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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북한의 인터넷 허용, 자살골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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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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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

얼마 전까지 ‘북한 붕괴론’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게 있었다. 바로 휴대전화였다. 북한 주민 다수가 휴대전화를 쥐면 중국과의 국제통화를 통해 외부 실상을 알게 돼 김정은 체제가 무너질 거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북한 내 휴대전화 수가 300만 대를 넘었다는데도 붕괴 징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뭐가 틀린 걸까.

2012년 알렉 로스 미국 국무부 혁신담당 수석보좌관이 방한해 그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정통한 인터넷 전문가다. 마침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거세던 때라 그는 SNS가 반독재 투쟁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했다. “과거엔 지도자가 없으면 가두시위가 불가능했지만 이젠 어디서 모이자는 이야기가 SNS로 퍼지면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휴대전화에 의한 북한의 민주화에 대해선 비관적이었다. “북한 정권이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를 차단하는 한 휴대전화와 같은 기술 진보만으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바꿔 말하면 인터넷이 보급되면 북한 정권이 위험해진다는 얘기였다.

인터넷의 힘에 주목한 건 그뿐 아니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지난해 1월 “인터넷이 침투하면 북한과 같은 독재정권은 무너질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단언했었다.

북한도 인터넷의 잠재력을 절감했는지 이를 철저히 통제해 왔다.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 학교 교수·학생 120명 정도와 일부 고위층만이 인터넷을 쓸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랬던 북한이 지난달부터 개인의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초 북한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접속조차 못한다는 사실을 영국 BBC가 방송하는 바람에 이런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이다.

결정을 내린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그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알아야 한다”고 인터넷 사용을 독려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외무역성 과장급 이상 등이 인터넷을 쓰게 됐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인터넷은 북한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불러다 줄 ‘판도라의 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열리면 닫을 수 없는 게 판도라의 상자다. 북한 내 인터넷 허용을 두고 어떤 이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맞먹는 사건”이라고 비유했다. 이 같은 예언대로 이번 조치가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가져다줄 시한폭탄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