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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다양성 외화 시장 신흥 강자 ⑤ 더 쿱 서정원 대표 - 자극적인 볼거리보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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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동성애 소재, 한국 극장가에서 한 번도 흥행하지 못한 감독의 신작…. ‘캐롤’(2월 4일 개봉, 토드 헤인즈 감독)은 개봉 전까지만 해도 상업적으로 불안한 요소가 더 많은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캐롤’은 감성을 흔든 마케팅 효과에 힘입어 재관람 열풍을 일으키며 관객 31만 명을 동원, 올해 상반기 개봉한 다양성 영화 가운데 흥행 3위를 기록했다. 그뿐 아니다. ‘캐롤’은 2013년 10월 설립 이후 2014년 하반기부터 부진을 겪어 온 신흥 수입사 더 쿱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에 이어, 아동 성추행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미국 언론의 실화를 그린 ‘스포트라이트’(2월 24일 개봉, 토마스 맥카시 감독)가 관객 29만 명을 불러 모으면서 더 쿱은 크게 주목받았다. 더쿱의 서정원(53) 대표는 영화계에서 30여 년간 잔뼈가 굵은 인물. 그는 ‘캐롤’과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자극적인 볼거리에 현혹되지 말고 영화의 이야기, 그 자체의 힘을 믿자는 믿음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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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과 ‘스포트라이트’는 개봉 전만 해도 흥행을 확신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는데.
“작품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직원 네다섯 명과 의견을 나눈다. 구매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각자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캐롤’은 그 논의가 가장 격렬했던 영화다. 동성애란 소재는 마케팅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이 영화는 구매 가격이 싼 편도 아니었다. 그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논의 과정에서 거꾸로 그 작품의 장점과 본질을 확신하게 됐다. ‘캐롤’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구매했지만, 결국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두 여성 주인공의 사랑이 많은 관객들 마음을 움직일 만큼 감동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나.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스포트라이트’ 역시 국내 관객에게 친숙하지 않은 가톨릭 문화와 아동 성추행이란 소재를 다루는 데다 연출이 워낙 담백해, 애초 흥행 기대작으로 꼽히진 않았다.
“맞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지난해 9월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였다. 그때는 더 쿱의 개봉작이 국내 극장가에서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던 시기라 마음이 초조했다. 완성작을 보니, 영화는 좋은데 연출이 매우 절제돼 있어 흥행이 될까 걱정스러웠다. 당시 필름 마켓에서 만난 세일즈사에 ‘취재 과정을 좀 더 긴박하게 편집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쪽에선 ‘다른 나라 수입사들은 모두 만족스러워하는데 너희만 왜 그러느냐’고 콧방귀를 뀌더라(웃음).”

더 쿱의 첫 수입작은 증권사를 소재로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 이하 ‘더 울프’)다. 2014년 1월 개봉해 관객 58만 명을 동원했고, 같은 해 5월 선보인 ‘그녀’(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도 관객 35만 명을 기록하며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캐롤’ 전까지 개봉한 여덟 편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는데.
“그 시기를 지나며 여러 교훈을 얻었다. 2014년 하반기에 개봉한 두 편의 스릴러 ‘룸13’(2013, 데이비드 그로빅 감독)과 ‘혼스’(2014,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는, 사실 ‘더 울프’를 구매할 때 세일즈사에서 강제로 함께 판 작품들이다. 그런 경우를 흔히 ‘패키지 판매’라 하는데, 그렇게 묶어 사면 안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얻었다. 두 영화 모두 관객 2만 명을 넘지 못했다. 2014년 9월 개봉한 뮤지컬영화 ‘선샤인 온 리스’(2013, 덱스터 플레처 감독, 관객 2만6000명)는 나 혼자 영화를 보고 구매한 경우다. 그 뒤로는 반드시 직원들과 상의해 구매를 결정하려 한다(웃음).”

‘캐롤’과 ‘스포트라이트’의 흥행이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졌겠다.
“분명 잘된 일이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웃음). 특히 ‘캐롤’은 개봉 당시 관객들이 보낸 감정적 환호에 비하자면 31만 명이란 수치가 낮게 느껴진다.”

