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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 ‘돌싱’ 여성 변호사의 이혼 컨설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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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와 결별 후 시작된 외로움과 욕망의 줄다리기… 안전하게, 그러나 후회 없이 ‘제 2의 라이프(life)’를 맞을 방법은?


최근 한국사회에 이혼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작 ‘돌싱 라이프’를 위해 참고할 만한 정보가 전무하다. 그 때문에 현실에서 겪는 ‘이혼 그 후’의 생활은 누구에게나 혼란의 연속이다. 필자는 15년 차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직접 이혼을 체험한 ‘돌싱’이다. 이혼 이후 좌충우돌하는 돌싱들을 위해 그가 자신의 직장, 가정 등에서 벌어지는 체험담을 전문가 시각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서른 중반에 어린 딸을 데리고 이혼했다."

망설임 없이 이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는 아마도 스스로가 이혼 전문가라는 자만심도 조금은 있었을 테다. 그러나 막상 이혼해보니 예상 못했던 상황이 이어졌다. 지칠 만큼 많은 건수의 이혼소송을 진행했던 나조차도 이혼의 ‘실상’은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거다.

욕망도 한때! 즐기세요~

이혼 후 생활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서점에 들러봤지만 참고할 만한 실용서는 없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혼’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법률정보가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좌충우돌 돌싱 생활을 시작한지 어언 10년. 금슬 좋은 노부부를 보고 결혼의 모범답안을 찾듯이 이제 필자의 경험담에서 이혼 후 삶의 노하우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실명을 밝히지 않은 건 딸아이가 엄마로 인해 ‘커밍아웃’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더 바란다면 이 ‘이혼체험기’를 통해 이혼남녀를 향한 사회적 편견이 조금이라도 깨지길 희망한다.

이혼 후 가장 피부로 와 닿는 사적인 문제는 아마도 외로움일 것이다. 이혼으로 인한 불안정함이 사라졌을 무렵 한 남성 지인로부터 이런 돌발 질문을 받았다. “집사람 보니까 애 낳고 난 뒤 엄청 적극적이던데 이혼한 넌 어떻게 견뎌?”

평소 태도로 봐서 부적절한 의도를 가진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당황한 나머지 “네가 궁금해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하고 궁색하게 쏘아 붙이고 말았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오지랖’ 문화가 존재해서일까? 그 후로도 여성보다는 주로 남성으로부터 그와 비슷한 질문을 받곤 했다. 시행착오 끝에 이런 현답을 생각해냈다. “성희롱으로 고소할 겁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농담이에요” 하고 웃는 거다.

여담이지만 여성지인의 경우도 “변호사에다 아직 나이도 젊으니 좋다는 남자가 많을 거 아니냐”고 떠보듯이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혼녀의 밤 생활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보면 주인공의 엄마가 한밤중에 마당으로 뛰쳐나가 찬물을 온 몸에 뒤집어쓰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이 대학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저 엄마 왜 저래?”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 그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던 건 이혼을 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속에서 불이 나는 듯 답답하고 어깨에 근육이 뭉쳐 두통까지 생기던 그때 ‘주체할 수 없는 성적욕망을 겨울 밤 찬물을 뒤집어 쓰는 걸로 이겨내려 했던 홀로된 여인’의 심정이 문득 이해됐다.

젊은 나이에 이혼한 후 여전히 홀로 지내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지인을 종종 만나게 된다. “100세 시대에 왜 그러고 사느냐. 즐기면서 살아라”고 진심을 다해 충고하는 이도 있고 “아직 젊으니까 너한테 집적거리는 남성도 있겠지만 나이 더 들어봐라. 아무도 널 여자로 봐주지 않는 때가 온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라며 무시무시한 충고성 예언을 해주는 이도 있다.


| 그녀의 밤은 화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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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섹스앤더시티>의 한 장면. 성공한 ‘돌싱’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를 다뤘다. 최근 한국에서도 화려한 ‘제2의 라이프’를 추구하는 돌싱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런 말을 해주는 이들은 대부분 기혼이다.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혼녀의 밤이 절대로 화려할 수 없다는 속사정을 그들이 알 리 없다. 무엇보다도 걱정의 초점이 이혼 후 자녀양육·재정문제보다 오로지 ‘성 생활’에 맞춰져 있는 경향이 높다.

