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만드는 맥로린, 한류 선물 파는 챈…국가가 나서기보다 ‘한류 절친’을 키우자

중앙일보

입력 2016.07.08 02:20

업데이트 2016.07.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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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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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한국어교육원이 진행하는 5주 과정의 단기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인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전통 탈춤을 배우고 있다. [사진 서강대]

| 외국인 유학생 355명에게 물어보니
한국 이미지 1위 ‘전통’ 2위 ‘모던’
“흥인지문 옆 DDP 공존 신기한 나라
새것 받아들이는데 두려움 없어 ”
‘유머러스·자유로운’은 최하위권

이젠 창의 한류다 <하> 지속 발전할 방안은

“전통을 중시해요” “유행에 민감해요” “외모에 엄청 신경 써요”.

지난 4일 오후 이화여대 언어교육원 글로벌라운지에 앉아 있는 이 학교 외국인 유학생 30여 명에게 종이와 펜을 하나씩 쥐어 줬다. 그리고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그 이유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학생들은 펜으로 종이를 꾹꾹 눌러 가며 열심히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갔다.

이탈리아인 유학생 자코모(24)는 종이에 ‘한국인은 혁명적이다’고 적어 넣었다. 그는 “한국에는 전통을 따르는 보수적인 문화와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열망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 1년 차에 접어든 말레이시아 유학생 킴(26)은 “한국 친구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이 없다. 신촌에 사는데 요새는 타투를 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보는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주요 대학 외국인 유학생 355명을 대상으로 ‘열정적인(Passionate)’ ‘아름다운(Beautiful)’ 등 28개의 형용사를 보여준 뒤 이 같은 표현들이 한국인의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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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유학생들이 제일 많이 꼽은 표현은 ‘전통을 따르는(Traditional)’이었다. 2위는 ‘현대적인(Modern)’, 3위는 ‘역사적인(Historic)’, 4위는 ‘선진적인(Developed)’ 등이 차지했다. 전통과 현대를 지그재그로 넘나드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외국인 유학생들은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교묘하게 어우러진 한국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난달 22일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의 단기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서울을 방문한 대만 학생 린다(25)는 “서울 성곽길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는데 한국의 전통 건축물인 흥인지문과 지은 지 얼마 안 된 DDP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이 너무 신기해 사진을 계속 찍었다”고 말했다. 린다를 비롯한 28개국 123명의 외국인 학생들은 5주 동안 오전에는 한국어 수업을 듣고 오후엔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을 하고 있다. 서강대 한국어교육원 관계자는 “10년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 과거엔 교포 2세 등 한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학생이 많았다면 요새는 한국 문화 자체에 매력을 느껴 연고가 없어도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학생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자 본지는 지난 3월 서울에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 100여 명을 초대해 글로벌 신문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한국 생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미얀마 출신 유학생 킨 레이퓨(28)는 “한국 친구들은 무조건 ‘빨리, 빨리’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레이퓨가 말을 이었다. “한국 친구들과 대학에서 과제를 같이 하는데 과제 하는 속도가 엄청 빨라요. 근데 결과물은 늘 완벽해요.” 동방신기를 보기 위해 처음 한국에 왔다는 베트남인 유학생 버티 란다(26)는 “한국 친구들의 첫 인상은 조금 차가웠는데 지내 볼수록 성실하고 정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유학생들이 한국의 장점만을 말하진 않는다.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 다니는 홍콩 유학생 미코(25)는 “한국 친구들이 늘 커피를 손에 들고 다니기에 처음엔 단순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피곤해서 ‘정신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홍콩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다 한국에 들어온 샤샤(28)는 “얼마 전 영어 강사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다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에이전트에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흰색 피부만 영어 교사를 할 수 있다. 검은색이 섞이면 힘들다’고 해 실망했었다”고 털어놓았다.

본지 조사 결과 ‘한국인을 표현하는 형용사’ 중 가장 득표율이 적었던 표현은 ‘치유하는(Healing)’ ‘유머러스한(Humorous)’ ‘자유로운(Free)’이었다.

| 한류를 뛰게 하라, 전문가 제언
이어령 “한류팬 자랄 환경 조성을”
정부, 퍼주기식 물량 공세보다
현지인이 직접 나서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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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선물함을 파는 영국인 다이애나 챈.

