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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문지영 부부의 도예작업실 자연으로 빚은 그릇 그리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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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전원속의 내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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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문지영 부부의 도예작업실

자연으로 빚은 그릇 그리고 집

아직 매서운 칼바람이 남아있는 3월의 오후. 설우요(雪雨窯) 아이들은 두터운 외투 없이도 마음껏 공방의 앞마당을 뛰논다. 도예 작업을 위해 택한 전원행이었지만, 감기 한 번 앓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부부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고 웃음 짓는다.

도자기를 만드는데 불은 필수다. 그러나 도심에서는 연기를 피우는 장작 가마를 둘 수도 없고, 가스 가마 역시 위험 요소가 된다. 부부도예가 김종훈, 문지영 씨는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나이에 전원행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리적인 작업 환경 뿐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과 가족 간의 정서를 쌓는데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흙으로 그릇과 찻잔을 빚어내는 일상. 이 와중에 남편 은 흙으로 손수 2층 작업실을 짓고, 아내는 자연 속에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살 며 작 업 하 며 함 께 하 는 공 간, 흙 집

이들이 경기도 여주로 내려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다. 부부는 가마터와 작업실, 주거 공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 경기도 여주에서 한 한옥집을 만났다. 높은 나무 대문에 적당한 마당을 가지고 있고, 실내는 여느 주택과 다르게 넓은 거실을 갖춰 갤러리 겸 오픈스튜디오로 활용하기 적당했다.

흙으로 그릇을 빚는 부부에게 흙으로 지어진 집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마음이 동한 부부는 이 곳을 매입해 서둘러 단장에 나섰다. 지어 놓고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알아 기술적으로 손 볼 부분은 없었지만, 색감이 어긋난 인테리어나 웃풍에 대비한 장치들을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70㎡ 면적으로 복층이 있는 주거 공간은 부부의 침실, 아이들 방으로 재구성하고 100㎡에 달하는 거실은 작품을 전시하고 손님과 차를 나누는 다목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거실은 성인이 양팔로 안아도 손이 닿지 않는, 육중한 나무 기둥이 시선을 압도한다. 수년간 잘 말린 춘양목을 재료로 숙련된 한옥 기술자가 지은 집이다. 벽면은 마당에서 직접 만든 흙벽돌로 이중 쌓기를 하고 내외부는 또 한번 흙으로 치대 두께가 상당하다. 문지영 씨는 “바닥과 천장에 게르마늄과 숯을 섞어 마감했다고 들었다”며 “아이들을 키우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라고 자부한다. 자칫 큰 나무와 흙색으로 어두울 수 있는 흙집의 실내가 게르마늄인 규소 입자 덕분에 밝은 피부색을 띠고 있다.

남 편 의 찻 사 발 과 아 내 의 백 자 식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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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차 마시는 좌탁에 둘러앉기를 좋아한다. 아직 어린 현호와 하은이도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양손으로 찻잔을 잡곤 한다.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 ‘천천히 느리게’ 살다 보니 차 마시는 시간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커피, 보이차, 말차 등 종류는 불문이지만, 부부가 직접 만든 찻사발에 담기는 순간 그 의미는 특별해진다.

김종훈 씨는 현재 주목받는 젊은 도예가로 흙 본래의 자연성을 살린 개성 있는 다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도자기로 빚은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찻사발에 차를 우리는 습관. 그가 자연에 와서 발견한 것은 느림의 미학과 온유였다. 그는 작업 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흙으로 사발을 빚기도 하고, 불과 흙의 우연만으로 굽의 형태를 잡아간다. 자연의 오묘함을 그릇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서다. 작업 틈틈이 아이들 손을 잡고 동네 구경을 나설 때도 영감을 얻는 좋은 기회다. 네 번이 아닌 수십 번의 단계로 계절이 변화하는 순간들을 가슴에 담다보면 사물을 보는 눈이 더 풍성해진다.

서울태생의 아내 문지영 씨도 전원 생활을 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시골에 내려오기 전에는 꽃만 보면 화병에 심어 감상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밖에 나가면 꽃이 천지니 굳이 화병에 옮길 생각이 안 들어요. 자연은 사람의 인식을 바꿀 수 있으니 얼마나 위대한 힘이에요.”

처음에는 아이들 교육이나 문화 환경 때문에 적지 않은 걱정을 했던 문지영 씨도 지금은 시골 생활이 스스럼없다. 작품 활동 역시 더욱 왕성해졌다. 다관에 집중하는 남편과 달리 그녀는 주로 백자 식기류를 만들고 있다. 눈꽃 같은 흰색이지만 차갑지 않은 그녀의 자기는 국내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주제로 오픈한 레스토랑 ‘품’에서도 그녀의 그릇으로 상차림을 하고 있을 정도다.
손 수 흙 으 로 지 은 2 층 작 업 실
부부는 얼마 전 작업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본채를 지었던 한옥장인과 김종훈 씨, 그리고 후배 1명이 합심해 지은 2층 흙집이다. “원래는 샌드위치 패널로 저렴하게 지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본채를 지으셨던 분이 집 전체의 풍채를 망친다고 극구 말리시다가 결국 함께 짓기로 했죠. 비전문가 2명이 붙어 달랑 셋이 작업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남들은 집 짓고 나면 그 매력에 빠진다뭐다 하지만, 전 죽다 살아난 것 같아요.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하죠(하하).”

