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전근대적 의원실 풍경

중앙일보

입력 2016.07.14 00:29

업데이트 2016.07.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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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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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 때문에 가려지고 있지만 요즘 여의도에선 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특권 내려놓기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서영교 의원의 자녀 인턴채용 사건에서 불거진 친인척 보좌진 채용 행태로 여론이 악화되자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구속된 국회의원에 대한 세비지급을 중단하자는 법안뿐 아니라 의원 본인·배우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보좌진 급여 상납 금지 등 고질적 갑질이 벌어지는 사안을 특정해 재발방지책을 내놓고 있다.

갑질의 배경에는 죽기살기식 계파투쟁과 선거를 거쳐 선택받았다는 승자독식의 특권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백재현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은 국회의원 특권의 상징인 금배지 대신 별도의 배지를 달자는 제안을 했다. 조무래기 골목대장들의 태권도복에도 달려 있는 태극기를 활용한 배지 말이다. 특권의식을 정조준한 이런 노력이 값없다 할 수 없지만 이런 일회성 퍼포먼스로 의원들 뇌리에 뿌리 깊게 박힌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여의도에서 만나는 이들의 공통 결론이다.

최근 19대 의원실 보좌관 출신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자못 충격적이다. 여당 중진 의원실에 채용된 여비서가 며칠 만에 해고됐다. 의원실에 채용되려면 국회 사무처에 내야 하는 서류가 15종이다. 임명요청서에 신원진술서뿐 아니라 부양가족신고서·자녀학비보조수당 신청서 등 개인 신상을 거의 다 털어놓고 도장을 받아야 한다. 이런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채용됐는데 개인 사유가 아니라 의원실을 들락거리는 의원 부인이 잘랐다는 것이다. 환영 회식에서 그날의 주인공인 여비서를 의원 앞자리에 앉게 했다가 사달이 났다. 회식 자리에 들른 ‘의원 사모’가 “버릇없이 의원님 앞자리에 앉았다”면서 다음날 해고시켰다는 게 이 사건의 요지다. 가관이었던 것은 의원의 반응이었다. 짐을 꾸리는 여비서를 보고 “죄목이 뭐길래 해고됐대”라면서 남의 일처럼 말하더라는 것이다. 여비서는 ‘조선시대 종살이도 아니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공사 구별이 모호한 게 특유의 문화라면 문화인 의원실의 고용관계 풍경이다.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은 비인격적 언행을 일삼고 의원 본인과 부인의 사적 용무까지 심부름 시키고 있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대중은 개·돼지 발언 파문’에서도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 지도층의 뒤틀린 권위·특권의식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고향으로 몸을 피한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사람도 국회로 불러들여 여론의 심판대에 세우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낙선하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게 정치인의 삶이라고 한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시대 요구에 무감한 정치인은 끈질기게 지켜보고 선택하는 유권자의 심판이 묘약이다.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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