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량촌(현 중구 용두산 일대)에 모여든 수백 명의 시선이 높은 무대 위 세 사람에게 쏠려 있다. 그 중 한 명이 둥근 통에서 번호가 적힌 나무패를 꺼내 건너편 관리에게 건넨다. 이 관리는 숫자를 장부에 적고 모여든 사람에게 큰 소리로 번호를 외친다. 당첨된 이들이 내지르는 환호성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아쉬운 탄식이 교차한다.
현재 로또 복권 추첨 방식과 유사한 개화기 복권 추첨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1892년의 그림이다. 많은 백성이 추첨장소에 모여든 걸 보면 당시에도 복권 열풍이 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복권 한 장이 50전이었는데,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2만5000원 가량된다. 당시 복권 당첨금은 2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1892년 제작된 화첩에 기록돼 있어
부산 개항 140주년 기념 특별전 마련
이 그림은 1892년 제작된 화첩 ‘조선견문도해(朝鮮見聞圖解)’에 있다. 개항기 작가 미상의 일본인 화가가 부산항 일대에서 조선 풍속을 그려 만든 것이다. 화첩에는 복권 추첨 외에 기생·인분처리 모습 등 그림 41점이 있다. 일본어 설명도 붙어있다.
이 화첩의 원본과 화첩 속 그림 사본이 부산 중구 근대역사관에 전시돼 있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으로 개항한 부산항의 개항 1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화첩의 그림 외에 1880년대 오륙도·절영도 등 부산항 일대와 대마도는 물론 조선후기 200여 년간 있었던 초량왜관의 내부구조를 상세하게 묘사한 ‘포산항견취도(浦山港見取圖·1881년)’, 1900년대 초 동래와 부산을 그린 ‘동래부산도병(東萊釜山圖屛)’도 있다. 미국인 선교사가 개발해 부산에서 유행한 드링크제 ‘만병수’ 등 당시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실물 자료 200여 점도 선보인다.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은 “부산항 개항으로 서양과의 문물교류가 활발해졌다”며 “전시회에서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다음달 21일까지 열린다. 무료.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