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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20만원, 그래도 행복한 얼음공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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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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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차 이상의 패배가 익숙했던 한국은 신소정 등이 똘똘 뭉쳐 올해 세계선수권 4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관심은 받아본 적도 없다. 응원이나 격려는 꿈도 꾸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묵묵히 빙판을 가른다.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다.

하루 6만원 대표팀 수당이 전부
주말마다 알바하며 선수 생활
22명 엔트리 못 채워 19명 출전
세계선수권 4부리그 깜짝 준우승
불굴의 도전 영화로도 제작
수애 주연 ‘국가대표2’ 8월 개봉

남자 아이스하키는 ‘겨울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인기 스포츠지만 여자 아이스하키는 다르다. 한국은 여자 아이스하키만 놓고 보면 불모지나 다름없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꾸려진건 지난 1998년. 99년 강원 겨울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16명으로 대표팀을 급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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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문을 지키고 있는 신소정.

한국은 2003년 아오모리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1-30으로 대패를 당했다.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4개를 딴 전이경(40)이 2006년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가세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한국은 2007년 창춘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본에 0-29로 참패를 당했다. 당시 골리(골키퍼) 신소정(26)은 “일본의 유효슈팅이 100개가 넘었다. 우리팀은 공격 라인을 한 번도 넘지 못했다. 시속 100km가 넘는 퍽을 막느라 온몸에 멍이 들었다.그런데 통증은 참을 수 있었지만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 더 뼈아팠다”고 회상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결성된 이후 18년이 흘렀지만 여자 아이스하키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국내에 여자 아아스하키팀은 단 1개, 대표팀이 유일하다. 실업팀은 물론 학교팀도 없다.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 등록선수는 260명에 불과하다. 현 대표팀은 연세대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29), 쇼트트랙에서 전향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 대표로 뛰고 있는 고혜인(22)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의 수입은 국가대표 훈련수당 하루 6만원이 전부다. 한달에 20일 훈련을 하면 월급 120만원을 받는다. 그래서 주말에 아이들에게 아이스하키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수들도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이들은 빙판 위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7일 태릉실내빙상장에서 만난 한수진은 “드레스를 입고 콩쿠르에 나가는 것보다 빙판에서 스틱을 잡는 게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세종대 나노신소재공학과에 재학 중인 고혜인은 “오전엔 공부를 하고, 오후엔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냉동 창고처럼 추운 빙상장에서 빙판을 가른다.

한국은 2013년을 기점으로 ‘빙판 위의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꿈꾼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여자 세계선수권은 1부리그 부터 6부리그까지 나뉜다. 한국은 2013년 4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B(5부리그)에서 5전 전승으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5부리그 우승으로 4부리그인 디비전2 그룹A로 승격했다. 한국은 지난 4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디비전2 그룹A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꺾었다. 4-1로 북한을 누른데 이어 영국까지 1-0으로 물리친 한국은 4승1패로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를 하는 국가 38개국 중 한국의 랭킹은 23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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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소재로 다음달 개봉 예정인 영화 ‘국가대표2’ 포스터. [사진 메가박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개최국 자격으로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본선에 출전한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2014년 여자 아이스하키 명문 미네소타 둘루스대 출신 세러 머레이(28·캐나다)를 대표팀 코치로 영입했다. 캐나다 교포 박은정(캐나다명 캐롤라인 박)을 지난해 특별귀화시켰고, 하버드대 출신으로 엄마가 한국인인 랜디 그리핀의 특별귀화를 추진 중이다. 여자 대표팀은 출범 이후 총 22명 엔트리(스케이터 20명, 골리2명)를 다 채워본 적이 없다. 지난 4월 세계선수권에도 3명이 부족한 19명으로 출전했다. 그래도 빙판 위의 태극 여전사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2000년부터 16년째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이규선(32)은 “내년 2월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승과 함께 메달획득을 노린다”고 말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가대표2’가 오는 8월 개봉한다. 2009년 스키점프 대표팀의 활약상을그려 관객 840만명을 동원한 영화 ‘국가대표’의 2탄 격이다. 이 영화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2003년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전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수애·지원 역), 퇴출된 쇼트트랙 선수(오연서·채경 역), 필드하키선수(하재숙·영자 역), 아이스하키협회 경리(김슬기·미란 역), 전 피겨선수(김예원·가연 역) 등이 한 팀을 이뤄 아시안게임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대표팀 감독 역할은 오달수(대웅 역)가 맡았다.

글=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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