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축사쪽방 살던 청주 만득이…19년 만에 어머니와 상봉

중앙일보

입력 2016.07.15 15:38

업데이트 2016.07.1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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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축사에서 무임금 노동착취를 당했던 고모(47)씨가 청주시 오송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김모(77)씨와 함께 있다.

15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한 마을. 허름한 단독주택 방 안에서 70대 노모가 누워있는 40대 아들의 얼굴과 어깨를 연신 쓰다듬었다. 눈을 감고 있던 아들은 스스르 잠이 들었다. 행방불명된 뒤 19년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머니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철판처럼 단단하게 굳은 아들의 어깨만 ‘탁탁’ 두드렸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아들을 바라보다 말 없이 눈물을 훔쳤다.

수십 년 전 실종된 뒤 남의 농장에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노동 착취를 당한 지적 장애인 고모(47)씨가 19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어머니 김모(77)씨를 대신한 조카(63)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돌아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며 “어제 밤 사촌동생을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을 찾지 못해 7년 동안 미뤄뒀던 칠순 잔치도 이제야 하게 됐다.

고씨가 축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 건 1997년 여름쯤이다. 소 중개업자를 통해 청주시 오창읍 성재리에서 소를 키우고 있는 김모(68)씨 부부의 농장으로 들어왔고 이름없이 19년을 살았다. 고씨 역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의사표현 능력이 없고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축사는 성재리 마을과 500m 가량 떨어져 있다. 고씨 어머니 집과는 직선거리로 15㎞ 정도다. 마을 사람들은 고씨에 대해 “축사에서 종일 나오지 않고 소똥을 치우거나 청소를 한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말이 어눌한 고씨를 ‘만득이’라 불렸다. 한 주민은 “주인이 외출하면 가끔 마을을 찾아왔다. 행색이 누추해 그때마다 음료수나 과일을 챙겨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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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가 일했던 축사와 붙어 있는 6.6㎡ 크기 쪽방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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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가 일했던 축사 전경. 건물 우측에 보이는 통로로 들어가면 쪽방이 있다.

고씨는 축사에 있는 6.6㎡(2평) 크기 쪽방에서 생활했다. 그가 사용한 방은 소 우리와는 불과 1.2m 거리였다. 냄새가 진동하고 문 앞에는 분뇨가 이리저리 널려있었다. 방 안은 도배도 되지 않았고 창문도 없었다. TV와 선풍기 등 가재도구도 없었다. 벽에 세워져 있던 낡은 전기장판이 사람이 살았던 유일한 흔적이다.

고씨는 축사에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사료를 주거나 청소 등 일을 도왔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돈을 주지 않았다. 고씨의 노동 착취 사실은 경찰의 탐문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고씨는 지난 1일 오후 9시쯤 축사와 200m 떨어진 한 공장 건물로 비를 피했다가 경비업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고씨의 말과 행동이 어눌한 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마을 주민 탐문 수사를 통해 김씨 부부의 무임금 노역 정황을 포착했다. 축사 주인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일을 시키고 돈을 준 적이 없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경찰은 고씨의 신원 확인을 통해 원래 집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으로 어머니가 생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씨가 실종된 뒤에도 어머니와 그의 누나(51)는 옛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 경찰은 대인기피 증세까지 보였던 고씨의 안정을 위해 지난 14일 오후 9시쯤 그를 어머니에게 인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주민들도 달려나와 기쁨을 함께 했다. 오송읍 주민 전모(61·여)씨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나서 담 밑에서 펑펑 우는 김씨를 여러 번 봤다”며 “인사성도 밝고 동네 일도 곧잘 돕던 고씨가 건강하게 돌아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 부부에게 근로기준법·장애인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하는 한편 가혹행위가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충북도는 고씨처럼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는 장애인이 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내 지적장애인 9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할 계획이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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