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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부당하게 면세유 챙기는 일부 낚싯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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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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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사회부문 기자

지난 2일 오후 충남 보령시의 한 항구. 낚시를 마치고 입항한 배가 부둣가에서 경유를 가득 채웠다. 계기판의 주유량은 400L를 넘어섰지만 금액은 불과 20만원이었다. 면세라서 시중 가격의 약 30% 정도였다. 이 항구에 선적을 둔 150여 척 중에서 100여 척은 낚시가 주업이라고 한다.

일부 낚싯배들이 이처럼 면세유를 싸게 사용할 수 있는 건 현행 법(낚시관리 및 육성법) 때문이다. 정부는 1995년 어민 소득을 높여준다며 어선을 낚싯배로 운영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낚시는 ‘조업’이 아니라 ‘영업’이다. 연간 60일 이상 조업실적이 있거나 연간 120만원 이상의 수산물 거래실적을 수협에 제출하면 면세유를 공급받도록 혜택을 줬다.

그런데 이런 규정마저 채우지 못한 일부 낚시어선들은 허위로 서류를 꾸며 면세유를 불법적으로 공급받았다. 실제로 지난 2월 전북 김제에서는 어민들로부터 면세유를 사들여 시중에 불법유통한 업자들이 붙잡혔다. 수집·운반·정제·유통까지 조직적으로 움직인 일당이 불법 거래한 면세유는 13만6000L나 됐다.

해양경비안전본부(해경)는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어업용 면세유를 부정 수급하거나 불법 유통한 낚시어선 선주 등 28명을 적발했다. 부정수급 건수는 955건이었다. 그만큼 세금탈루가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정부가 수협을 통해 공급한 면세유는 경유 9억1300만L, 휘발유 1억1000만L였다. 어촌 뿐아니라 일부 농촌에서도 면세유가 불법으로 유통된다고 한다. 농민들이 사용하고 남은 면세유가 주유소로 빠져나가 시중에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그동안 수차례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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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해양수산부 앞에서 낚시 관리법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낚시어선연합회 회원들. [프리랜서 김성태]

낚시어선을 운영하는 선주들은 "현행 규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법 규정의 완화 또는 폐지를 주장한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수산물 위판실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7일에는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해양수산부 앞에서 시위도 했다. 이날 전국낚시어선연합회 김청조 회장은 “해수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청회를 열어 낚시산업 전반을 위축시키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해경 내부의 실적경쟁으로 낚시어선 모두를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다수 선주들은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합법적으로 면세유를 받으려면 현행법을 지키는 게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자치단체에 등록된 낚시용 어선은 4300여 척으로 전체 어선 6만여 척의 7%를 차지한다.

면세유는 어렵게 생업에 종사하는 농·어민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정부는 면세유가 적법하게 공급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농·어민들도 법 테두리 안에서 면세유를 공급받아야 한다. 세금 누수를 막으려면 면세유를 눈먼 돈으로 취급하는 일부 농어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더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신진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