그는 집 지은 소감을 말하며 손사래를 먼저 쳤다. 건축에는 생초보였던 그가 무거운 나무 기둥을 옮기고, 마당에서 직접 흙벽돌을 날랐을 수고는 짐작만 해도 안쓰러울 정도다. 한옥의 짜맞춤 방식을 그대로 따른 집은 전통을 찾아 찻사발을 빚고 있는 그의 작업과도 닮아 있다. 기둥과 보를 사괘맞춤으로 세우고, 계단 역시 통나무 통판으로 일일이 재단해 만들었다. 공간 곳곳에 옴팡지게 새겨 있는 그의 땀방울이 다난했던 반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경제적인 건축을 위한 숨은 비결도 발견할 수 있다. 골조에 쓰인 나무값만 1천5백만원이 들었고, 나머지는 직접 일한 인건비와 중고 자재비 등이다. 특히 구조를 제외한 천장 판재나 창호는 재활용품을 썼는데, 버스 창문이었던 유리로 창호를 짜 넣은 아이디어가 건축비절감의 일등공신이다. 이야기를 듣고 2층 가로창을 바라보니, 차창 밖으로 풀과 새들이 스치는 듯 해 웃음이 난다.

도 자 기 문 화 의 발 전 을 위 한 제 고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건물이지만, 1층 공간에는 제법 큰 작업 도구들과 굽기 전 그릇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흙집 안의 흙그릇들. 땅의 내음 그윽한 이곳에 이질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릇들은 이곳에서 때를 기다리다 마당에 있는 가마터로 옮겨진다. 250개의 사발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흙가마 역시 김종훈 씨가 직접 만들었다. 밤을 새워 불 앞을 지키고 나면 도자기들은 한꺼번에 새생명을 입고 태어난다. 모양이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만든 손이 같기에 동일한 정서들을 품고 있다.

아내 문지영 씨는 처음 나온 그대로의 그릇보다 세월의 때가 묻은 그릇에 더욱 찬사를 보낸다.

“6년 전 일본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의 그릇을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재주문이 없어 의아했어요. 식기들은 사용상 부주의로 깨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기회가 되어 다시 그곳을 가보고 의문이 풀렸어요. 설거지를 하는 사람도, 식기를 직접 쓰는 손님들도 도자기를 대하는 자세가 우리와 많이 다르더군요. 실생활에서 사용하되 예의를 갖추고 그릇을 아끼는 모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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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그릇이지만 그릇에 그치지 않고, 삶과 문화를 담는 표본이라고 한다. 남편 김씨 역시 일본의 도자 문화가 우리 보다 20년은 앞선다며 안타까운 내색을 비친다.


“제가 만든 도자기인데도 못 알아본 경우가 있었어요. 얼마나 자주 썼는지 골동품이 되어 있더군요. 무엇을 주로 담았느냐에 따라 도자기에 새로운 색이 번져 나온 것이죠. 이런 것이 진짜 예술을 곁에서 즐기는 방법이에요.”


김씨는 일본의 도자 방식을 배우고 실험하는 일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기기 위해 애쓰는 그의 속뜻을 모르고선 하는 말이다. 국내의 도자 문화가‘퓨전’이란 이름으로 전통을 유린하면서 젊고 뜻있는 도예 작가들이 설 곳이 없어지는 현실을 그는 진정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자 연 의 품 속 에 서 누 리 는 가 족 사 랑

열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 아이 하은이가 나무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빠 품이 마냥 좋은 맑은아이는 양 볼에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있었다. 땅에서 뛰노는 아이의 건강함이다.


“서울에 있을 때는 아토피도 있고 늘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이곳에 와서 몰라보게 튼튼해졌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해맑게 자라주니, 다시 도시로 가라면 못 갈 것 같아요.”


부부는 가족의 전원행을‘복 받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행과 불행은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부부가 먼저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을 대했기에 그들은 이러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고 흙에 기대어 사는 가족의 모습이 그 모든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1_ 김종훈 씨는 주전자와 찻사발 등의 다관을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한다. 직접 만든 가마 앞에서 밤을 새워 불을 땔 때면 설레임과 기다림을 즐긴다. 2_ 차 마시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현호와 하은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은 부부의 큰 자랑이다. 3_ 맨손으로 흙을 만지는 유영미 씨는 실생활에 밀접한 도자기를 만든다. 그녀의 그릇들은 국내 뿐 아니라 일본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도 상차림에 사용되고 있다. 4_ 작업동의 2층 내부. 아직 마무리가 안 된 상태지만, 아내의 작품을 주로 전시해 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5_ 6년 전 이사 온 집은 개량식 한옥이다. 돌담과 장독대가 어우러진 마당은 가족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데 더할나위 없이 멋진 배경이다. 6_ 아내 문지영 씨의 백자 합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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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공 :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취재 : 이세정
사진 : 변종석
취재협조 : 설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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