아마도 이혼녀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걱정일 것이다.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특히 이혼녀에 대한 기혼남녀의 은밀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일례로 한 기혼남성은 이른바 ‘야동(야한 동영상)’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과감한 이혼녀’ 소재에 매료된 나머지 현실을 분간 못하고 “너의 풀지 못하고 있는 욕망을 해결해주겠다”는 식으로 황당한 성희롱을 해오는 이들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기혼여성은 자신의 남편과 같이 일하는 여성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혼녀니까 당연히 유부남을 유혹할 것’이라며 질색하는 경우도 적잖다. 자신의 남편이 잘났는지 못났는지 따져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이런 편견이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적욕망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음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서는 이혼녀 대부분이 경제적인 문제에 치여 자신의 욕망을 발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여성이 이혼 후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이 아직까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양육까지 책임지는 경우 전문직 여성이든 탄탄한 사업을 하고 있는 여성이든 간에 생활비부터 자녀의 학교생활까지 혼자 책임져야 하다 보니 하루가 정신 없이 지나간다. 전 배우자가 양육비 부담과 면접·교섭을 성실히 이행할 경우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비율이 더 높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5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부모 가정 중 양육비를 받기로 한 여성은 약 2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중 약 27%의 여성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약 16% 정도의 여성만이 양육비를 제때 지급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들의 밤이 화려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렇듯 돈에 치이는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외로움이 살아서 꿈틀댄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외로움을 두고 흔히 성적 욕망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성욕이 육체적 충족 욕구라면 외로움은 정서적 충족 욕구다. 결국 성욕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혼녀도 외로움은 느낀다는 것이다.


| 금요일 저녁의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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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욕은 월경주기에 따라 변한다. 배란기와 생리 전후가 대체로 성욕이 강해지는 때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으려면 주기에 맞춰 스스로를 통제하는 게 좋다.

 이 끈질긴 외로움은 이혼녀가 평생을 두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이혼녀의 외로움은 실패한 결혼에 미련이 남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인생에 대한 회한 때문에 증폭된 감정이라 보면 된다.

이를테면 남편과 아내라는 인생이 겹치는 관계가 주던 사회적 안정감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불안함이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드는 것이다. 이미 몇 차례 이혼을 반복했던 한 여성유명인의 결혼 소식에 “연애만 하지 결혼을 왜 또 하지?”라고 못마땅해하는 시선이 있다. 그녀는 아마도 안정감에 대한 갈증 때문에 또다시 결혼반지를 꼈으리라.

실제로 애인과 배우자가 주는 안정의 무게감은 다르다. 특히 여성의 경우 그 간극은 남성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아무리 마음 통하는 애인이라 하더라도 남편이 아닌 이상 안정감을 느끼기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현실에서 이혼녀를 괴롭히는 건 해결 못하는 성욕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수시로 들이닥쳐 그녀들을 괴롭힌다. 특히 금요일 밤 늦은 퇴근을 하면서 텅 빈 도심의 적막감과 마주할 때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 선물로 받은 와인 한 병을 나 홀로 비우기에는 벅차 ‘병을 딸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막상 연락할 친구는 없다.

금요일 저녁은 이혼녀가 이방인이 되는 시간이다. 그 고립감은 자연히 외로움으로 귀결된다. 이때마다 언제든 전화해도 되고 잡담마저 센스 있게 하는 남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혹시라도 이성적인 감정이 생길까 걱정 안 해도 되는 게이 친구라면 더 좋다.

