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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죽은 금강송 군락지, 무궁화호 탈선 사고 불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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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금강송이 말라죽어 철로를 낀 산이 허물어지면서 낙석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서다. 폭우 뒤에 가려진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이다. 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서 발생한 영동선 무궁화호 탈선 사고 이야기다. 낙석사고는 7일 오후 다시 일어났다. 이번엔 석포역에서 동점 방향 영동선에서 지름 50㎝ 크기의 돌이 화물열차에 떨어졌다. 다행히 열차가 5분간 정차했을뿐 다른 피해는 없었다.

봉화 굴현터널 주변 낙석 현장
쓸려간 구역 위 금강송 듬성듬성
폭우 견딜 힘 없어 사고 예고된 셈
맞은편 석포제련소 대기오염 물질
집단 고사의 원인 가능성 의견도
제련소 측 “조사 중…단정 말아야”

지난 5일 봉화군 석포면 굴현터널 사고 현장에는 석포역 시설관리반 직원이 배치돼 있었다. 코레일이 긴급복구에 나서 열차는 6시간 만에 운행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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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굴현터널 앞으로 바위가 떨어져 무궁화호 탈선 사고가 일어난 현장. [프리랜서 공정식]

코레일 등에 따르면 사고는 동대구역으로 가던 1671호 무궁화호 열차가 석포역을 지나 굴현터널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열차가 터널에 진입하기 직전 기관사는 철로에 떨어진 낙석을 발견하고 급제동을 했다. 낙석은 기관차 앞 부분과 충돌했다. 전체 6량인 열차는 충격으로 맨 앞 기관차의 바퀴 4개가 탈선했다. 객차 4량에는 승객 42명이 타고 있었지만 피해는 없었다. 사고를 일으킨 낙석은 철로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길이 1m가 넘고 무게는 수백㎏이 넘을 바위다. 낙석이 객차를 덮쳤다면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바위가 떨어진 지점은 터널 입구에서 10m쯤이다. 철로 옆 옹벽 위로 철제 낙석 방호 펜스가 가로로 설치돼 있었다. 바위는 철제 7가닥 중 5가닥을 치고 나갔다. 방호 펜스 한쪽에는 길이 1m가 넘는 바위 하나가 아직도 걸려 있었다. 이전에 굴러내린 돌들도 걸려 있다. 떨어진 방호 펜스는 복구되지 않아 2차 낙석사고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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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제련소 주변 군락을 이룬 금강송은 말라죽거나 죽어가고 있다. 금강송이 고사하면서 산에서는 토사가 흘러내린다. [프리랜서 공정식]

방호 펜스가 쳐진 산으로 올라가 봤다. 토석이 쓸려 내려간 구역은 푸른색 커버로 덮여 있었다. 농구장 하나 정도의 면적이다. 그 위로 소나무가 보였다. 일대는 금강송 군락지다. 그런데 인근 지역의 금강송과는 상태가 다르다. 이미 말라 죽은 것이 있고 죽어가는 금강송도 많았다. 하나같이 왜소하고 또 듬성듬성 서 있다. 낙석사고가 난 산 꼭대기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보였다. 튀어나온 돌도 있다. 이런 상태에 200㎜ 폭우가 쏟아졌으니 낙석사고는 예고된 셈이었다.

굴현터널 주변 금강송이 고사한 까닭은 무엇일까. 터널 맞은편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다. 직선거리로 50m 남짓이다. 여기선 광석을 제련해 연간 38만t의 아연을 비롯해 카드뮴과 황산을 생산한다. 터널 건너편 1공장은 가동한 지 40년이 넘었다. 60대 주민은 “새벽이나 밤이면 제련소 주변이 매캐한 냄새로 뒤덮여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제련소가 뿜어내는 수증기와 연기는 주변 산으로 쉼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금강송 등 나무들이 죽어가는 곳은 석포제련소를 중심으로 낙동강 상류 5㎞ 구간에 걸쳐 있다.

최근 현장을 확인한 이창석(한국생태학회장) 서울여대 교수는 “이산화황 같은 대기오염 물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련소 측은 “과거 발생한 산불이나 병해충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명한다. 석포제련소 문제는 201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봉화군은 지난해 10월 1공장과 2공장 부지에 대해 정화 명령을 내렸다.

시급한 것은 굴현터널 주변 철로 안전이다. 성수기를 맞은 백두대간 협곡열차도 이곳을 지나간다. 전미선(65) 석포제련소 반대대책위원장은 “낙동강 상류에 거대한 공장이 들어선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금강송이 살아나야 안전도 확보된다”고 말했다.

석포제련소 측은 “ 고사의 원인이 제련소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확한 원인은 현재도 조사 중”이라며 “원인조사와 별도로 산림녹화를 추진해 왔으나 사업추진이 어려운 지역이라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추가로 돌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분천~철암 구간엔 열차 대신 버스를 운행 중이다. 열차 승객을 분천역에서 내리게 한 뒤 철암까지 버스로 수송한다. 열차는 빈 상태로 사고지점을 통과해 철암에서 승객을 다시 태우는 식으로 운행하고 있다.

송의호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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