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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삼국유사 목판, 504년 만에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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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먹으로 찍은 책만 남아 있는 『삼국유사』(국보 제306호)가 500여 년 만에 목판으로 ‘부활’했다.

경북도, 28개월간 복원 작업
14㎜ 크기 8만9200자 새겨

경상북도와 군위군, 한국국학진흥원은 8일 안동 신도청에서 ‘삼국유사 목판사업 조선 중기본 완료 보고회’를 열었다. 2013년 사업이 처음 검토된 이후 3년 만이다.

『삼국유사』는 1512년 경주 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중종 임신본(조선 중기본)’을 마지막으로 목판이 자취를 감췄다. 전하는 것은 조선 중기본 등 목판으로 찍은 13종의 책뿐이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기록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2014년 3월 『삼국유사』 목판 복원에 본격 착수했다.

복원된 『삼국유사』 목판은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 중기본을 기준으로 삼았다. 조선 중기본은 현존하는 가장 온전한 목판 인출본으로 연구의 기초자료로 널리 활용된다. 이번에 복원된 목판은 5권2책의 본문 112개 판과 표지 등 모두 115개 판이다. 새긴 글자는 8만9200여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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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경북도지사(가운데)가 8일 『삼국유사』 목판으로 찍은 인출본을 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도는 복원을 위해 2015년 2월 50명으로 이뤄진 목판사업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출범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사공일(중앙일보 고문) 전 재무부 장관이 공동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문인 르 클레지오는 지난해 11월 군위를 찾아 특별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경북도는 판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시로 자문위원회를 열고 고증을 거쳤다. 또 규장각본의 실측을 토대로 목판의 규격 등을 설계했다. 목판은 가로 620㎜, 세로 286㎜에 두께는 40㎜로 정해졌다. 무게는 하나에 2.3㎏ 정도. 판재는 산벚나무를 3년 이상 자연 건조해 사용했다.

지난해 6월에는 공모를 통해 전국에서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수(刻手) 7명을 선발한 뒤 제작에 들어갔다. 이어 11월엔 경북 군위군 사라온마을에 전통 공방을 재현해 ‘삼국유사 목판사업 도감소’를 열었다. 군위는 보각국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가 있는 곳이다. 도감소는 각수들에게 서체 통일을 강조하고 시범 제작을 거쳤다.

새겨진 글자 하나의 크기는 평균 14㎜. 21자가 들어가는 한 행을 새기는 데 두 시간쯤 걸렸다. 목판 하나가 앞뒤로 새겨지면 검수위원은 틀린 글자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모든 각수는 판각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일지도 남겼다. 후대에 전통 판각 기술을 전하기 위해서다.

인출본 20질은 국립중앙도서관 등지에 배포됐다. 영인본도 100질 만들었다. 조선 중기본 목판은 앞으로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된다. 경북도는 38억원을 들여 내년까지 조선 초기본과 경상북도본을 다시 목판으로 새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삼국유사』 목판 사업은 한민족의 우수한 기록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목판 사업을 통해 문화유산을 전승하고 무한한 가치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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