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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8월호 특별대담] 김종인 더민주 대표-남경필 경기도지사 “제왕적 대통령제는 더 이상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7월 8일 오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만났다. <월간중앙>이 기획한 <김종인-남경필 특별대담:2017 대선과 개헌의 시대정신>을 통해서다. 남 지사가 김 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방문했다. 2시간에 걸쳐 이뤄진 토론을 통해 두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독일 국가 모델에 대한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이 토론이 이뤄지는 데 중요한 매개가 됐다. 독일 민주주의는 ‘연정체제와 사회적 시장경제’로 개화된 체제다.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 지론도 이런 맥락 안에서 파악될 수 있다. 남경필 지사의 전매특허가 된 ‘협치정치 브랜드’도 독일 국가 모델에서 많은 자양분을 흡수했다.

김종인 대표가 여권에 몸 담았을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했다. 남 지사는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 철학에 깊이 공감했고, 김 대표는 남 지사를 여권의 차기 지도자 감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차기 대선을 향한 두 사람의 광폭행보가 이번 토론을 통해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김 대표는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현재의 정당체제가 무너지고 양당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또한 “진정한 협치의 정치, 다당제 실현 등은 대통령제 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남경필 지사가 최근 제안한 ‘헌법개정을 통한 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긍정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수도권 집중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며, 국가 효율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국가 차원의 대책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라 부연했다. 남경필 지사는 4년 중임 대통령, 의석에 비례해 각 정당 국회의원이 입각하는 ‘협치형 대통령제’를 개진했다. 그는 ‘협치형 권력구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20대 국회가 올해 안에 선거법과 관련 제도의 손질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합선거구제 등 다당제 출현이 가능한 선거법이 만들어지면 결국 이 선거법이 헌법 개정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 전망했다.

김 대표는 남 지사의 ‘협치형 대통령제’가 “내각제처럼 운영되는 대통령제라 볼 수 있다”면서 그런 시스템이 우리 현실 정치에서 실현되기 위해선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그럴 바에는 대통령과 내각의 역할이 분명하게 규정되는 내각제가 더 바람직하며, 국민들의 정치 인식도 내각제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성숙해 있다”고 진단했다. 토론 전문은 7월 18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8월호에 게재된다.

제1 야당 대표와 여당의 광역자치단체장이 만나 공개적인 토론 한다는 게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남경필 지사는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이하 김종인)=“내가 남 지사를 대통령 만들어주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것이다.”(일동 폭소)

▶남경필 경기도지사(이하 남경필)=“이 회동이 여야 협치 정치의 시작, 그 상징적 사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졌다. 두 분 모두 최근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 지사는 개헌을 통한 수도 이전을 개진했는데.
▶김종인=“수도 이전은 지난 정권 때 위헌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개헌을 통해야만 가능해졌다. 수도권이 너무도 비대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한 지역에 살면서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는 없다. 나의 문제의식도 남 지사와 같다.”

▶남경필=“김 대표와 내가 우려하는 것은 권력의 집중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된 기득권이 문제다. 이 기득권의 철폐는 경제민주화와 같은 맥락이다. 수도권에 돈과 권력이 다 몰려 있는 현상을 이제 해체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수도 이전론은 기득권 깨자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불통의 상징 청와대, 특권의 상징 국회를 경제와 분리시키자는 것이다. 서울은 경제수도로, 세종시는 정치수도로 삼으면 된다.”

현직 경기도지사로서 놀라운 제안이다. 수도권 유권자들이 과연 좋아하겠나. 김종인 대표의 정치 기반도 서울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김종인=“수도권에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봇물을 이룬다. 토지 용도를 변경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수도권 집중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며, 국가의 효율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세종시의 어정쩡한 기능을 봐라. 비효율적이다. 지지 기반을 떠나 남 지사의 수도 이전론은 수도권 과밀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남경필=“경기도 각 지자체 모든 플랜과 정부와 협의한 택지개발 등을 근거로 시뮬레이션 해보니 2020년 경기도 인구는 1700만이 된다. 수도권에 3000만 명이 모여 사는 시대가 도래한다. 전 인구의 60%다. 끔찍하지 않나? 수도권 사람들 결코 행복하지 않다. 전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으로 3당체제가 성립됐다. 좋든 싫든 이 체제가 개혁의 출발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을까.
▶김종인=“국민들이 ‘의식적으로’ 3당 체제의 출현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더민주와 새누리가 짜증나는 정당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민주 입장에선 호남에서 패배하고도 수도권에서의 압승으로 제1야당이 됐다. 이건 행운이었지만 아주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수도권 민심이 이반하면 더민주는 폭삭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경필=“3당 체제 성립은 양당체제는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국민의 집단 지성이 작용한 결과로 생각한다. 영남과 호남의 공고한 기반을 토대로 적당히 싸우면서 기득권 챙기는 양당구조의 종언을 명한 것이다.”

