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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1위 제넨텍 20조 신화, 시작은 40년 전 ‘맥주 잡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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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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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 제넨텍 본사에는 맥주를 마시며 창업을 결심한 벤처투자자 밥 스완슨(왼쪽)과 허버트 보이어 교수의 모습을 딴 동상이 있다. [사진 제넨텍 홈페이지]

지난해 매출 20조원(173억 달러)을 기록한 1위 바이오 기업 제넨텍(로슈 자회사)은 미국 바이오테크 산업의 전설로 통한다.

투자자·연구자 의기투합해 창업
유방암 신약 성공 뒤 벤처들 몰려
200개 제약사·벤처 2만 명 일하는
남샌프란시스코 바이오밸리 탄생

시작은 맥주바에서였다. 40년 전 벤처투자자 밥 스완슨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 분교(UCSF)에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연구하던 허버트 보이어 교수가 자주 만나 맥주를 마시다가 창업으로 이어진 일화 때문이다. 스완슨은 아무도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던 보이어 교수의 연구를 알아보고 스완슨 교수에게 창업을 제안하고 투자했다.

안목 있는 투자자와 혁신적 연구자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한 제넨텍은 항체바이오 신약이라는 신시장을 개척했다. 세계 최초의 유방암 치료용 바이오 신약 허셉틴을 비롯해 리툭산·아바스틴 등 매년 8조~10조원씩 팔리는 블록버스터 신약들이 제넨텍에서 쏟아져 나왔다. 제넨텍 본사에는 지금도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을 본뜬 조각상이 있을 정도다. 똑똑한 돈과 혁신 바이오 기술의 시너지를 기억하자는 취지다.

제넨텍의 성공은 기업 하나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대 바이오 기업들과 연구개발(R&D)센터, 전문 인력들이 제넨텍 같은 혁신 바이오 벤처를 꿈꾸며 남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든 것이다.

스탠퍼드대·UCSF·UC버클리 등 명문 대학의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창업에 나섰고,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들도 넘어왔다. 40년 만에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가 세계 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집적단지)가 된 것이다. 현재 축구장 283개 크기의 남샌프란시스코 바이오밸리에는 200여 개의 글로벌 제약사·벤처가 모여 2만여 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 바이오 벤처들이 유치한 투자금액만 18억 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특히 제넨텍은 2009년 스위스 로슈에 인수되면서 ‘벤처 창업→신약 연구개발→대기업과 개방형 혁신→투자금 회수(인수합병)’의 모델을 완성했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제넨텍의 성공 신화를 공유한 남샌프란시스코의 바이오 벤처들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벤처 육성 기관, VC들과 만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 준비가 돼 있더라”고 말했다.

인재들이 모이니 대기업도 찾아온다. 바이오 벤처 인큐베이팅 시설인 존슨앤드존슨(J&J) J랩스는 창업 초기의 바이오 스타트업들에 2년간 사무공간과 실험장비를 제공한다. 지분을 요구하거나 J&J와 협업을 해야 하는 조건도 없다. 배성윤 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내부 연구 역량의 한계에 부닥친 대기업들은 바이오 벤처가 많아져야 대기업도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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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남샌프란시스코 같은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 아일랜드·싱가포르·중국 등이 바이오 클러스터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파격적인 법인세율(12.5%)로 유명한 아일랜드는 수도인 더블린엔 글로벌 기업 본사를, 지방 도시인 코크엔 의약품 생산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2000년부터 바이오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R&D 클러스터인 ‘바이오폴리스’를 만들어 글로벌 R&D센터들을 유치했다. 중국 역시 베이징의 창업촌 중관춘에서 바이오 벤처 중심의 창업단지를 조성했고 상하이에선 창장(長江)지구에 글로벌 R&D센터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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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유망한 바이오 클러스터들이 있다. 인천 송도는 동아쏘시오홀딩스·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 주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기업(CMO)들이 밀집한 세계 최대 CMO 단지다.

바이오 벤처가 많고 벤처캐피털이 밀집한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판교와 KAIST를 끼고 있는 대전도 유망한 바이오 클러스터다. 대구첨단바이오복합의료단지, 충북 오송바이오단지 등도 정부가 지정한 클러스터로 육성 중이다. 20년 후를 대비하는 클러스터 외에도 연구 협업을 활성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전 세계의 R&D센터와 연구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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