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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방에 누우면 남산 야경이 한 눈에…해방촌 옥탑방 월세는 13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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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 도심에서 방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곳. 자신만의 마당을 즐길 수 있는 곳. 바로 옥탑방 얘기다.

싱글족에게 인기 끄는 옥탑방
재개발로 서울 도심 3만 곳만 남아
임대료 싸고 유휴지 활용 매력적

취약한 주거환경의 대명사로 꼽히던 옥탑방이 젊은 층의 대안 주거공간으로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폐쇄적인 아파트나 비좁은 오피스텔과 달리 마당을 갖춘 개방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면서다. TV 연예 프로에도 옥탑방 앞마당에서 여유롭게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다. 여영호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시야가 트여 조망이 좋고 저렴한 임대료로 유휴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옥탑방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옥탑방은 2만9000여 곳(2010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도심 재개발 여파로 옥탑방 수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찾는 수요는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남산의 전경과 서울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해방촌, 경리단길 일대는 옥탑방 품귀현상이 나타난 지 오래다. 경리단길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물은 없는데 찾는 사람은 많다 보니 두 달 넘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며 “월세 40만~5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지만 좋은 곳은 130만원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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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씨가 4년째 살고 있는 월세 30만원짜리 옥탑방. 김씨는 “문밖에 옥상이란 나만의 야외 공간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옥탑방 셀프 인테리어 인기=서울 염리동의 4층짜리 다세대 주택.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쯤 꼭대기층의 문이 보였다. 집 안에 들어서자 16.5㎡(5평) 남짓한 아기자기한 공간이 나타났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문밖 마당엔 이불과 옷가지가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이곳에 사는 김윤영(25)씨는 고시원과 원룸을 거쳐 3년 전부터 옥탑방 생활을 하고 있다. “예전엔 창문조차 열 수 없는 답답한 곳에 살았어요. 더 늦기 전에 옥탑방 로망을 실현하려고 6개월 넘게 발품을 팔아 어렵게 월세 30만원에 이 집을 구했어요.” 그는 세입자 신분이지만 100만원을 들여 직접 방을 꾸몄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곳곳에 수납공간을 만들고 가구 배치도 14번이나 바꿨어요. 곰팡이가 가득했던 화장실엔 직접 타일 시공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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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로 화제를 모은 김씨의 옥탑방 실내.

그의 옥탑방 셀프 인테리어법은 인터넷 블로그에 공개되자마자 하루 35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문의가 많아지자 최근엔 『옥탑방 인테리어』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김씨는 “주말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도 하고 가끔 마당에서 영화도 보면서 라이프 스타일(생활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전재열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리모델링한 세련된 옥탑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옥탑방에 대한 인식이 낭만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붕 색 바꾸니 실내 5도 낮아져=물론 옥탑방 생활이 마냥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옥탑방 대부분이 비주거용 공간을 주거시설로 개조한 건축물이다 보니 더위나 추위에 취약하다. 특히 한여름엔 실내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을 정도다. 혹독한 여름을 한번 경험하고는 옥탑방을 떠나는 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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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루프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옥탑방 지붕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십년후연구소(소장 조윤석)는 이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함께 ‘쿨루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옥탑방 등 건물 지붕과 옥상에 흰색 쿨루프용 페인트를 무료로 칠해 준다. 조윤석 소장은 “녹색 방수페인트를 칠한 지붕은 햇빛과 열을 대부분 흡수하지만 쿨루프용 페인트를 칠하면 햇빛과 열의 98%를 반사시킨다”며 “지금까지 50여 곳의 옥탑방에서 지붕을 흰색으로 바꿨는데 실내온도가 최대 5도까지 떨어지는 효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면적의 25% 이상이 옥상”이라며 “이들 옥상이 녹색에서 흰색으로 바뀌면 옥탑방의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옥탑방 거주자 박중수(27)씨는 “지붕 색을 바꿨더니 요즘 같은 무더위에도 에어컨을 안 틀어도 될 정도로 시원해졌다”고 말했다.

옥탑방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상당수 옥탑방은 샌드위치 패널 등 값싼 자재를 이어붙여 지은 탓에 화재 위험에 쉽게 노출돼 있다. 취약한 방범도 문제다. 옥탑방 건축 가이드라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3.2㎡(4평) 옥탑방에서 생활하는 임성빈 빌트바이 소장은 “옥탑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부엌과 화장실 등을 불법 증·개축한 경우가 많다”며 “세입자들은 입주 전에 안전 여부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옥상 테라스에 바·카페·식당…‘루프톱 상권’도 생겨

옥상이 옥탑방 같은 주거 공간뿐 아니라 놀이 공간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최근 이태원·가로수길·삼청동 등 서울의 주요 상권 지역을 중심으로 루프톱(rooftop) 식당·카페·바(bar)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붕을 뜻하는 영어 단어 ‘roof’와 꼭대기란 뜻의 ‘top’이 합쳐져 생긴 루프톱은 건물 맨 위층 야외에서 식사와 음료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탁 트인 전망 너머로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는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다.

서울에 루프톱 상권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도심에서 밀려난 가게들이 비교적 임대료가 싸고 한산한 지역에 옥상 테라스를 꾸몄다. 주로 해방촌이나 경리단길 등 산과 도심 빌딩을 함께 볼 수 있는 구릉지역이 최적지로 꼽혔다.

이후 루프톱이 대중적인 놀이·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자 도심의 주요 호텔들도 옥상 테라스 공간 만들기에 나섰다.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의 ‘르 스타일’이나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의 ‘클라우드’ 등이 대표적이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물 밀도가 높은 도심에서 녹지나 여유로운 공간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루프톱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권필·김선미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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