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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밀린 보금자리주택…1만 가구 “내 집 마련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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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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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예약분 4개 단지 3700가구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늦어지고 있는 시흥 은계지구. [사진 LH]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살고 있는 이모(43)씨는 12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전세를 연장할지, 전셋값에 돈을 좀 더 보태 집을 살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6년 전인 2010년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사전예약에 당첨된 경기도 하남시 감일지구 전용면적 74㎡형 보금자리주택(현 공공주택)의 분양계약(본청약)과 입주가 마냥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예약 공고문에는 2013년 5월 본청약, 지난해 10월 입주로 나와 있었다. 이씨는 “3년 넘게 본청약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6년 전 분양 사전예약 당첨됐지만
본청약도 못하고 전세살이 전전
현 정부, 행복주택·뉴스테이 역점
“민간 잠식” 비판에 보금자리 중단
“LH, 공급 서둘러 정책 신뢰 회복을”

장기비전 없는 정부 주택정책의 불똥이 내 집 마련 기대에 부풀어 있던 무주택자들에게 튀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인 보금자리주택이 박근혜 정부 들어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사전예약 당첨자들의 주택이 허공에 떴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8년 무주택자에게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짓는 보금자리주택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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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수요를 분산할 목적으로 전체 분양 물량의 80%에 대해 당첨자를 실제 분양에 앞서 미리 뽑는 사전예약제를 적용했다. 2009~2010년 네 차례에 걸쳐 위례신도시와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2~3차 지구에서 3만9914가구의 사전예약이 실시됐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50~80%여서 청약경쟁이 치열했다. 3만9914가구 중 3만여 가구가 본청약과 함께 착공에 들어갔고 대부분 입주까지 마쳤다.

하지만 나머지 9540가구는 아직 본청약이 진행되지 않은 대기 상태다. LH가 개발하는 경기도 시흥시 은계와 하남시 감일의 6577가구, 경기도시공사 남양주시 진건 2563가구, SH공사의 서울 항동 400가구다. 사전예약 때 공고된 본청약 시기는 2011~2014년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까지 모두 입주했어야 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바뀌면서 보금자리주택이 ‘용두사미’가 되는 바람에 사전예약 당첨자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민간주택시장을 잠식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포기하고 행복주택·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역점을 뒀다. 2013년 4월 보금자리지구 신규 지정을 중단하고 2014년엔 보금자리주택이란 용어를 공공주택으로 바꾸었다. LH 관계자는 “사업계획이 변경되고 보상이 늦어지는 등의 이유로 본청약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예약 당첨자들은 유주택자가 되거나 다른 분양주택에 당첨되면 본청약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에 불안정한 주거 상태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하남 감일지구 사전예약 피해대책위 김동명 대표는 “계속 전세로 돌면서 전세난에 지친 예약 당첨자들 사이에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분양이 지연되는 동안 집값이 꽤 올라 분양가가 사전예약 공고보다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H는 사전예약 당첨자 몫은 사전예약 때 공고된 대로, 일반분양분은 시세를 반영해 가격을 이원화하기로 했지만 SH공사와 경기도시공사는 본청약 때 정할 방침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이미 약속된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분 공급을 빨리 추진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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