하지만 그런 남성이 싱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유부남은 만나봐야 “여보 언제 들어와?”라는 아내의 전화가 이혼녀의 처지를 더 외롭게 할 뿐이다. 나홀로 저녁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나의 경우 아이와 함께 ‘한잔’하는 시간을 갖는 방법으로 외로움에서 탈출했다.

아이는 과일주스를, 나는 와인을 눈 맞춰가며 마시면 그 재미도 쏠쏠하다. 취기가 오르면 애한테 평소 못 건넨 애정의 말도 듬뿍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혼녀의 외로움은 마치 하루살이 같아서 그 순간만 현명한 방법으로 견디면 다시 내일의 새로운 태양을 기분 좋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미혼일 때보다 더 과감한 연애를 하는 이혼녀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주로 재정 형편이 좋은 이혼녀가 자유연애를 거침없이 즐기는 편이다. 우선 연애에 대한 적극성에서 남다른 면모를 보인다. 재혼을 원하지도 않으면서도 쉴 새 없이 주변에 남성 소개를 부탁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자신의 연애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반면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는 이혼녀는 연애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혼녀의 연애에도 빈부 차에 따라 개방성의 온도 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선 인생의 대반전을 가져다 줄 남성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은연 중에 갖다 보니 연애가 잘 될 턱이 없다. ‘자유 연애’란 말 그대로 남성에게 아쉬운 말을 할 필요가 없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 자신의 ‘호르몬 주기’를 체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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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녀의 밤은 신중해야 한다. 충동적인 하룻밤 때문에 ‘그렇고 그런 여자’로 낙인 찍혀 오랫동안 회자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성 역시 자칫 부담스러운 상대가 될 수 있는 해바라기 성향의 이혼녀보다 부담 없는 이혼녀에게 더 끌린다는 게 경험자들의 전언이다.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 모임에서 들은 일화다. 다들 전날에 술을 많이 마셨는지 퉁퉁 부은 얼굴이었기에 “어제도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라며 의미 없이 한마디를 건넸다. 이 말에 한 남성 사업가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어젯밤 화끈한 여성과 재미있게 놀았다는 얘기는 덤이었다.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이혼녀 3명을 ‘번개’로 만났다고 한다.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됐다는 이들은 술이 어우러진 저녁에 이어 노래방에서도 화끈하게 놀았다. 어떻게 화끈하게 놀았다는 건지는 상상에 맡긴다.

즐거운 경험담에 대한 소감도 압권이었다. “이혼녀가 더 부담 없이 즐기고 싶어하지 않나? 거기다 용돈까지 받아갔으니 한 달이면 그 수입이 얼마냐. 짭짤하지.” 이 남성사업가는 그녀들에게 택시비 명목으로 30~40만원 정도의 ‘감사비’를 쥐어줬다고 했다.

그 남성은 내가 이혼녀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변호사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라 나 역시 좋은 집안에서 자라 부유한 시댁에 남편도 잘나갈 거라 지레 짐작하고 있는 걸 그대로 뒀다. 아마 내가 이혼녀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적나라한 속내를 밝히지는 못했을 거다.

처음 보는 남성과의 만남에서 특별한(?) ‘감사비’를 받는 이혼녀 일화를 듣고 문득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먹고 살 다른 방도가 있는데 굳이 여성성을 앞세워야 하느냐’고 내가 묻자 그 선배는 “정 변호사는 여성성을 앞세우지 않아도 돈을 잘 벌 수 있지만 여성성을 앞세우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여성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여성은 월경주기에 따라 성욕도 변한다. 여성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배란기와 감정적 동요가 쉽게 일어나는 생리 전후가 대체로 성욕이 강해지는 때다. 유혹의 시기인 만큼 이때 여성의 얼굴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영국 스털링 대학의 심리학자 이언 펜튼보크 연구팀에 의하면 남성·여성 평가자 모두 배란기 상태인 여성의 얼굴을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호르몬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례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한 번도 성적으로 끌린 적이 없던 남성 지인이었는데 어느 날 그에게서 매력을 느껴 나도 모르게 여성스러운 애교를 부리고 말았다. 생소한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 이유를 찾아보니 마침 배란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일 남짓한 그 기간 동안 벌어지는 아주 미량의 호르몬 수치 변화가 내 인생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는 월경주기 다이어리를 챙기게 됐다. 이때 간단한 철칙도 세웠다. 배란기 전후에는 어떤 남성과도 술자리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다. 또한 농도 짙은 성애장면이 나오는 로맨스 영화는 아무리 예술성이 높다 하더라도 관람하지 않는다.

