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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귀국해서 아내와 온천을…" 여행가 김찬삼의 숨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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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미소짓는 모습이 생시의 그를 보는 듯하다. 한양대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에서 오토바이를 모는 모습의 김찬삼(1926~2003)씨가 기자를 맞이한다. 그는 세계적인 여행가였다. 1958년부터 1996년까지 20차례에 걸쳐 160개국을 여행했다. 한양대박물관은 그를 재조명한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안스'전을 다음 달 27일까지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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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책이다. 김찬삼의 세계여행. 김찬삼은 첫 여행을 다녀와서 1962년에 첫 여행기를 발간한 뒤 1975년부터는 그 동안의 여행기를 모아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을 차례로 발간했다. 이 방대한 책은 여행기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고 한국인은 비로소 나라 밖 넓은 세상을 알게 됐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고교시절 학교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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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나올 때까지 한 우물만 파라."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그렇게 말했고 김찬삼은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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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교육을 전공하고 지리교사가 된 김찬삼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내가 세계 구석구석을 직접 가봐야겠어. 가보지 않고 책만 보고 가르치는 건 죽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김찬삼이 발로 밟은 땅을 이으면 그림과 같다. 그의 말대로 세계 구석구석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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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은 아내와 1남 6녀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장녀 김을라씨는 “몇 십년을 아버지 없는 고아로 지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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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부조와 김찬삼이 사용하던 지도. 필리핀 루손섬이다. 여행자의 땀과 노고가 그대로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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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들. 김찬삼의 여행 초기는 특권층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적은 경비를 쓰면서 배낭을 메고 세계를 두루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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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은 민간외교관으로 KOREA를 세계에 알렸다. 배낭마다 코리아와 자신의 이름을 영문으로 큼직하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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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같이 여행한 김찬삼의 카메라들. 그는 여행지를 세번 관찰했다. 해 뜨기 전, 한 낮 그리고 노을이 질 때. 그는 부지런한 사진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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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의 여행용 신발. 묵직하고 튼튼한 가죽부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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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28일 일기.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의 어려움이 생생하다.

“아침에 (여행사)쿡에 가서 베르겐-스칸디나비아-마르세유까지의 기차표를 정식 발매하였다… 유레일패스가 가능하였다면 얼마나 세이브되었을 것인데, 이스탄불 이후의 유럽 기차값만 하여도 대단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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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의 일기. 아내가 그립고 향수에 젖은 듯 하다.

“더블 베드에서 혼자 쉬기는 아까웠다. 빨리 귀국하여 아내와 온양온천행도! 이곳 음식은 그리 구미에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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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세우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여행을 즐기는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자동차 트렁크에는 술과 과일, 유유 등 먹거리가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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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김을라(69)씨. 김찬삼세계여행문화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행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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