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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황해를 비단길로 만들어 ‘섬나라’ 벗어날 날 6년 안에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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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배에 열차를 실어 서해를 건너자. 그 뒤 중국과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관통해 유럽까지 가자.” 황해 바다를 철길로 삼아 대한민국을 실크로드에 연결시키는 ‘황실(황해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집요하게 밀어붙여온 여당 중진이 있다. 직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원유철(5선·평택갑) 의원이다. 그가 추진해온 ‘한·중 열차페리’ 사업은 대형 선박(페리)에 레일을 깔고 화물열차를 실어 서해를 건너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하는 것이다. 언뜻 황당무계한 얘기로 들리지만 이미 20세기 초부터 스웨덴·노르웨이 등에서 시행 중인 시스템이다. 한·중이 단숨에 연결돼 물류비용과 시간이 절감되고, 닫힌 북한의 문을 열게 만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원 의원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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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철 의원은 “북한에 가로막혀 있다고 손 놓고 있으면 한국은 섬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며 “서해와 동해를 철길로 만들어 중국과 러시아로 연결하는 비단길 프로젝트가 답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황실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배경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프로젝트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현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부산을 출발해 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대한민국판 실크로드 구상이다. 박 대통령이 2013년 10월 제안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 도발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북한으로 나가는 길목이 막혔다. 다른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서해 바다에 착안했다. 평택에서 배에 기차를 싣고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 도착한 뒤 기차를 TCR에 연결시키면 1주일 만에 유럽까지 갈 수 있다.”
사업의 출발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인천은 자신들이 최적지라 주장하는데.
“서해의 교두보는 단연 평택이다. 이미 중국 옌타이항과 카페리 항로가 개척돼 있고 수출입 자동차도 하루 5000대씩 평택항에서 처리된다. 게다가 평택역에서 항구까지 화물열차를 이어줄 20㎞가량의 산업철도도 이미 건설 중이다. 3년 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외교부·해양수산부·국토교통부 장·차관들과 토론한 결과다. 게다가 정세균 국회의장, 이해찬 의원 등 야당 중진 의원들도 서해 페리 사업에 일리가 있다며 내가 타당성 조사 용역 예산 7억원을 따는 데 협력해 줬다. 그 조사 결과 서해 페리는 경제성이 충분한 것으로 나왔다.”
평택에서 강릉까지 철도를 연결한 뒤 동해를 거쳐 극동러시아로 가는 루트도 동시에 제안했는데.
“대한민국은 대륙으로부터 고립된 섬나라 처지다. 서해 페리와 함께 동해~러시아 루트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중국·시베리아횡단철도와 동서로 연결되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고리가 생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70%의 인구와 40%의 면적을 가진 유라시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 굳이 북한을 통하지 않고도 대륙에 연결되니 북한이 문을 닫아걸고 있을 이유도 약해진다. 우리의 대북 협상력이 강해지니 일석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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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돼 육로로 대륙과 연결돼도 서해 페리가 경제성이 있는가.
“중국 남부나 유럽 시장 진출엔 여전히 서해 페리가 유리하다. 평택에서 중국·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반면 동해안을 따라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유럽까지 가는 데는 열흘이 걸린다. 적어도 사흘이란 시간만큼 서해 페리가 경쟁력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과의 관계는 늘 가변적이니 보험 차원에서도 서해 페리가 필요하다.”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이유로 한국에 보복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서해 페리가 희생양이 될 우려는 없나.
“서해 페리는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원해 왔다. 옌타이 부시장이 직접 나를 찾아 서해 페리를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서해 페리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이득을 보는 전형적인 사례다. 중국이 정치·군사적 갈등을 이유로 서해 페리를 중단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프로젝트다. 박 대통령이나 정부가 힘을 실어 준 것은 없나.
“이미 해수부가 평택항 페리 접안시설을 기본계획에 반영했다. 국토교통부도 평택과 강릉을 이어줄 철도 건설을 기본계획에 반영했다. 서해 페리 사업이 정부 차원에서 확정된 것이다. 이르면 내년 착공해 2022년 완공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해 페리만이 아니라 동해 루트도 같이 개척해야 한다는 구상이 눈에 띈다. 마침 중앙일보도 연해주 일대를 답사하는 평화 오디세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동쪽도 굉장히 중요하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극동러시아는 우리의 블루오션이다. 예전엔 우리 땅이었고 지금도 동포가 많이 산다. 크게 보면 또 하나의 대한민국이다. 중앙일보의 오디세이는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의미 있는 시도다.”