런던에 사는 중국계 영국 여성 다이애나 챈(23)은 지난 2월 기프트박스 스타트업 ‘인스파이어미코리아(inspiremekorea.com)’를 차렸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서 구독 신청을 하면 매달 한 차례 한국 관련 상품과 읽을거리가 든 기프트박스(선물함)가 도착한다. ‘스트레스 풀기’가 주제였던 지난달 박스엔 K뷰티의 대표 상품 격인 마스크팩과 둥굴레차, 수면양말 등이 담겼다. 가격은 월 13.99파운드(약 2만1000원) .

“5년 전 K팝을 접하고 한국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챈은 “한국은 짧은 기간에 고속 성장을 했으면서도 고유의 문화를 지켜온 역동적인 나라다. 그 역사와 문화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자비를 털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기프트박스의 현재 구독자 수는 100여 명. 챈은 이를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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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반해 양조법을 배워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는 호주 여성 줄리아 멜러(가운데)와 스코틀랜드 출신 대니얼 맥로린(오른쪽). [사진 김춘식 기자]

호주 여성 줄리아 멜러(33)와 스코틀랜드 출신 대니얼 맥로린(30)은 국내의 열성 한류 팬이다. 막걸리에 반해 5년 전부터 매달 술맛 좋은 서울의 주점을 찾아다니던 이들은 아예 양조법을 배워 3년 전부터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가르쳐 왔다. ‘막걸리 마마스 앤 파파스’라는 회사까지 차렸다. 영어 선생 등 이전 직업은 그만뒀다. 맥로린은 “한국인들은 막걸리를 농부가 마시는 술이라며 오히려 폄하하지만 편견 없는 내 눈에는 와인보다 좋은 술”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이들이 양조법을 교육한 외국인은 300명이 넘는다.

음식·패션·클래식 등 새로운 영역에서 한국 문화의 확산은 챈과 멜러 같은 열성 팬들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의 골수 지지층이 많아야 한류가 지속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국내 한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런 주장의 배경에는 문화 영역 특유의 ‘연결성’이 있다. 챈의 경우처럼 한 장르에서 출발한 문화적 관심은 인접 분야로 계속해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 일본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런던의 금융인 필립 고먼(54)도 그런 경우다. 그는 2000년께 김기덕·장선우의 영화로 한류를 처음 접했다. 한국의 역사·문학·미술·공연 등 에 대한 관심을 키워 지금은 방대한 규모의 한류 자료 영문 아카이브 ‘런던코리안링크스(londonkoreanlinks)’를 운영한다. “한국은 파면 팔수록 더 많은 콘텐트가 있는 나라”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역시 한류 팬인 영국의 프리랜서 평론가 폴 퀸(49)은 “한국에 대해 얘기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고 했다.

문제는 한류 열성 팬을 어떻게 키우느냐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자발적·자생적으로 형성돼 일정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섣불리 국가가 전면에 나섰다가는 일종의 문화 제국주의로 비쳐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 장관은 “국가는 한류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고 싶어 하는 핀란드 사람이 있다면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친절한 막걸리 양조법 영문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라는 거다.

반면 KOTRA 이창현 박사는 “문체부나 외교부가 한류 골수 지지 계층을 지속적·다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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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한국문화원은 현지 극장주들과 ‘미니멈 개런티’ 파트너십을 맺었다. 예전엔 문화원이 돈을 대 극장을 빌린 뒤 직접 표를 파는 식이었지만, 앞으로 문화원은 최소한의 비용을 지원해주는 대신 티켓 판매 수익은 극장주가 가져간다.

용호성 원장은 “우리 입장에선 예전처럼 큰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영국 측 파트너(극장주)로 하여금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콘텐트를 발굴하도록 유도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영국인들의 한국 영화 관람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퍼주기식 물량 공세보다 현지인이 직접 뛰게 만드는 지혜로운 지출이 한류 확산, 열성 팬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상지·김유빈 기자 hongsam@joongang.co.kr
신준봉 기자, 런던=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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