호르몬 주기에 따라 욕망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는 탓에 가족과 트러블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말이 잘 통하는 여성지인과 약속을 잡는 게 좋다. 체질과 맞는다면 여성전용 한증막에서 만나는 걸 추천한다. 매운 닭발과 매콤한 비빔국수처럼 여성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한 식당 메뉴부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해주는 “에구 목이 많이 뭉쳤네. 애 닳게 살아봐야 나만 손해야” 위로 섞인 말이 곁들여진 마사지까지 풀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여성전용이라 가운 하나 걸치고는 어떤 자세로 있어도 신경이 안 쓰여서 편하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부터 야한 얘기까지 거침없는 수다를 떨다 보면 심신이 가벼워진다.


| 세상은 좁고 괜찮은 남성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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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이혼녀를 괴롭히는 건 해결 못하는 성욕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공허한 금요일 밤, 이성과 성급히 만나는 것보다는 마음이 맞는 동성 친구나 자녀와 보내는 방법을 추천한다.

혹자가 “왜 이렇게까지 절제하고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일이 잘못되면 여성으로서 잃을 게 많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그동안 ‘돌싱 라이프’에서 믿을 만한 싱글남성을 찾기 어려웠다(내가 운이 없었던 건지 몰라도). 연애는 고사하고 가벼운 데이트를 즐길 만한 ‘안전한’ 남성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뒷담화나 하면서 돈을 물 쓰듯 쓰는 모임에 몇 번 나간 적이 있다. 평소 ‘카사노바’로 불리던 한 남성 회원이 술에 취해 이혼녀인 어떤 여성과의 연애담을 노골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그 남성은 내가 그녀를 만날 가능성이 제로라고 생각한 탓에 그녀가 사는 동네서부터 출신학교, 전 남편의 직업까지 발설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에서 문제의 그녀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사생활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생각을 추호도 못했을 테다. 제법 괜찮은 여성으로 보였는데 어쩌다 그런 남성과 얽히게 됐던 건지 딱해 보였다.

최근 유부남과 밀회를 즐기며 남성 측 모임에까지 동행하는 이혼녀도 있다. 본인 주장으로는 어디 내놔도 자신 있는 사이일지 모르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다. 세상은 좁다. 특히 중상층 이상의 부류가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나는 진심이었다’고 해도, ‘내가 왜 그랬을까’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하룻밤 욕망의 분출이었다고 하더라도 소문은 빠르고 냉정하다. 신중하지 못한 하룻밤 때문에 꽤 오랫동안 ‘그녀는 그런 여자’로 낙인 찍혀 회자될지도 모른다.

이혼녀의 절제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엄마의 마음이 낯선 남성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녀가 본능적으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호감을 갖게 된 남성과 첫 데이트를 하고 온 날, 어린 자녀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며 자신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걸 느꼈다는 이혼녀의 경험담을 제법 들었다.

비슷한 예로 둘째 임신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첫째 아이가 전에 없이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이치의 본능적인 반응인 것이다. 아직 자신의 자녀가 어리다면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엄마로서 욕망을 다스릴 필요는 있다.

최근 명예퇴직을 앞둔 선배를 위로하기 위해 강남의 한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을 한 적이 있다. 평일 점심에 중년 부인들이 브런치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그 선배는 가장으로서 평생 부양의 부담을 짊어졌던 애로를 토로했다. 이어 “대한민국 여성은 참 편하게 산다”며 마땅치 않아했다.

