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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단무지의 눈물, 공화국의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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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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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 김모(33) 검사가 남긴 카톡은 읽을수록 마음이 애잔하다. 그의 카톡이 슬픈 건 그가 속한 현실이 슬펐기 때문이다.

부장검사는 술자리가 끝났는데 “여의도까지 15분 안에 오라”고 불렀고, 술에 취해 “잘하라”고 때렸고, 결혼식장에서 술 마실 방을 구해 오라고 했다. 김 검사는 격무와 스트레스로 귀에서 피가 났고, 어금니가 빠졌고, 징징거리게 되는 자신이 싫어졌다. 삶은 그렇게 조용히 허물어졌다.

김 검사는 지난해 임용되면서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로 시작되는 검사 선서문을 읽었을 것이다. “부장 술시중을 들라”거나 “방을 구해 오라”는 요구는 선서문에 없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친구에게 쓴 “욕 처들어 먹었네 ㅎㅎㅎㅎ”와 “ㅋㅋㅋㅋㅋ 자살하고 싶어 ㅋㅋ” 사이엔 ‘무지(Muzi)’ 이모티콘이 있다. 토끼 옷 입은 단무지가 입을 오므린 채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다. 아무도 그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주목할 대목은 부장검사가 올해 초 남부지검으로 발령을 받기 전 법무부에서 법조 인력 정책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실무작업을 했던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안’은 지난해 12월 발표 후 거센 반발 속에 좌초되고 말았다. 검찰 안팎에선 “서울중앙지검 입성을 기대했는데 남부지검에 배치되자 괴로워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자신이 책임을 떠안게 됐다는 분노와 좌절이 과음, 폭언으로 이어졌다면 조직의 스트레스가 아래로 전가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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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말라. 검사동일체 원칙은 옳지 않은 결정까지 따르라는 뜻이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면서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기는 검사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위엔 말 한마디 못하면서 후배들 닦달하는 선배들이 앞줄에 서 있다.

지난주 불거진 보도 통제 논란에도 음습한 동일체 원칙이 도사리고 있다. “KBS가 저렇게 다 보도하면 전부 다 해경 저 XX들이 잘못해 가지고 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현 새누리당 의원)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과 통화하며 거침없이 내지르는 고성을 들으면 자신과 보도국장, 해경이 ‘정언(정부·언론) 동일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느껴진다.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라며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기사를 빼라는 것이 홍보수석이 할 일인가. 대통령이, 홍보수석이 ‘해경 부실 대응’ 보도를 봤다면 응당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해경 아닌가. 더욱 놀라운 건 문제의 통화가 “홍보수석의 통상적 업무”라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이다. 만약 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판결 내용을 바꿔 달라” 고 주문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면 세상은 뒤집어졌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도 재판의 독립만큼 소중한 가치 아닌가.

김 검사 자살과 보도 통제 논란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대리인일 뿐인 자들이 오너(주인) 대접을 받으려 든 것이다. 검사가 충성할 대상은 부장검사나 검찰총장이 아니다. 언론에 호통칠 수 있는 사람은 홍보수석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다.

검사도, 기자도 자존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만일 검사와 기자를 내부자들 사회의 졸(卒)이나 몸종쯤으로 여긴다면 검사 선서문, 기자윤리강령 같은 것은 한낱 휴지 쪼가리다. 검사와 기자가 윗사람 몇몇을 위해 일할 때 우린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부를 수 없다. 김 검사 어머니의 말처럼 “조폭의 세계”(CBS 김현정 뉴스쇼)일 뿐이다. 지금 곳곳에서 공화국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오고 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웹툰·드라마 ‘송곳’의 주장이다. 살아 있는 검사와 기자들은 화내야 하고, 맞서서 싸워야 한다. 검사 자살 조사는 그릇된 상명하복 시스템의 해체로 이어져야 하고, 보도 통제의 추악한 전모는 수사와 청문회로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단무지의 눈물을 닦고 공화국의 비명을 멈추는 길이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