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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m22㎝ 날아오른 김덕현…리우 메달까지 닿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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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누구나 한번쯤 멀리 나는 꿈을 꾼다.

미국 선수들과 훈련하며 주법 바꿔
지난달 한국 신기록 7년 만에 경신
런던 은메달 기록보다 6㎝ 더 뛰어
12년 태극마크 단 31세 노장 선수
탄산음료·밀가루 끊고 자신과 싸움
“한국 필드 종목 첫 메달 따고 싶어”

40~50m를 달리다 힘차게 발판을 구른 뒤 허공을 가르는 육상 종목, 멀리뛰기엔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1cm라도 더 멀리뛰기 위해 흘리는 피와 땀이 얼마나 되는지를. 허공을 가르다 모래 위에 착지한 뒤 밀려오는 그 좌절감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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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은 오늘도 도움닫기를 하며 하늘을 난다. 1㎝라도 더 멀리뛰기 위한 몸부림이다. 8월 리우 올림픽 멀리뛰기에 출전하는 그는 한국 육상 사상 처음으로 필드 종목에서 메달을 노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8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김덕현. [사진 강정현 기자]

김덕현(31·광주광역시청). 올해 서른한살의 이 사나이는 8월 리우 올림픽 멀리뛰기에 모든 걸 걸겠다는 각오다. 전남 보성 벌교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17년째 더 멀리 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 8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그를 만나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각오를 들어봤다.

김덕현은 리우 올림픽 육상 2개 종목에 출전한다. 평지를 달리다 발판을 딛은 뒤 허공을 가르는 멀리뛰기와 ‘홉(hop)→스텝(step)→점프(jump)’의 3가지 동작으로 가장 멀리 뛴 선수를 가리는 세단뛰기에 나간다. 한국 선수 가운데 자력으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제시한 2개 종목의 출전 기준 기록을 통과한 건 김덕현이 처음이다.

이제까지 올림픽 육상 필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마라톤에선 황영조나 이봉주 등이 금메달을 따냈지만 육상 경기장에서 열리는 필드 종목은 한국의 불모지였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메달 획득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밝다.

김덕현이 지난달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 육상대회 멀리뛰기에서 8m22cm를 뛰면서 1위를 차지하자 국내 육상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김덕현은 지난달 이 대회 우승으로 리우 올림픽 출전 기준 기록(8m15m)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2009년 자신이 세운 한국 기록(8m20cm)을 7년 만에 경신했다. 김덕현은 지난해 7월 한·중·일 친선대회 세단뛰기에선 17m를 뛰어 역시 올림픽 기준 기록(16m85cm)을 통과했다.

김덕현이 지난달 멀리뛰기에서 기록한 8m22cm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이 종목 은메달을 딴 기록(8m16cm·호주 미첼 와트)을 능가한다. 김덕현은 “ 최고 기록을 평생 못 깰 줄 알았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앞으로 30~40년 정도는 이 기록이 안 깨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한국신기록을 세운 건 적극적인 자세 덕분이었다. 김덕현은 지난 3월 10여명의 미국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을 하면서 도움닫기 주법을 바꿨다. 구름판에서 50m 떨어진 지점에서 뛰어 도움닫기를 하는 러닝 스타트 대신 40m 지점에서 서 있다가 출발하는 스탠딩 스타트로 자세를 바꿨다. 그는 “ 대부분의 미국 선수들이 스탠딩 스타트로 뛰면서 좋은 기록을 내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발목에 무리가 덜 가면서도 도움닫기를 할 때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어서 기록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대표로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가 자연스럽게 육상선수의 길로 접어든 그는 이제까지 기록 경신을 위해 몸을 만드는 한편 금욕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 고교 시절부터 폭 1m의 계단 245개를 40초 만에 주파하고, 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길렀다. 2005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엔 탄산음료·커피 등을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오직 기록 경신만을 목표로 밀가루 음식도 피했다.

2011년 왼발목 인대 3개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지난해 11월 아내 조민주(28)씨와 결혼한 뒤 그는 다시 한번 비상을 꿈꾼다. 김덕현은 2008년과 2012년 올림픽에선 세단뛰기에 나가 예선 탈락했다. 올림픽 멀리뛰기 종목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체대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도 밟고 있는 그는 요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그는 “멀리뛰기에 승부를 건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 획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현은 …

생년월일: 1985년 12월8일(전남 보성 출생)

신체조건: 1m80cm, 68㎏ 소속팀: 광주광역시청

출신교: 벌교중앙초-삼광중-광주체고-조선대

최고 기록: 8m22cm(멀리뛰기), 17m10cm(세단뛰기)

※ 모두 한국 최고 기록

주요 성적: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멀리뛰기 금메달, 2008·2012 올림픽 세단뛰기 국가대표 출전, 2013~2016 전국선수권 멀리뛰기 4연패

글=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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