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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폰카 ‘찰칵 소리’까지 강제하는 나라…고객도 제조사도 난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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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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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경제부문 기자

‘찰칵’하는 휴대폰 카메라 촬영음을 두고 온라인 상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몰카 우려…한국·일본만 있는 제도
정부 권고사항이지만 사실상 규제
인터넷 게시물 삭제 ‘잊힐 권리’
정부 가이드라인 기업 운신 폭 좁혀

한 네티즌은 “미국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찰칵 소리 때문에 ‘민폐 여행객’이 됐다”고 불쾌해했다. 또 “이미 무음 카메라 앱이 퍼져 실효성이 없는데도 왜 촬영음을 강제로 내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도 있었다.

반면 “몰래 카메라 범죄를 막기 위해 계속 촬영음 발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반박 댓글도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 촬영음을 의무화하는 제도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휴대전화를 사용한 몰카 범죄가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정책 대책반이 꾸려진 것이 시작이다.

이에 따라 2004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할 때 60~68dB(데시벨)의 촬영음이 강제로 나야 한다’는 구체적인 표준안을 내놨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이 표준이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임에도 이동통신사가 스마트폰 제조사에 이를 요구하는 바람에 사실상 규제나 다름없게 됐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권고사항이긴 하지만 통신사 입장에선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규정으로 생각해 제조회사에 찰칵음의 내장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말기 제조회사 관계자는 “여름이 되면 촬영음 때문에 치한으로 오해 받았다는 민원이 들어와 곤란을 겪는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는 내부 의견이 있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에는 카메라 촬영음 소거 기능이 있지만 한국에서 유통되는 단말기에는 이 기능이 탑재되지 않는다. 제조사는 국내용 제품을 수출용과 다르게 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촬영음이 싫어 한국 제품을 해외에서 역직구하는 소비자도 있다.

권고사항뿐 아니라 자율준수 가이드라인도 기업에겐 사실상 의무사항으로 여겨진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4월 잊힐 권리라 불리는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을 보장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6월 중 도입하겠다고 알렸다. 이 권리는 본인이 인터넷에 게시한 게시물에 대해 타인의 접근 배제(삭제·비공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6월 20일 방통위는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대상에 ‘네이버 지식인(iN)’ 게시물과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평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지식인은 사용자들이 다양한 주제의 질문과 답변을 나누는 이용자 지식공유서비스다.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게시물이 삭제되면 이용자들의 참여로 지식이 축적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다중지성 플랫폼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카카오·인터파크·넥슨 등 주요 인터넷 사업자들은 가이드라인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불만은 많다.

한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시행 지침이 내려왔다”며 “방통위가 이 가이드라인이 행정 지도적 성격을 띤다고 밝힌 이상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의 권고사항·가이드라인은 기업에 부담을 주고 제품·서비스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그림자 규제’가 될 수 있다. 발표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적인 트렌드도 살펴야 한다.

정보통신 업계 관계자는 “휴대폰 촬영음 의무화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 몰카 범죄자가 많다’고 광고하는 꼴”이라며 “기술 규제보다 시민의식 성숙을 높이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경 경제부문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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