그녀들이라 해서 매일 브런치만 먹을 리도 없고 어쩌다 한번 모인 걸 수도 있는데 은근히 여성을 무시하는 태도가 거슬려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선배는 부양책임만 지셨지요? 대한민국에는 부양책임에 양육책임까지 지는 여성도 많아요.”

어쩌다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한 번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외벌이 신세를 한탄을 하는 남성 가장의 한탄이 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외벌이라도 여성이 가장인 경우 아무래도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게 인정하기 슬픈 사실이다.

아무리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했고 ‘가모장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지만 여성이 홀로 지내다 보면 주변에 의해 이런저런 서러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성이 가장인 가정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간주하고 있다. 가정을 부양하는 이혼녀는 자연히 사회의 비주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중년의 애 딸린 이혼녀라도 여전히 마음속에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갖고 경우가 꽤 있다.

일흔 살에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여배우가 최근 한 TV 토크쇼에서 덤덤하게 이혼 후 생활을 회고했다. 그녀는 결혼을 위해 중단했던 배우생활을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하게 됐다고 고백할 만큼 평소 솔직한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젊었을 때는 돈 잘 버는 남편을 두고 사모님 소리 듣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는 그녀의 고백이 귀에 꽂혔다. 그러면서 그녀는 “난 왜 저런 팔자가 못됐나”하고 속상할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나만 그런 류의 유치한 생각을 했던 게 아닌 셈이 돼 어쩐지 위로가 됐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그 사모님 친구들이 이제는 그녀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번 돈으로 누구 눈치 안 보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고 자녀에게도 가장으로서 당당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일하는 이혼녀이기에 그녀의 말이 어떤 뜻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젊어서 그런지 아직은 내면의 깊은 어딘가에 ‘백마 탄 왕자를 기대하고 있는 여성’이 숨겨져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현실감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백마 탄 그를 만나기 위해서 혹은 환상적인 그 ‘밤’을 위해서 미모를 가꾸는 일도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왕자를 만난 백설공주보다는 ‘일복’이 터진 일곱 난쟁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편이다. 이를테면 난쟁이마냥 광물을 캐러 광산에 출근하고 어떻게 하면 이윤을 남길 수 있는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이혼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깊이를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선의 품이 넓어지면 백마 탄 왕자가 와도 끌려 다니지 않고 왕자의 정신 상태가 어쩐지도 가늠해볼 수 있을 경지에 오른다.


| 돌싱 가장의 ‘신데렐라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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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복잡해>의 한 장면. 이혼녀의 사랑을 다뤘다. 애 딸린 이혼녀라도 여전히 마음속에 백 마 탄 왕자를 꿈꾸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갖고 경우가 많다.

‘돌싱 라이프’는 리스크를 신중히 극복하면서 생의 즐거움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신중하다 보면 물론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로맨스 영화에서 키스 장면이 나오면 소녀처럼 좋아하던 내가 이제는 “세상에 저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심드렁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영화에서 수위 높은 성애 장면이 나올 경우 침이 꼴깍 삼켜지기보다는 “그래, 좋을 때다” 하며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 건조한 자세를 유지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어쩐지 늙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 서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수년간 날 괴롭혔던 그 번뇌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느낀다.

그러하니 분명한 건 감수성이 결여되면 인생에서 재미도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뭐든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건 없다. 내 안에 이렇게 뜨거운 활화산이 들어 있었나 두려운 마음까지 갖게 만들던 그 욕망도 시간이 흐르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복숭아마냥 말갛고 팽팽한 피부 탄력을 가진 시절도 그때뿐이다. 꽃이 지기 전에 잔디 속에 꼭꼭 숨어서는 “내가 꽃이요” 하고 홀로 만족하고 말기에는 그 꽃이 참 아름답다. 괜한 조심성에 여성이 아닌 무성(無性)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요즘, 이혼소송이 마무리된 의뢰인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욕망도 한때예요. 즐기세요!”

글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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