8·9 새누리당 전당대회 출마설이 돌았지만 엊그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내년 대선 승리를 이끌어야 할 대표를 뽑는 중요한 행사다. 총선 참패의 원인이었던 계파 갈등이 재연돼선 안 된다. 뺄셈 아닌 덧셈의 전대가 돼야 하고,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주는 전대가 돼야 한다. 그런데 내가 나가 그런 구도를 만들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좀 더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같은 친박계인 서청원 의원의 출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불출마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서 의원의 출마 여부는 그분이 결정할 문제다. 나의 불출마는 그와 전혀 무관하다. 게다가 서 의원은 아직 출마할지 안 할지 결심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안다.”
수도권의 대표적 다선의원이지만 계파색은 약한 정치인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지난해 유승민 원내대표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축출되면서 자리를 이어받자 돌연 친박으로 변신했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원래 친박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당 원내대표가 되면 대통령과 협조해 국정을 운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원내대표와 대통령이 싸우는 건 비정상이다. 당·청 간에 소통하고 협력한 것을 ‘친박’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다.”
그래도 원내대표 시절 4·13 공천을 놓고 친·비박계가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일 때 확연히 친박 편을 드는 모습을 보였지 않나.
“아니다. 나는 원내대표로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김무성 대표(당시)의 갈등을 중간자적 입장에서 좁히려 노력했다. 김 대표와 이 위원장, 그리고 친박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을 한데 모아 저녁을 먹는 자리도 만들었다. 그런데 오겠다던 김 대표가 막판에 돌연 불참해 불발됐다. 그 자리만 성사됐어도 공천이 원만히 매듭지어졌을 것이다.”
김 대표가 왜 불참했다고 보나.
“아마도 이한구 공관위원장에 대한 실망과 분노 탓인 것 같다.”
김 대표가 총선 후보 등록 마감 직전 ‘옥새투쟁’을 벌이며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해결사 역할을 맡았다.
“마감 하루 전 대표가 사라져 버렸으니 최고위원들이 경악했다.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 등 강경한 인사들은 ‘원내대표인 당신이 도장(대표 직인)을 파 대신 처리하라’고까지 하더라. 그러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아 ‘내가 김 대표를 모셔오겠다’고 무마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김 대표를 만나 ‘이 정도면 충분히 어필한 것 아니냐. 서울에서 협상을 합시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김 대표가 ‘알겠다’고 하고 다음 날 올라왔다. 하지만 등록 마감 시한이 다가오도록 사무실에 앉아 있기만 하더라. 이러면 다 망한다는 생각에 김 대표와 담판했다. ‘유승민과 이재오는 대표님 뜻대로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송파을에서 억울하게 탈락한 김영순 후보까지 살려줘야 한다’고 추가 제안을 했다. 그걸 거절하고 다시 협상을 이어가기엔 시간이 없었다. ‘좋습니다’고 하자 비로소 김 대표가 선관위에 제출할 후보들 등록서에 도장을 찍더라.”
그런 딜을 하려면 청와대와 사전에 협의했을 것 아닌가.
“‘범여권’과 협의해 가며 했다.”(‘범여권’이 청와대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원 의원은 미소만 지었다)
최고위원 중 김 대표의 ‘옥새파동’에 가장 격분한 이는 누구인가.
“이인제 최고위원의 피해가 컸다. 김 대표가 부산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서울 당사에 발목이 잡혀 지역구에서 선거운동 할 시간을 뺏겼다. 그게 낙선의 한 원인이 됐다. 이 위원이 김 대표에게 서운함을 많이 느낄 것 같다.”
총선 뒤 김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전부 사퇴하면서 원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쇄신파 의원들의 비토로 물러났다.
“총선 참패 직후 김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전부 사퇴했다. 그러면 당은 누가 이끄나. 고육지책으로 원내대표인 내가 임시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책임감 하나로 버티겠다는 마음이었다. 하루빨리 국민의 신임이 두터운 외부 인사를 데려와 내 자리(비대위원장)를 넘겨주거나 아니면 당선자들 가운데 새 원내대표를 뽑아 권한을 넘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황영철·이학재 의원 등 쇄신파가 나의 임시 비대위원장 취임이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실은 내 생각과 똑같더라. 조기에 원내대표를 뽑자는 것이었다. 나도 즉각 찬성하고, 이튿날 바로 비대위원장직을 그만뒀다. 그러자 쇄신파 의원들이 다들 좋아하더라. 황영철 의원은 ‘원유철 의원의 진정성을 보았다.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원유철 의원은…

서해 페리 프로젝트 추진하는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

대형 선박에 화물열차 실어
서해 거쳐 중국~유럽 주파
‘황해 실크로드’ 본격 추진
북한에 막힌 대륙 진출 돌파구

28세 나이로 도의원에 뽑혀 최연소 당선 기록을 세웠고 이후 고향 평택에서 5선을 기록한 풀뿌리형 정치인이다. 적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원만하고 합리적인 성품의 소유자다. 지난해 2월 유승민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원내지도부 경선에 출마해 정책위의장에 당선됐다. 5개월 뒤 유승민 원내대표가 축출되면서 친박과 비박의 합의로 여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그 뒤 청와대와 적극 협력하며 ‘신박’으로 떠올랐다. 4·13 총선 참패로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가 물러나자 임시로 당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 참패의 원인인 친박계의 공천 전횡에 협조한 점 때문에 쇄신파 의원들로부터 비대위원장직을 비토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62년 평택 출생 ▶수성고등학교·고려대 정외과 졸업 ▶제3대 경기도의원 ▶경기도 정무부지사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원내대표 ▶제15대·16대·18대·19대· 20대 국회의원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