본이익율(ROE)이 낮고 대부분 관계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SK 임직원은 스스로도 행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SK 역시 사회에 행복을 제대로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최 회장은 CEO들에게 3가지를 주문했다. 최 회장은 우선 “환경이 변하면 돈 버는 방법도 바꿔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지 등 사업의 근본을 고민해 봤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의 성공이나 지금까지의 관행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해서 십수년 동안 그 사업만 계속 해왔는데 갑자기 상품·시장·자산을 바꾸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될 것”이라면서 “고민하다 결국 집중하는 것은 변화나 혁신이 아닌 종전의 오퍼레이션 최적화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좀 더 잘 할지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최 회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출퇴근 문화에서부터 근무시간, 휴가, 평가·보상, 채용, 제도·규칙 등이 과연 지금의 변화에 맞는 방식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고정관념 탈피를 무지개 색깔에 빗대어 설명했다. “무지개가 몇 개의 색깔인지는 나라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무지개는 딱딱 나눠진 여러 색의 띠가 아니라 스펙트럼입니다. 아주 많게는 200개가 넘는 색깔로 구분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최 회장은 마지막으로 “중장기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재원과 체력이 뒷받침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산효율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산을 효율성(Efficiency)과 유연성(Flexibility) 있게 관리하면 변화의 속도에 맞게 준비할 수 있어 어떤 사업에 어떤 자산을 최적으로 투입할 지 선택과 집중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SK그룹 계열사들은 수시로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스몰딜을 통해 사업구조를 바꿔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지난해 11월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한 것을 비롯해 지난 2월 SK바이오텍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 지난 4월 SK에어가스 인수, 지난 5월 AI(인공지능)·클라우드 사업부 신설 등을 통해 제약·바이오, 반도체 소재·모듈, IT 서비스, ICT 융합 등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오고 있다.

SK텔레콤은 ‘통신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가치’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해법으로 ‘플랫폼’을 천명하고 나섰다. SK텔레콤은 생활가치, 미디어, 사물인터넷(IoT)으로 대표되는 ‘3대 차세대 플랫폼’ 전략을 통해 고객과 산업, 사회의 잠재적인 기대까지 선제적으로 충족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시장’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보다 강한 반도체 회사가 되기 위해 주력 제품인 D램(DRAM)과 낸드플래시(Nand Flash)의 기술 및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선두업체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면 선도적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 회장은 SK그룹 계열사들의 이런 변화 움직임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도 변화의 속도와 강도는 미흡하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기한 있는 숙제를 냈다. 각 사 CEO들에게 관습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으로 각 사 비즈니스 환경에 맞는 최적의 사업·조직·문화의 구체적인 변화와 실천계획을 하반기 CEO세미나 때까지 정하고 실행할 것을 주문했다.


| “더 큰 행복 만들어 사회와 나눠야”



최 회장은 스스로 먼저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근본적 변화에는 형식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몸으로 말하듯 이날 CEO들에게 ‘TED 방식’으로 강연하면서 변화 필요성을 주문했다. 형식을 갖춘 회의에서 변화를 주문하는 것 자체가 낡은 방식이라는 뜻이다.

무선 마이크를 달고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CEO들 앞에선 최 회장은 SK그룹에 닥친 위기서부터 변화의 대상과 방법 등을 열정적으로 풀어나갔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개인사 고백 이후 일각에서 제기된 근거 없는 억측이나 음해 등으로 한때 움츠러들기도 했으나 이런 일로 발목을 잡히면 안 된다고 판단한 듯 최근에는 더 열정적으로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최 회장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변화의 대상과 방법보다는 궁극적인 변화의 목적이라고 SK 측은 설명했다. 최 회장은 “SK가 환골탈태하려는 궁극적 목적은 더 큰 행복을 만들어 사회와 나누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만우 SK그룹 PR팀장(부사장)은 “최태원 회장이 던진 화두는 그간 강조돼온 변화의 속도·깊이 등 2차원적 개념을 넘어 변화의 대상·방법, 그리고 변화의 목적까지 아우른다”면서 “앞으로 SK 관계사들은 최 회장이 제시한 방향성에 맞춰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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