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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쌀 창고를 문화 사랑방으로…다채로운 예술품 선보이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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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에 복합문화공간 연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백제의 옛 도읍인 충남 부여의 오래된 창고.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미곡 창고가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53)의 손길이 닿아 복합문화공간 ‘G340’으로 변신했다. 한적한 시골에 서울 강남 한복판에나 있을 법한 대형 갤러리 카페가 들어섰는데, 그 생경한 감흥 하며 멋들어진 모습이 상당히 시선을 끈다. 주소인 계백로 340번지에서 이름을 딴 ‘G340’은 한국 전통 흑유 항아리, 청나라 시대 침대, 런던에서 공수한 앤티크 가구 등 김영석이 평생 공들여 모아온 것들을 엄선해 담았다. 최근 이곳에서 ‘컬렉터’ 김영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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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만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복합문화공간 G340 내 그의 작업실에는 한국 전통의 ‘백수백복도’가 걸려있다.

김영석에게 ‘한복 디자이너’라는 호칭은 너무 단조롭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을 지을 만큼 한복 업계에서 손꼽는 디자이너이며, 대통령 취임식 무대에서 대형 복주머니를 형상화한 설치 미술을 선보이기도 한 아티스트이자, 전시 큐레이터·공연 기획 등 그가 보여주는 외연은 상당히 넓다. 다채로운 작업 중에서도 김영석 특유의 감각을 입은 ‘공간’들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17년 전 ‘전통한복 김영석’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삼청동 한복 가게는 기존에 생각하던 한복집과는 다른, 미니멀한 갤러리 같았다. 도자기와 가구·아트 작품이 어우러진 그의 평창동 집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집’의 모양새와는 전혀 다르다. 그가 완성한 탐미주의적 공간들은 매번 여러 잡지 지면에 앞다투어 실리곤 한다.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컬렉팅하고 그것을 세련되게 풀어 보여주는 것이 그의 일상이자 일이고 즐거움이다.

왜 부여인가.
“2년 전 이 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 어릴 때 와서 봤던 기억보다 더 쇠락했다고 느껴졌다. 면면이 발전한 경주와는 다르게 부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임에도 그간 발전이 거의 없어보였다. 변변한 카페 하나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곳이어서 조금만 신경 쓰면 국제적으로 자랑할 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울에서 멀고, 문화 불모지여서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우리집 앞 정원을 예쁘게 가꾸면 옆집도 꽃을 심게 되고 도미노처럼 동네가 아름답게 일궈진다. 그런 믿음으로 시작하게 됐다. ‘왜 만들어?’ ‘여기까지 사람들이 와?’라고 묻는 분들이 많다.”
100평 규모의 갤러리 카페를 시골에 만들었으니 당연한 궁금증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당연히 사람들이 이 공간에 모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여는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려봐야 할 곳이다. 잠재 수요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실제로 주말마다 내려가 있다 보니 주민들이 찾아와 명함을 준다. 그 분들 중에는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고, 이 창고를 전부터 눈여겨봤다는 뒤늦은 고백도 줄을 잇더라(웃음).”
공간을 발견한 눈썰미가 대단하다.
“부여에서 뭔가를 해보자고 마음먹고 위치는 어디가 좋을까 고민했는데 마침 옛 농협 미곡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천장 높은 창고이니 규모 있는 갤러리 카페로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예술작품 구경하며 커피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사랑방으로 만들자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니 소명 의식을 더 느끼게 됐다.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은 지인들 도움을 받아 문화적인 콘텐트를 더 넣기로 했다. 카페 공간 외에 문화 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 교실 공간 등을 만든 이유다. 여기에 모여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공간을 채운 예술품 중에 눈여겨볼 품목은.
“우리나라 전통 항아리 중 하나인 흑유항아리들과 그림, 그리고 가구 위주로 보면 된다. 흑유항아리는 한눈에도 옹기와는 다르게 보이는데, 유약을 까맣게 올린 항아리들이다. 북한 회령 지방 도자기이고 고려·조선시대 꿀단지로 많이 쓰이던 것들을 모았다. 벽에 걸린 대형 작품 2점은 중국 남성 듀오 작가 ‘탐원’의 그림이다. 교실 쪽에 걸린 작품은 사라모리스, 안영일, 전원근 작가의 작품이다. 컨템퍼러리하면서도 오리엔탈적 무드가 있는 작품들로 전시했다. 메인홀 가구 중 눈에 띄는 것은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의자이고, 카페 전체를 채운 의자는 영국 앤티크 제품이다.”
상설 전시 외의 문화 퍼포먼스 진행 계획은.
“7월 7일 오픈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CBS어린이 합창단원의 공연을 짜임새 있게 1시간 프로그램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지역 공무원과 주민들을 무료 초대할 계획이다. 한 달에 한번 이런 정기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연간 4회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되도록 다채로운 예술품들을 선보이고 싶다.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이 이 공간을 충분히 이용했으면 좋겠다.”
공주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는데.
“600평 규모로 훨씬 크다. 일제 강점기 충청도에서 가장 큰 여관 건물이었다. 광복 이후 양조장으로 운영되던 곳인데 최근 문을 닫아 매입했다. 박물관과 갤러리, 아트숍이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해 운영할 계획이다. 삼청동에 처음 열었던 작은 한복집을 재현해 놓을 거다.”
이 정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데,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동력의 원천은.
“부싯돌이 있어야 불꽃이 만들어진다. 나에게는 그 부싯돌이 컬렉팅해온 물건들과 눈썰미인 것 같다. 나의 눈썰미를 믿고, 컬렉팅하고, 그게 뭔가가 만들어지는 자양분이 되어왔다. ‘성공할까?’라는 생각을 하면 시작을 못 한다. ‘너무 하고 싶어’ ‘잘할 것 같아’ 그 두 가지가 나에게는 늘 시작이다. 비즈니스가 될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늘 같다. ‘당연히 잘 될 거야.’ 두려움이 당연히 있고 실수도 있었지만, 안 된다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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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팅 어떻게 했나
자연석부터 가구·골동품까지 아이템 정해 수집

