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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화가 석창우 “내 좋은 기운 다 주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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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16 리우 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내 4회 연속 세계 10위 이내 입상하는 ‘10-10’을 목표로 내건 대한민국 선수단은 5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D-30일 행사를 열었다. 막바지 훈련에 여념이 없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의수(義手) 화가’ 석창우(61) 화백이 붓을 들었다. 석 화백은 ‘리우 2016’ 이란 제호와 함께 태권도·수영 등 올림픽 28개 종목의 픽토그램을 직접 그린 뒤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여자 태권도 선수 김소희(22)는 숱한 좌절을 딛고 올림픽 무대에 도전한다.

올림픽은 도전과 극복의 드라마다. ‘인간 번개’ 우사인 볼트도, 남의 유니폼 빌려 입고 출전하는 무명 선수도 모두 자신만의 아픔과 좌절·극복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2016 리우 올림픽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중앙일보는 석창우(61) 화백을 모셨다. 석 화백은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수묵 크로키’라는 영역을 개척한 미술계의 금메달리스트다. 석 화백은 중앙일보 올림픽 지면과 기사를 안내할 픽토그램 을 선뜻 그려줬다.

| 고압 전류 감전 돼 두 팔 잃었지만
포기 않고 ‘수묵 크로키’ 영역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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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사고로 양 팔을 잃은 석창우 화백은 피나는 노력 끝에 화가가 됐다. 서울 한남동 작업실에서 올림픽 28개 종목의 픽토그램을 그리는 석 화백. [사진 오종택 기자]

지난 1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석 화백의 자택 겸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갈고리가 달린 두 팔을 능숙하게 움직여 세로 45cm의 두루마리 화선지를 작업대에 폈다.

갈고리에 붓을 끼운 그는 먹을 듬뿍 찍어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눈 깜빡할 새 태권도 선수의 호쾌한 발차기가 지면에 펼쳐졌다. 여자 골프선수의 아이언 샷, 상대 빈틈을 노리는 펜싱 선수의 칼끝 움직임도 피어났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손끝과 팔을 이용해 섬세한 터치를 할 수 없기에 그는 어떤 장면이든 온 몸을 써서 표현해 내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한 힘과 기운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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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끝낸 석 화백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거실에서 마주앉았다. 스포츠에 ‘꽂힌’ 이유를 물었다.

“예전에는 누드 크로키를 주로 그렸는데 포즈에 한계가 있었어요.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에서 당시 피겨 여왕 미셸 콴의 연기를 봤는데 아름다움과 힘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선수의 연기 장면을 그리면서 스포츠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죠.”

이후 그는 피겨·사이클·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화폭에 담아냈고, 2010년에는 ‘열정의 에너지’라는 주제로 개인전도 열었다. 경기 장면을 수묵 크로키로 그리다 보면 대상과 자신이 일체가 되는 체험도 한다고 한다.

“스포츠 선수는 전성기 때 장면을 그려야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그 선수의 느낌을 캐치하고 그 사람과 나의 내면을 일체화시키면 그림을 그리면서도 내가 연기를 한다, 경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28개 전 종목 픽토그램 그려
한국 선수들 위해 특별한 응원
본지 리우 올림픽 지면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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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몸 상태나 심리 상태까지 교감을 한다는 얘기다. 석 화백은 리우 올림픽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볼 선수로 리듬체조 손연재(22)를 꼽았다. ‘크로키 모델’로서 김연아(26)와 손연재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그의 답은 냉철했다. “김연아가 트리플 러프 점프하는 장면을 연속 동작으로 그린 게 있어요. 김연아의 연기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면서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인위적인 모습이 없고 무위(無爲)와 자연미가 있죠. 손연재는 아직까지는 덜 익었고, 조금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자연스럽고 좋은 포즈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 “금메달보다 즐겁게 경기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마린보이’ 박태환(27)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면 경기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고 석 화백은 말했다. 30세 때 사고를 당한 석 화백은 12번에 걸친 수술과 입원 치료로 갓난아이였던 아들에게 아무 것도 못해준 게 마음 아팠다고 했다. 아들이 네 살 때 “아빠, 그림 좀 그려 줘”라고 말했고, 마당의 참새를 그려준 게 ‘화백 석창우’의 출발점이 됐다. 그 아들은 디자인을 전공해 미국에서 BMW 소속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리우에 가는 선수들을 위한 격려의 한 마디를 부탁했다. “나한테 좋은 기가 많다고 합니다. 내 기를 다 뽑아드릴테니까 최선을 다해 주세요. 전부 금메달 따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즐겁게 경기하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게 더 좋습니다. 하하.”

글=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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