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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세련된 가곡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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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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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장담부터 하면, 이제 소개할 노래들은 아예 안 들으면 모를까 한번만 듣기는 어려울 거다.

우선 작곡가 최진 ‘시간에 기대어’, 김효근 ‘사랑한다는 말은’, 김주원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를 추천한다. 성악가별로 들을 수도 있다. 베이스 연광철이 부르는 ‘그대 있음에’, 전승현의 ‘새로운 길’.

어지럽게 나열했지만 공통점은 단순하다. 유행하는 노래만큼 듣기 좋다. 그리고 유행가처럼 이해도 잘 된다. 서양 음악을 부르던 성악가들이 부르지만 우리 말 노래니 당연하다. 나는 이 노래들이 요즘 유행하는 대중 가요에 안 밀린다고 믿는다.

(이래도 한국 가곡이 촌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젊은 작곡가 김주원의 이 노래는 서늘하고 비장하면서 많은 것을 숨긴 채 진행된다. 서정주의 아름다운 싯구들이 피어난다.)

그런데 어떤 장르로 묶어야 할까. 한국 작곡가들이 시에 음악을 붙인 노래들이니 한국 가곡이다. 인기 있는 장르라고는 볼 수 없는 한국 가곡 말이다. 홍난파·이흥렬 같은 대 작곡가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한국 가곡의 이미지는 고루하다. 어르신들 취향의 구식 음악이란 인상으로 굳어졌다. ‘그리운 금강산’ ‘청산에 살리라’ 같은 음악을 즐겨 듣는단 젊은 청중이 많던가. 하지만 위 음악들은 한국 가곡이 낡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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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작곡가가 만든 이 노래들은 세련됐다. 예전처럼 거창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알아들을 수 없는 우리말로 노래하지 않는다. 요즘 작곡가·성악가들은 한국어를 어떤 발성으로 노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이들은 피아노 한 대 혹은 적은 수의 반주 악기를 놓고 내밀한 시어를 속삭인다. 게다가 가사를 적은 사람들의 이름에는 눈이 번쩍 뜨인다. 위에서 소개한 노래들의 작사가는 무려 서정주·윤동주·김남조·이해인이다. 아름답지 않기가 힘든 노래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만 가곡이 아니다. 진화하는 한국 가곡이 쟁쟁하게 버티고 있다.

(연광철은 유럽 청중이 사랑하는 베이스다. 유럽은 왜 그에게 열광할까. 연광철이 부르는 한국 가곡을 들으면 그 이유를 더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한국의 쟁쟁한 성악가들이 독일 가곡을 부르면 ‘잘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한국 가곡을 부르면 ‘좋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가곡의 경쟁력이다. 전승현이 부르는 윤동주의 ‘새로운 길’. 이영조 작곡.)

얼마 전 베이스 전승현이 무대에서 부르는 윤동주의 시를 들었다. 작곡가 이영조가 쓴 ‘윤동주 시에 의한 네 개의 노래’였다. 전승현은 밀라노·바이로이트·잘츠부르크 등 세계 일류 극장을 휩쓰는, 이른바 원조 한류 성악가다. 그가 윤동주를 부를 때 나는 비로소 유럽 청중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저토록 좋은 소리로,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는 언어를 노래해줄 때의 황홀함이었다. 이제까지는 유럽 청중 만의 것이었던 기쁨이었다. 한국 가곡 덕에 나도 한류의 수혜를 입었다. 세계 유수 극장에서 노래하면서 “한국 가곡으로 유럽 무대에 서고 음반도 내고 싶다”고 말했던 성악가가 꽤 된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