처음 영화계에 입문한 계기는.
"미국인 매형이 연결해 준 덕에, 대학 3학년 때 아르바이트 식으로 한·미 합작 전쟁영화 ‘전쟁과 명예’(1986, 김대희·한스 쉽메이커 감독) 개봉 관련 일을 도와줬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미영화사에서 제작한 한·미 합작 영화 ‘죄 없는 병사들’(1989, 정한우 감독)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이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미국 LA에서 ‘CA’라는 작은 배급사를 차린 적도 있다. 그 뒤 1990년대 국내 가정용 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영화의 2차 판권 유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십수 년 전에 VOD(Video on Demand·인터넷에서 제공되는 동영상 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영화 일을 하고 있으면서 2013년 더 쿱을 창립해 외화 수입에 뛰어든 이유는.
“‘콘텐트가 인격이다.’ 내가 만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이 움직이는 콘텐트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 준다고 믿는다. 특히 영화를 유통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영화를 직접 들여와 극장 개봉하고 싶은 마음이 다들 있을 거다. 2차 판권 시장에서의 흥행은 아직까지 볼거리 요소에 좌우되지만, 상대적으로 극장가는 좋은 이야기의 힘이 먹히는 곳 아닌가. ‘더 쿱(The Coup)’이란 이름은 ‘영화 시장에 쿠데타를 일으키자’는 뜻에서 지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내게 최고의 영화는 언제나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다. 영화 한 편에 즐거움, 감동, 따뜻함, 가족의 소중함이 다 들어 있다. 이 영화 때문에 내가 유독 뮤지컬·음악영화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더 쿱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가꾸고 싶은가.
“영화 한 편 한 편의 개성은 모두 다를 테지만, 그 개성이 결국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더 쿱이 그런 영화를 소개하는 수입사로 기억됐으면 좋겠고. ‘그녀’ ‘캐롤’ ‘스포트라이트’ 모두 주인공이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지만, 끝내 그 안에서 어떤 깨달음과 카타르시스를 얻는 영화들 아닌가. 지금의 다양성 영화 관객들도 그런 작품에 환호하는 것 같다.”


ㅣ '더 쿱' 수입 대표작


● 2016 ‘캐롤’ ‘스포트라이트’
“두 영화 모두 소재를 전면에 드러내는 대신, 관객이 영화를 보고 직접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을 썼다. 그게 흥행에 주효했던 것 같다.”

● 2015 ‘피케이:별에서 온 얼간이’ ‘에이미’

● 2014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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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더 울프’는 관객 58만 명을 동원했지만, 워낙 비싼 영화라 수익을 내진 못했다. 상영 시간이 179분이라 관객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차기작 ‘아이리쉬맨’(원제 The Irishman, 2018년 개봉 예정)도 수입했는데, 상영 시간이 2시간 20분을 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웃음).”


ㅣ 더 쿱 하반기 주요 라인업


립반윙클의 신부(リップヴァンウィンクルの花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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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스틸컷]

감독 이와이 슌지ㅣ출연 쿠로키 하루, 아야노 고, 코코ㅣ개봉 9월 예정
이와이 슌지 감독이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12년 만에 일본에서 촬영한 극영화. 이와이 감독이 자신의 소설을 직접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SNS 시대의 인간관계와 고독에 대해 그린다. 자연광으로만 촬영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서 대표는 이 영화를 계기로 “일본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 수입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캡틴 판타스틱(Captain Fanta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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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캡틴 판타스틱` 스틸컷]

감독 매트 로스
출연 비고 모텐슨, 조지 맥케이, 사만다 아일러│개봉 11월 예정
지난 10년 동안 숲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섯 아이들을 키워 온 벤. 그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짜증스럽고 오만하면서도 다정하고 따뜻한 아버지 벤으로 등장하는 비고 모텐슨의 연기가 일품이다. 7월 21일부터 열리는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다.

스노든(Snow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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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스노든` 스틸컷]

감독 올리버 스톤 감독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셰일린 우들리, 멜리사 레오│개봉 12월 예정
2013년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 직원 스노든이 “NSA가 비밀리에 전 세계인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며 언론에 알린 실화를 영화화했다. 사회성 짙은 영화를 연출해 온 올리버 스톤 감독이 차세대 연기파 배우 조셉 고든 레빗과 만났다. “도청·테러·IT 천재·첩보 등 여러 요소를 버무렸지만, 스노든(조셉 고든 레빗)의 정의감을 뭉클하게 그리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 영화를 미리 본 서 대표의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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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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