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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가난한 발바닥의 하소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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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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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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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은 장편소설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에서 진돗개 수놈인 보리를 의인화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개 발바닥의 굳은살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돼 있었다”고 했다.

개뿐일까. 고양이 등 다른 동물들은 어떨까. 인간과 함께 하면서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반려동물이란 이름이 붙은 모든 생물들에게도 고통과 기쁨이 있지 않을까.

이들에게 인간은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친구이고, 동반자일 거란 인식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전에 나온 『개의 사생활, 우리 집 개는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책에서 지은이는 “개도 얼마든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훈의 문체를 빌려 한 강아지의 생각을 추론해 본다.

보리는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가 누구인 줄 모른다. 개이기 때문이다. 애완견 분양센터에 있다가 2년 전쯤 지금의 주인에게 왔다. 주인은 그를 입양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다른 개들에 비하면 팔자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놈 또한 개 노릇을 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알아야 하고, 무엇이 사람을 기쁘게 하고 괴롭히는지를 아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의미다. 왜냐고? 인간들은 변덕이 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들은 말이 안 통한다. 서로 자기들 말만 하고, 개의 행동이나 울부짖음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인간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도 그만큼 크다.

올 들어 개들이 큰 수난을 겪고 있다. 강아지 분양공장이란 곳에서 보리의 친구들은 쇠창살에 갇혀 1년에 서너 번씩 새끼를 낳아야 했고, 번식 능력이 없는 애들은 쓰레기로 버려졌다.

새끼를 꺼내기 위해 배가 찢겨지고도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영양실조로 죽어간 아이들을 위해 몇몇 시민단체가 구호활동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발생한 유기동물은 8만2000여 마리다. 이 중 개가 5만9000여 마리(72.7%)로 가장 많고, 고양이 2만1000여 마리(25.9%), 기타 1000여 마리(1.4%)다. 특히 요즘 같은 7~8월 때 가장 많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 307곳의 유기동물 보호소의 일시 수용 가능량은 2만2000여 마리에 불과하고, 평균 23일의 보호 기간에 드는 비용이 마리당 12만원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는 새 주인이나 원래 주인을 찾지 못한 유기동물에 대해 안락사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한쪽 다리가 잘리거나, 치주염으로 턱관절이 녹아내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이 보호소에서 지내지만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유기동물 처리 상황을 보면 개인 분양 2만6000여 마리(32%), 자연사 1만8000여 마리(22.7%), 안락사 1만6000여 마리(20%), 소유주 반환 1만2000여 마리(14.6%) 등이었다.

이 같은 문제가 커지자 정부가 반려동물을 위한 경매시장을 만들고,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반려동물 산업을 신산업으로 체계적으로 육성키로 하고, 관련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 토끼·기니피그·햄스터 등도 반려동물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이다.

구박의 고통을 각오하고 보리는 다시 한번 짖기로 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은 그 녀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짖어야 한다.

“사람들아, 개나 고양이가 선물 박스에 담겨 택배로 배달되면 반려동물 산업이 2020년에는 지금의 1조8000억원대에서 5조8000억원대로 커질 것 같으냐. 컹!컹!컹!” 쇠창살을 딛고 있는 그 가난한 발바닥의 하소연이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