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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의 허세, 검사를 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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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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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편집국 차장대우

나의 편견은 언제쯤 모두 사라질까. 오늘도 추가로 발견했다. 스물여섯 살 힙합래퍼 도끼(본명 이준경)가 내 머릿속에 도끼자국을 남겼다.

도끼는 방송 토크쇼에 나와 수억원을 호가하는 일곱 대의 수퍼카를 자랑했다. 성공한 남자의 상징이라는 벤틀리도 포함돼 있다. 그가 예상한 올해 수입은 50억원이다. 매년 두 배씩 늘고 있다고 하니 내년엔 100억원을 벌 태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곱 대의 수퍼카라니…. 40대 아재를 약올리는 철없는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의 해명에 머리가 띵했다. “돈 자랑이 맞다”는 직설화법이 튀어나왔다. 이어 “나처럼 초등학교 졸업에, 키가 작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혼혈아라는 콤플렉스까지, 한국 사회에서 불리한 요건은 다 갖췄으니 놀라운 성공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예술 세계를 전혀 모르지만 열광하는 팬들이 실존하니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설사 그의 논리가 궤변일지라도 내가 가진 무엇으로 그의 성공과 ‘스웩’(잘난 척 으스대는 듯한 자신만의 여유와 멋을 의미하는 힙합 용어)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토크쇼 이튿날, 나의 또 다른 ‘편견’은 검찰에 출두했다.

진경준(49) 검사장. 친구인 기업 오너(넥슨 김정주 회장)의 특혜로 100억원대 주식 대박을 낸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대 법대 3·4 학년 때 각각 사법·행정고시를 패스했다. 키 작은 혼혈 래퍼가 태어난 1990년에는 법대를 졸업해 성공 질주를 시작한 그다. 그때만 해도 일곱 대의 수퍼카는 도끼보다는 진 검사장에게 어울리는 전리품이었다. 하지만 지금 똑같이 억소리 나는 사건의 주인공이 된 엘리트 검사는 도끼의 허세 앞에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진 검사장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인정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과오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진실을 밝히지 않은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주식 취득 과정에 대한 자수서까지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조직은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 돈이 정의로운 검사가 되라고 친구가 쥐어준 혜택이었다고 할지라도 용서받기는 힘들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무시하고 서서히 검사의 초심을 잃어간 20여 년간의 모습이 엘리트 검사를 키운 검찰 조직에도 뼈아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검찰은 이번 기회를 통해 긴 세월 방치된 위선과 거짓의 현장을 꼼꼼히 되돌아봐야 한다. 돈보다 정의가 우선이라는 위선이,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거짓이 자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나 역시 편견을 교정한다. 어떤 이의 돈 자랑에는 스웩이 있을 수 있고, 지지리도 가난한 검사는 일단 존경받아야 한다고.

김승현 편집국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