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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전원주택 피해 늘어나는데 정부는 뒷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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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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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경제부문 기자

한동안 꽁꽁 얼었던 전원주택시장에 솔솔 봄바람이 불고 있다. 전원생활의 ‘로망’을 간직한 반퇴세대의 퇴직이 본격화한 영향이 크다. 요즘은 젊은층도 몰린다. 가격 부담이 작은 66~99㎡ 크기의 중소형 전원주택이 등장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을 고를 때 ‘얼마나 값이 오를까’ 대신 ‘얼마나 살기 좋을까’를 고민하는 주택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신문을 펴면 전원주택 관련 광고가 부쩍 눈에 띈다.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이나 ‘땅+주택’을 통째로 분양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광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군가의 ‘로망’이 ‘악몽’으로 바뀌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전원주택만큼 주먹구구인 분야도 없다. 사실 명확한 개념도 없다. 이전까지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일종의 별장을 뜻했다. 요즘은 도심을 벗어난 교외에 있는 단독주택 정도로 쓰인다. 대부분 부동산처럼 전원주택도 지을 수 있는 땅이 따로 있다. 주택 건축이 자유로운 대지 외에 전·답이나 임야 같은 지역도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예컨대 농림지는 해당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만 집을 지을 수 있다. 계획관리지역도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지목을 변경해야 건축을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땅을 사면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특성상 되팔기 쉽지 않아 집도 짓지 못하고 꼼짝없이 자금만 묶인다. 땅과 주택을 함께 분양받아도 안심할 수 없다. 전원주택개발업체는 대부분 직원 5~6명을 둔 소규모다. 계약·중도금만 받고 사라지거나 집을 짓는 도중에 잠적하기도 한다.

물론 계약 전에 이런저런 위험 요소를 따지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개인 탓만 하기엔 기본적인 보호장치가 너무 부실하다. 정부는 그저 뒷짐이다. 현행법상 주택부지면적 1만㎡, 30가구 이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승인 없이 개발할 수 있다. 우후죽순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10가구 미만의 부지가 대부분이니 현황 파악도 안 된다. 교통·인구밀도 등을 따져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조성되는 아파트와는 딴판이다. 주택분양시 필수인 분양보증 가입도 사실상 전무하다. 따라서 업체가 부도 등의 이유로 공사가 중단되면 아파트와 달리 보상받을 길이 없다. 전원주택 수요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데 환경은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애꿎은 피해가 늘어나기 전에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최현주 경제부문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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