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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통령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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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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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최근 가장 눈여겨본 기사는 2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의 ‘밤의 오바마(Obama After Dark)’였다. 백악관 출입기자가 취재한 온갖 시시콜콜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바마는 오후 6시30분 퇴근하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7시15분 3층 게임룸에서 요리사와 45분간 포켓볼 당구를 친다. 그러곤 자신의 서재 겸 개인 집무실인 트리티룸(Treaty room)으로 가 4~5시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대개 연설문을 다듬거나 정부 보고서를 검토한다. 국민들의 편지 가운데 비서가 골라준 10개도 읽는다. 중요 경기가 있으면 ESPN으로 스포츠 중계를 보며 측근들과 웃기는 문자질을 하며 장난친다. 오바마는 스스로 ‘올빼미’라 부른다. 부시 전 대통령은 밤 10시면 잠을 잤지만, 오바마는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든다.”

“오바마는 서재에서 물만 마시고 절대 카페인 음료는 안 먹는다. 미셸 여사는 ‘간식으로 아몬드를 내놓는데 6알도 아니고 8알도 아니다’고 말했다. 꼭 아몬드 7알만 먹는다는 뜻이다. 오바마가 밤을 새는 경우는 대개 연설문 때문이다. 2009년 노벨상 받기 전날엔 새벽 4시까지 수상연설 원고를 직접 가다듬었다. 지난해 6월 (오바마 최고의 연설로 꼽히는, 성경공부 중이던 흑인 핑크니 목사 등이 살해당한) 찰스턴시 추모 연설문은 연설문 담당자에게 ‘다시 들어와 달라’고 해 함께 꼬박 밤을 새우며 다듬은 것이다.” 이 기사의 상당 부분은 오바마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ABC방송의 토크쇼 등에서 직접 털어놓은 내용이다.

우리 청와대는 전혀 딴판이다. 우선 “대통령 집무실은 근정전이나 다름없다.”(노무현 청와대의 윤승용 전 홍보수석) 비서동에서 걸어서 10분이나 걸리고, 청와대 본관 2층 집무실의 문을 열어도 15m나 걸어가야 대통령 책상 앞에 선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집무실로 들어서며 첫 마디가 “테니스를 쳐도 되겠구먼”이었겠는가. 더구나 “대통령 관저는 귀곡산장이다.”(이명박 청와대의 이동관 전 홍보수석) 밤이면 대통령 주위에 경호원과 부속실 직원뿐이어서 쓸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박근혜 대통령의 밤도 궁금하다. 청와대 비서실장들의 증언은 똑같다. “대통령께선 일어나시면 그것이 출근이고 주무시면 그것이 퇴근이다. 하루 종일 근무하고 계신다.”(2014년 10월 김기춘 실장) “제가 보기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100% 일하고 계신다”(지난 1일 이원종 비서실장) 그리고 두 비서실장 모두 입을 모아 증언한다. “그분 마음속에 오직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 외에는 없다”고.

우리 청와대는 너무 베일에 싸여 깜깜이다.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국회에서 “대통령의 건강, 체력 등은 2급 비밀”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미테랑 대통령의 암 투병을 밝혔고, 2014년 백악관도 “오바마가 인후염에 걸렸다”고 공개했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올해 아프리카·프랑스 순방, 지난해 4월의 중남미 순방, 그리고 2014년 캐나다 국빈 방문 때마다 피로를 호소하며 링거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아시아 순방 뒤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회 영결식에 빠졌다. 또 감기몸살기로 네덜란드 국왕 주최 만찬에도 불참했고, 올해 4월 핵안보정상회의 때는 “잠시 세면장에 갔을 때 당초 예정보다 빨리 촬영이 시작돼 각국 정상들의 사진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청와대 측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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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주 컨디션이 무너진다면 대통령의 순방 일정부터 느슨하게 조정해야 한다. 청와대 스스로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하는 대통령만큼 쉬는 대통령도 보고 싶다. 박 대통령도 더 이상 ‘링거 투혼’보다 스스로 인간적인 모습을 슬쩍슬쩍 공개하는 게 좋을 듯싶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을 뿐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미국처럼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는 법’을 고민하지 않으니 한국 대통령의 지지도는 ‘전강후약(前强後弱)’이 고착화됐다. 이제 한번쯤 한국 신문에서도 ‘밤의 박근혜’ 같은 기사를 보고 싶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