사람마다 발달한 기관이 있다. 김영석에게는 눈이다. 좋은 물건을 찾아낼 수 있는 눈썰미.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오래 뜯어봐도 보일까말까 한 물건들이 그의 눈에는 잘 보인다. “제 눈썰미는 길러진 걸 거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예술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일상 안에서 자연스레 교육을 받은 것처럼 발달했듯,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던져진 경험이 많았어요.”

어릴 때 서울 서소문에서 살던 그는 70년대 초에 강남으로 이사했다. 서소문에 살면서 덕수궁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단다. 사대문 안에서 열린 전시회도 거의 매일 다녔다. “당시에도 그냥 흘려보는 물건이 없었어요. 저건 왜 저 자리에 있을까 항상 의문을 품었고, 밖에 나가서도 예쁜 돌멩이라도 들고 들어왔대요. 심각한 아이였죠.”

그에게 컬렉팅의 시작은 ‘돌’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예쁜 자연석을 모았고 그 취향이 발전해 구매력이 생긴 후에는 다양한 종류의 보석에 눈길이 갔다. 가장 애착이 가는 컬렉팅 아이템을 묻자 단박에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과 같아요. 모든 게 애착이 가지만 앞으로도 계속 컬렉팅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에 순위를 매기는 게 의미 없어요.”

모든 컬렉팅은 탐미주의에서 출발한다. 김영석 역시 철든 이후 줄곧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왔다. 그의 눈에 들어온 물건들은 주로 동서양 여성의 장신구나 가구, 골동품이었고 점차 다양한 미술품으로 확장됐다.

피규어만 모아도 비즈니스가 되는 시대다. 김영석이 얘기하는 컬렉팅 제일 원칙은 두서없이 시작하지 말고 아이템을 정하라는 것.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나중에라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를 담아서 모으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100년 이상 된 물건이 골동품이고 앤티크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오래된 플라스틱도 앤티크가 된다. 50년만 지난 물건도 ‘올드’하게 느껴진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컬렉팅은 자취를 남기는 일, 미래로 갈수록 더 가치로운 일이 될 거라 여긴다.

“요즘은 파이렉스(유리 용기 상품명)도 새로워 보여요. 너무 멀지 않은, 살아있는 히스토리이고요. 그런 걸 모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죠. 그건 게 컬렉팅의 의미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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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핸드페인팅 의자는 영국 빈티지 제품이다. 갤러리 카페 입구에 화병과 함께 세팅해두었다.(사진 위) 담배 파이프도 김영석의 컬렉팅 품목 중 하나. 사진은 다비도프 파이프다.

글=안지선 여성중앙 편집장
사진=전택수 (JE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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