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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국가에는 없는 존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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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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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

삼성전자에서 내년 3월부터 대리·과장·부장 직함이 사라진다. 대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홍길동님’ 식이다.

왜 이렇게 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바다.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는 뜻이다. 호칭은 곧 지위고, 지위는 곧 위계며, 위계는 관료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창조적 발상과 거침없는 토론이 설 자리는 없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보지능기술연구소처럼 백년지계와 관련된 문제조차 그렇다. ‘BH(청와대) 지시’라는 딱지가 붙으면 토론은 사라지고 속도만 남는다. 기업도 다를 바 없다. 도전적 아이디어는 안정적 지시 앞에 무력하다. 삼성전자의 새 지침은 관료화 극복의 몸부림이다. 취지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 방침의 방향성은 백번 옳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말이 안 된다. 새 방침은 임원은 빼고 직원에게만 적용된다. 내부에선 “수평적 소통은 부장 이하만 적용되냐”는 자조가 나온다.

수직형 구조의 근원에는 존댓말이 있다. 존댓말은 미풍양속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나 존댓말로 상징되는 상명하복은 20세기의 산물일 뿐이다. 근대화와 압축 성장은 속도전이 필요했고, 군대식 지휘체계가 성공의 요체였다. 상·하를 분명하게 가르는 존댓말은 강화됐다.

그러나 존댓말은 1등 국가의 DNA가 아니다. 미국·중국·유럽 등 역사적으로 1등을 해 본 지역에선 존댓말이 없거나, 있어도 약하다. 그들에게 존댓말이 없다고 배려나 존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토론의 품격은 그들이 더 높다. 반면 한국은 수천 년간 1등 국가를 쫓으며 살아왔다. 중국·일본·미국은 교과서이자 미래였다. 그러니까 존댓말은 퍼스트 무버를 열심히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어의 DNA다.

외부에서 지적이 나온 건 오래됐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맬컴 글래드웰은 1997년 괌에서 일어난 대한항공 추락 사고의 근원을 말에서 찾는다. 당시 조종실 녹음 내용에 따르면 부기장은 이상 징후를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직설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기장에게 비상 사태를 알리지 못했다. 권위에 눌린 언어 습관 때문이다. 참치잡이 어선 광현 803호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인의 ‘요요’라는 말을 반말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존대와 반말이라는 언어적 위계가 엷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교과서가 없어진 시대에 산다.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한국이 이미 겪은 일을 뒤늦게 선진국이 겪는가 하면, 평균 점수는 높은데 개별 점수에선 말도 안 되는 역전이 일어나는 분야도 많다. 상·하, 선·후 구도를 기본으로 살아온 한국이 유독 숨이 찬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댓말 DNA를 바꿀 수 없으면, 퍼스트 무버의 DNA도 가질 수 없다.

14년 전에 이미 실험과 증명이 있었다. 2002년 히딩크는 축구장 안에서 존댓말을 없앴다. 한국 축구는 그때만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