3당 체제는 과연 최적화된 체제인가. 국민이 바라는 생산적 협치를 담보할 수 있을까.
▶김종인=“3당이 아니라 4당이라 해도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는 진정한 협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선진화법 때문에 법안을 제대로 통과시키려면 1당과 2당이 합해야 하는 구조다. 3당이 어떤 당과 연합해도 180석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협치를 제대로 하고, 다양한 국민의사를 반영하려면 현재의 정당 구조 가지고는 안 된다. 게다가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현재의 정당체제가 무너지고 양당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남경필=“김 대표 견해에 공감한다. 이번 총선 국민들의 선택은 제도를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 이번 국회에서는 개헌 논의의 전단계로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 올해 안에 완결하는 게 좋다. 개헌이라는 큰 어젠다로 가기 위한 격발기(trigger)가 바로 선거구제 개혁이다. 소선구제와 중대선거구를 혼합한 복합선거구제의 도입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복합선거구제는 국회의원의 다양한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제도인 것 같기도 하다.
▶남경필=“개혁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거기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을 변화로 이끄는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절묘한 수가 복합선거구 안에 담겨 있다. 시골에서는 소선거구제를 하고, 예를 들면 수원과 같이 50만에서 100만 이내에 드는 도시는 2명에서 한 4명을 뽑고, 서울 같은 경우는 권역별로 나눠 대선거구를 하자는 것이다.”
헌법 개정 전에 선거법과 관련 제도를 고치는 게 올바른 수순일까.
▶김종인=“선거법 개정도 헌법 개정과 패키지로 논의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경필=“개헌과 상관없이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원들이 동의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양당제를 깨고 지역주의 정당을 그만둔다는 취지의 개정이라면 대통령의 의지와도 별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다.”

최근 두 분 모두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내각책임제를, 남 지사는 대통령 중임제와 정당 의석 비례 각료 배분의 권력구조를 제시했다.
▶남경필=“‘협치형 대통령제’라고 네이밍했다. 한국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다. 원내 제1당에게 총리를 주고 각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장관을 배분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각 당에서 차출된 장관들과 함께 국정을 잘 리드할 수 있을까.
▶남경필=“지금처럼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이 내각을 컨트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은 비서가 아니라 각료들과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비서는 서포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은 거꾸로 수석들이 장관을 지배하는 구조인데, 이를 고쳐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정하면서 국정의 중심을 대통령과 장관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김종인=“남 지사 생각은 내각제처럼 대통령제를 운영하자는 얘기인 것 같다. 막상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굉장히 이행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내각제처럼 제도적으로 딱 묶어놓지 않으면 어렵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게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가를 운영하는 내각은 총리한테 맡겨 총리가 연정을 하면서 끌고 가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그러니까 총리직은 능력 없는 사람은 수행할 수 없다”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정치인이 많아졌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대선 유력주자들이 반대하면 힘든 것 아닌가?
▶김종인=“박 대통령이 임기 중 개헌을 원할 수도 있는 정치지형이 성립될 수도 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이 어디 있나? 그러나 대통령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내각제 반대하는 건 맞다. 그리고 내각제가 되려면 현재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져야 한다. 현재 우리 국회의원들이 내각을 구성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내각제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수준은 영원히 올라가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내각을 담당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국회의원들이 내각을 점유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민도가 낮으면 내각제 못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의 정치인식은 충분히 성숙돼 있다. 이번 총선 때 수도권의 민심을 보며 그런 판단을 하게 됐다.”

▶남경필=“우리 대통령제의 폐해 중의 하나가 정책의 연속성이 없는 것이다. 같은 정당이 연속해 집권해도 이전 정부의 정책은 다 폐기한다. 우리가 독일의 연정과 협치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이 정책의 연속성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김 대표 말대로 국회의원의 자질도 큰 문제다.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국회의원이 도의원, 시의원하고 똑같은 일을 한다. 국회의원이 아침에 일어나 청소하고 지역구 행사 다니고 상가집을 다닌다. 국정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중대선거구제를 만들어 어느 정도 단위를 이루어 국정을 고민하고, 정책연구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두 분의 공통점은 독일 국가 모델에 대한 관심이다.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와 부총리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정권 내 협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종인= “두 사람은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무려 14년간이나 같은 정권 안에서 일했다. 아데나워는 전후 프랑스와 관계를 복원하는 ‘서방정책’에 몰두했고, 에르하르트는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 독일 국가 모델의 가장 큰 강점은 정파 간 연정의 정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계승된다는 일관성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남경필=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사실상의 경제 지도자였다. 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 중의 한 명이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힘차게 추진한 에르하르트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은 경이로운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그런 자세를 배우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사회=한기홍 기자, 정리=김포그니 기자 glutto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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